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생명안전기본법이 시행되면 변화는 중앙정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도 안전관리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법안의 핵심이 국민의 ‘안전권’을 보장하고, 정부·지자체·기업의 책임을 제도화하는 데 있는 만큼, 각 주체는 사고가 난 뒤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사전 예방과 피해자 보호까지 포괄하는 체계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슈] '생명안전기본법' 어떤 내용 담겼나
1일 행정안전부와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아직 시행령 등이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보다 구체화되긴 어렵지만, 기업은 산업재해나 대형 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 의무가 더 명확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안전관리가 법적 의무와 비용 부담 사이에서 후순위로 밀렸다면, 앞으로는 경영 전략의 핵심 요소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안전 설비 투자, 보호 장비 확충, 위험성 평가, 교육·훈련, 사고 발생 시 피해자 지원까지 기업이 준비해야 할 영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부담과 책임이 커진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지자체가 지역의 안전 수준을 진단하고 취약성을 조사·분석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어서다. 이는 시군구가 단순히 중앙정부 지침을 전달하는 행정기관에 머물지 않고, 지역 맞춤형 안전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체크리스트.. 안전을 비용이 아닌 경영 시스템으로 봐야
기업이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부분은 기존 안전 매뉴얼이다. 산업안전보건 매뉴얼, 비상대응 매뉴얼, 협력업체 관리 지침 등이 생명안전기본법의 취지와, 정부가 마련할 안전관리 기준에 맞는지 점검해야 한다. 문서만 갖춘 형식적 매뉴얼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절차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관리 시스템 구축도 핵심 과제다. 사업장별 위험 요인을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 공정이나 시설에 대한 개선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제조업, 건설업, 물류, 화학, 에너지, 대형 다중이용시설 운영 기업 등은 사고 발생 시 사회적 파급력이 큰 만큼 선제적 점검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전직원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과 훈련도 강화해야 할 과제다. 안전교육은 신규 직원이나 현장 근로자에게만 필요한 절차가 아니다. 경영진, 관리자, 협력업체 직원까지 포함해 조직 전체가 같은 기준을 이해해야 한다. 실제 사고 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 대피훈련, 보고체계 훈련도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예산 확보 역시 빠질 수 없다. 안전은 투자라는 말이 있듯, 안전 설비와 보호 장비, 감지 시스템, 교육 프로그램, 외부 점검 비용은 모두 추가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생명안전기본법 시행 이후에는 안전 예산이 선택적 비용이 아니라 필수 투자로 바뀔 가능성이 큰 게 기업들로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기업의 안전관리 성과를 내부 평가에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도 커질 수 있다. 정부가 안전관리 기준을 설정·공표·평가하는 구조가 마련되면, 기업은 안전관리 수준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외부 이해관계자에게 설명할 준비를 해야 한다. 이는 ESG 경영과도 직결된다. 안전은 더 이상 산업안전 부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평판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피해자 지원체계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은 피해자의 치유와 보호를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 기업은 사고 발생 시 피해자와 가족을 위한 상담, 의료 지원, 정보 제공, 사후 관리 절차를 미리 정비해야 한다. 대응이 늦거나 불투명할 경우 법적 책임과 별개로 사회적 비판이 커질 수 있어서다.
지자체 체크리스트.. 지역별 위험을 데이터로 파악해야
지방자치단체의 첫 과제는 지역 안전수준 진단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시군구마다 위험 요소는 환경, 인구구조, 주거형태, 생산시설 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지역은 침수와 산사태 위험이 크고, 어떤 지역은 노후 산업단지와 화학물질 취급시설이 많다. 또 고령층 밀집 지역, 쪽방촌, 전통시장, 지하차도, 급경사지, 다중이용시설 등 생활권 위험도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자체는 시설, 교통, 환경, 산업, 주거, 취약계층 보호 영역을 나눠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조사 결과는 단순 보관용 자료가 아니라 예산 배분과 정책 우선순위를 정하는 근거가 돼야 한다. 위험도가 높은 지역에는 시설 개선, 대피로 정비, 경보 체계 강화, 주민 교육이 우선 배치돼야 하기 때문에 좀더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전문 인력 확보도 중요하다. 안전 진단과 취약성 분석은 일반 행정 경험만으로 수행하기 어렵다. 재난안전, 도시계획, 보건, 환경, 산업안전, 데이터 분석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필요하다. 규모가 작은 기초지자체는 자체 인력만으로 한계가 있을 수 있어 광역지자체, 중앙정부, 민간 전문가와의 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
주민들이 안전 제고를 위해 직접 참여 구조도 확대해야 한다. 지역 안전은 행정기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주민들은 실제 위험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당사자다. 골목 침수, 보행로 파손, 노후 간판, 경사로 위험, 폭염 취약지점 등은 현장 주민이 가장 잘 아는 만큼, 지자체는 주민 의견을 반영하는 지역 안전위원회나 주민 신고·제안 시스템을 활성화할 필요해야 한다.
국가 정책과의 연계도 준비해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은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정책위원회와 국무총리 소속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를 담고 있는데, 지자체는 중앙정부의 안전권 보장 종합계획, 안전관리 기준, 사고조사 결과와 지역 정책을 연결해야 한다. 중앙정부 계획과 지역 현장이 따로 움직이면 법 시행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위기 대응 훈련도 정례화해야 한다. 폭염, 집중호우, 산불, 지진, 감염병, 산업단지 사고, 다중밀집 사고 등 지역별로 우선순위가 높은 재난 유형을 정하고 실제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훈련은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라 연락망, 대피 절차, 장비 작동, 부서 간 역할 분담을 검증하는 과정이 돼야 실제적으로 안전사고를 대폭 줄일 수다.
기업과 지자체 모두 ‘사후 대응’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환해야
생명안전기본법의 본질은 안전을 선언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의 안전권을 실제로 보장하려면 기업과 지자체가 일상적인 관리 체계를 바꿔야 한다. 사고가 난 뒤 책임자를 찾는 방식만으로는 반복되는 참사와 산업재해를 막기 어렵다.
기업은 사고 예방과 피해자 보호를 경영 시스템 안에 넣어야 한다. 지자체는 지역 위험을 데이터로 파악하고 주민 생활권에 맞춘 안전정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기준을 만들고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이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예산과 전문성을 지원해야 한다.
안전 전문가들은 "법 시행 이후의 관건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미리 막을 것인가’에 있다"라며 "생명안전기본법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기업은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고, 지자체는 안전을 부가 업무가 아닌 핵심 행정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