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보호자없는 집 아이들이 화재 사고 등으로 속절없이 죽어간다. 화재로 세상 떠난 아이들 중 1시간 이상 혼자 있는 초등생이 28%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자영업자·플랫폼 노동자 등 비정형 근로자 돌봄 공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야간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지만 10명 중 4명은 혜택을 보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기 6일 기획 취재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3월 인천에 이어 최근 부산에서 보호자 없이 집에 남겨져 있던 어린이들이 화재로 숨지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사고는 돌봄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야간에 보호자 없는 집에 남겨진 어린이들이 화재로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잇따르면서 돌봄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의 돌봄 정책은 낮에 근무하는 직장인 위주여서 자영업자나 플랫폼 노동자 등 일명 '비정형' 근로자 가정의 돌봄에는 상당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11시께 부산 기장군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8살, 6살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부모가 집을 비운 지 30분도 안 돼 치솟은 불길에 아이들은 대피도 못 하고 쓰려져 생을 달리했다.
지난달 24일 새벽 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에서도 화재로 10살, 7살 자매가 숨졌다. 부모가 새벽 청소 일을 하러 간 사이 자매만 남아 있다가 변을 당했다.
2월 26일 낮 인천 서구의 한 빌라에서는 12살 여자아이가 화재로 숨졌다. 아버지는 신장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갔고, 어머니는 식당으로 출근해 방학 중 홀로 집을 지키던 아이는 화재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울산의 한 빌라에서도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가 이사를 앞두고 청소를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불이 나며 5살 남자아이가 숨졌다.
이에앞서 2020년 9월에는 인천 미추홀구 한 빌라에서는 코로나19로 급식을 받지 못한 초등생 형제들이 부모가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려다 불을 내 동생이 숨지는 일이 있었다. 이른바 '라면 형제' 사건 이후 돌봄 사각지대 문제가 공론화되며 대책이 잇따랐지만, 비극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분석에 따르면, 방과 후 어린이 4명 중 1명은 보호자 없이 1시간 이상 기다린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자매 사망 사건 이후 맞벌이 부모들은 잇따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학부모들은 "곧 방학이라 애들만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아질 텐데 걱정"이라며 토로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 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방과 후 돌보는 사람 없이 집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30분 이상∼1시간이 14.5%, 1시간 이상∼2시간 미만이 16.8%, 2시간 이상∼3시간 미만이 9%, 3시간 이상이 2.3%로 각각 나타났다. 방과 후 아동만 1시간 이상 있는 비율이 전체 28.1%로 4명 중 1명꼴이다.
보호자 없이 아이만 남겨지는 '돌봄 공백'은 야간이나 주말에 일하는 비율이 높은 자영업자나 '비정형 근로자'에게 더 심각하게 나타난다. 근로 형태나 고용방식이 일정하지 않고 불안정한 노동자를 통칭하는 개념인 비정형 근로자는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를 일컫는다.
현재 우리나라 돌봄 시스템이나 국가 정책, 지자체 지원사업 등은 대부분 평일 낮에 일하는 노동자 기준에 맞춰져 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23년 발간한 '비정형 노동자의 일과 자녀 돌봄 실태 및 지원 방안'을 살펴보면 비정형 근로자는 다른 고용 형태에 비해 매우 불규칙한 근로 시간을 가지고 있고, 주말·야간 근무 비율도 높다. 플랫폼 노동자의 경우 부부와 조부모 지원까지 고려해도 충분한 자녀 돌봄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비정형 노동자는 고용보험 가입 비율도 상당히 낮아 자녀 돌봄 시간 지원에서도 제도 밖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박은정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최근에 비정형·비임금 노동자에 대한 시간 지원이나 긴급돌봄에 대한 검토는 더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돌봄 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다"면서 "시간제 보육, 주말 보육, 야간보육, 24시간 보육 등 다양한 시간대에 제공되는 보육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야간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지만 10명 중 4명은 매칭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형 근로자의 경우 특히 저녁 시간이나 야간에 돌봄 공백 문제를 호소한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 실태조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심야에 돌봄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3.1%에 달한다. 가족 실태조사는 1만2000 가구 내외로 진행됐고 어린이 돌봄과 관련한 문항에는 2000여명이 응답했다.
정부는 보호자가 없는 상황에 대비해 '아이돌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용 접근성이 낮다. 특히 밤늦은 시각이나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긴급돌봄의 경우 신청자의 10명 중 4명은 매칭에 실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부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자영업자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의 혜택도 전혀 누릴 수 없고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애를 키우기 무섭다"고 말한다. 12살·9살·6살 부모인 또 다른 자영업자는 "가게에 방을 만들어 놓고 돌봄을 하고 있다"며 "새벽 한 시에 퇴근할 때는 첫째가 집에서 둘째와 셋째를 돌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홀로 집에 남겨지면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비해 보다 현실적인 아이들 보살핌 대책이 강구돠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