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 오영아 국가정책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페스트의 이름만 들어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낀다. 14세기 유럽에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이 감염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재난 가운데 하나였다. 오늘날 ‘흑사병’이라는 이름은 피부가 검게 변하는 증상과 연결돼 흔히 설명되지만, 그 어원은 단순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이 질병이 오랫동안 ‘죽음의 공포’ 그 자체를 상징해왔다는 점이다. 최근 러시아 시베리아의 한 연구시설을 둘러싸고 페스트균 유출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런 오래된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한 연구원의 사망과 관련해 페스트 감염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당국이 충분하고 신속한 정보를 내놓지 않으면서 의문은 오히려 커졌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감염병 위기에서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위험 그 자체만이 아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공포를 증폭시킨다. 역사는 이를 반복해서 보여줬다. 중세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던 당시에는 감염 원인과 전파 경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공포에 사로잡혔고, 잘못된 소문
한국재난안전뉴스 | 김성제 서울디지털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객원교수 산업현장의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많은 제도와 장치가 마련됐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관리체계가 구축됐고, 위험성평가와 안전보건교육도 한층 강화됐다. 기업들도 안전시설을 확충하고 전담 조직을 두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을 쓰고 있다. 이제 안전은 생산의 부수 업무가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경영과제가 됐다. 그럼에도 중대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이유는 무엇일까. 안전시설과 제도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사고 예방의 기본 조건이다. 문제는 잘 만들어진 제도와 시설이 현장에서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는 데 있다. 작업자가 위험을 발견하고도 말하지 못하거나, 익숙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하거나, 동료의 위험을 보고도 지나친다면 제도는 종이 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안전의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사람의 판단과 행동이 놓여 있다. 이 지점에서 ‘안전인성(Safety Character)’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전인성이란 단순히 안전교육을 많이 받거나 관련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위험을 알아차리는 감각, 정해진 절차를 스스로 지키려는 책임감
한국재난안전뉴스 | 김성제 서울디지털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객원교수 비상구 앞에 물건을 쌓아두지 않는 일, 작업 전 보호장비를 확인하는 일, 위험한 상황을 발견했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알리는 일. 안전은 이처럼 작고 평범한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방심과 “일정을 먼저 맞춰야 한다”는 조급함이 원칙을 밀어내곤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규정을 보완하고 교육을 강화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안전을 규정과 점검만의 문제로 다뤄서는 한계가 있는 이유다. 기업에 안전은 더 이상 생산과 경영의 부수적인 조건이 아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구성원의 신뢰를 얻기 어렵고, 소비자와 지역사회로부터도 책임 있는 기업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사고로 인한 작업 중단과 피해 보상, 신뢰 하락까지 고려하면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지탱하는 핵심 투자이기 때문이다. 국제사회가 추진하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기업 경영의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도 이러한 방향을 담고 있다. SDGs가 인간의 존엄과 안전한 공동체, 기후변화 대응을
한국재난안전뉴스 | 김성제 서울디지털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객원교수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 속 생명체들이 보여주는 귀소본능에 경이로움을 느껴왔다. 연어는 수천 킬로미터를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하천으로 돌아오고, 장어는 먼 바다의 산란지를 찾아간다. 단순한 이동이라기보다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반드시 돌아가야 할 자리로 향하는 본능에 가깝다. 흥미롭게도 인간이 만든 첨단기술도 어느새 이 원리를 닮아가고 있다. 가정에서 쓰는 로봇청소기는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스스로 충전 스테이션을 찾아간다. 재난 현장에서 활용되는 드론도 일정한 조건이 되면 저장된 홈 포인트로 복귀한다. 로봇청소기는 센서와 지도화 기술을 활용하고, 드론은 지형위치시스템(GPS) 기반의 RTH(Return To Home) 기능을 사용한다. 방식은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오늘날 기업 경영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시사점을 생각하게 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빠르게 성장하고, 아무리 높은 성과를 내더라도 안전이라는 원점에서 멀어지는 순간 지속 가능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ESG 경영이 단순히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구호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본지 편집인이자 논설고문인 이계홍 작가가 최근 장편소설 『제국의 섬』을 펴냈다(도서출판 도화). 지난해 『해인사를 폭격하라』로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지 일년만에 이번에 다시 장편소설을 낸 것이다. 『제국의 섬』은 제국주의 시대의 동아시아를 새롭게 조명하는 역사소설이자, 역사의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깊은 헌사(獻辭)다. 구한말 조선의 남해, 여수 앞바다의 작은 섬 거문도. 그러나 그 섬은 결코 작지 않았다. 19세기 말 세계를 뒤흔든 제국주의의 거대한 야망이 교차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이계홍 작가의 장편소설 『제국의 섬』은 1887년 전후의 거문도를 무대로, 대영제국과 제정러시아, 일본제국, 청나라가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싸고 벌인 치열한 각축전 속에서 살아가는 거문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내고 있다. 여수 앞바다의 고도(孤島) 거문도에 영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 제국의 확장을 위해 알게 모르게 각축전을 벌인다. 이런 사실을 간파하지 못한 조선 왕조는 잠자는 듯 조용하다. 국운이 쇠잔해 무엇 하나 세울 힘이 없이 산하는 허무감만 감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사실과
한국재난안전뉴스 | 법무법인(유한)클라스한결 파트너 변호사 건설 철거 현장 붕괴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번 서소문 고가 붕괴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사현장소장과 안전진단전문가가 진단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붕괴 사고는 다른 사건보다도 더 크게 우리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딘다. 사고 당일 이미 구조물 침하 징후가 확인돼 작업이 중단됐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후 안전진단 과정에서 구조물이 무너졌고 결국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과 책임은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더라도 이 사고는 단순한 구조물 붕괴가 아니라, 위험 신호를 인지한 뒤 현장 대응 과정에서 발행했다는 점에 문제가 다르다. 최근 논란이 된 삼성역 GTX 공사 구간의 철근 누락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철거 현장에서의 붕괴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시공 과정의 구조 안전 문제다. 겉모습은 다르지만 두 사건은 모두 건설·인프라 안전관리 체계가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도면과 보고서, 점검표 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