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4년, 무엇이 바뀌었나] ⑤처벌의 시대를 넘어 ‘안전 공동체’로 가는 길

경영의 핵심 지표에 ‘안전’이 진입한 것은 성과
사회 전반에 산업재해 감수성 높아져
법의 모호성 정비해야...업종별 구체적 ‘안전 표준’ 법제화해야
안전비용은 공동의 부담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필요
기업은 안전 ‘투자’, 노동자는 안전 ‘권리’, 정부는 안전 ‘지원’으로 나가야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2022년 1월 27일, 대한민국 산업사에 획을 긋는 거대한 실험이 시작되었다. ‘사람의 생명이 경영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명제를 법전에 새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날이다. 노동계는 산업화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진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며 환호했지만, 경영계는 세계 어디에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경영책임자 직접 처벌’이라는 조항 앞에 공포를 느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지금, 이 법이 가져온 빛과 그림자를 5회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 주]

 

중대재해처벌법의 궁극적 목표는 경영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가장인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돕는 착한 아들이 저녁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은 안전을 ‘투자’하고, 노동자는 안전을 ‘권리’로 행사하고, 정부는 이를 촘촘히 지원하는 ‘안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 4년은 그런 길로 가기 위한 과정이었다. 우리 사회가 안전과 생명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한 진통의 시간이었다.

 

비록 통계적 수치는 획기적으로 감소하지는 않았지만, 기업 경영의 핵심 지표에 ‘안전’이 진입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면 성과다. 또 사회 전반에 걸쳐 산업재해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진 것도 분명한 변화다.

 

하지만 처벌 중심의 입법이 가져온 현장의 혼란과 책임 회피와 형식주의, 대형로펌의 법기술, 행정력 낭비, 그리고 중소기업의 경영 위축이라는 시행착오는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법의 모호한 부분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기업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 의무를 다한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안전 표준’을 업종별로 법제화해야 한다. 기업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도록 의무 조항을 구체화해야 한다. 무조건적 처벌보다는 ‘안전 이행 노력’을 감안해 주어야 기업들이 현장 안전에 돈을 쓰게 된다.

 

막연히 ‘기업이, 최고책임자가 얼마나 안전에 최선을 다했는가’라는 식의 판단은 기업을 대형 로펌으로 내몰 뿐이다. 고의가 없는 과실 사고에 대해서는 기업의 자발적인 개선 노력을 유도할 수 있는 ‘과징금 제도’ 도입이나, 안전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기업에 대해서는 ‘처벌 감경 규정’ 명문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굴지의 건설 대기업의 사내 변호사인 김모(48)씨는 익명을 전제로 이렇게 말했다.

 

“현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습과 개선보다는 현장 책임자의 과실이, 회장님의 책임이 얼마나 되는가부터 따지는 일이지요. 그리고 중대재해법의 모호한 부분을 집중공략하는 방어 전략을 짜내느라 밤을 샙니다. 판사들도 법의 애매한 부분을 인정하기는 하죠. 그 허점을 파고들어 책임자가 불법을 저지른 것이 아닌 것으로 몰고가 처벌을 최소화하는 것이 유능한 사내 변호사로 인정받는 길입니다.”

 

정부의 역할도 이제 ‘예방’과 ‘사전 지원’으로 행정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인력을 확충해 단순 단속이 아닌 현장의 위험을 함께 찾아내고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컨설팅 위주의 행정을 펼쳐야 한다.

 

특히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사업장을 위해 ‘안전 관리 공유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업종별 안전 기술을 보급하는 실질적 지원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안전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복지’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안전은 공짜가 아니며 안전비용은 공동의 부담이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도 필요하다. 안전을 위해 공기가 늘어나고 제품 가격이 상승하는 것을 기꺼이 수용할 수 있는 국민 인식이 따라줘야 한다. 최저가 입찰 경쟁이 계속되는 한 안전은 늘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현장과 기업경영자의 실질적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는 자신의 안전권을 당당히 요구하고, 경영자는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와 ‘윤리’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정착되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4년, 많은 부작용을 양산한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우리 사회가 경험했다. 이제는 드러난 부작용을 하나씩 살펴가며 ‘처벌의 시대’를 넘어 ‘예방의 시대’, ‘안전의 시대’로 명실상부하게 나가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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