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낸 흡연 피해 500억 소송 2심에서도 패소했다. 증명이 안되었다는 것이 패소 이유다. 그러나 담배로 인한 폐암 등 의료진의 지적도 있는 것이어서 이에 대한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6-1부(박해빈 권순민 이경훈 고법판사)는 15일 건보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흡연 때문에 발생한 손실을 배상하라며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낸 소송 2심에서도 패소한 것이낟. 소송 제기 12년 만에 나온 2심 결론이다.
건보공단은 흡연 때문에 추가로 부담한 진료비를 물어내라며 2014년 4월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총 533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533억원은 30년·20갑년(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 흡연한 뒤 폐암, 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천465명에게 공단이 지급한 급여비(진료비)다.
연합뉴스 분석 결과, 쟁점은 흡연과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로 꼽혔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주장한 담배 설계상 또는 표시상 결함, 즉 불법행위 자체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개별적 인과관계에 관해 더 나아가 판단하지 않았다.다만,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는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어느 개인이 흡연을 했다는 사실과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해서 그 자체로 양자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할 개연성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었다.흡연과 폐암 사이 개연성을 인정하려면 흡연 시기와 기간, 폐암 발생 시기, 흡연 전 건강 상태, 생활습관, 질병 상태의 변화, 가족력 등의 사정을 추가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흡연과 폐암 발생 사이의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도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역학적 연구 결과가 특정 개인의 질병에 대한 개별적 원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합뉴스는 환경소송이나 의료소송 등에서 인정되는 '입증책임의 전환' 문제도 주장했으나 이 사례에서 인정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소송에서는 주장하는 쪽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내밀한 정보를 완벽히 알기 어렵고 과학적 관계를 깊이 따져봐야 하는 소송에서는 원고의 입증책임을 전환, 피고 측이 그런 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토록 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이런 전제 하에 공해(公害)소송에서는 인과관계에 관한 입증책임이 완화돼야 한다는 공단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담배 제조행위 자체는 유해물질의 전달행위로 보기 어렵고, 발암물질이 흡연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흡연자의 구매와 흡연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공해와는 다르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흡연과 폐암 사이의 역학적 상관관계는 인정되고, 개별적 인과관계는 통상인이라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이란 점을 짚으며 "대상자들이 30년 이상 20갑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자들로 폐암 또는 후두암 진단을 받은 점 등의 사정을 비중 있게 고려해 개별적 인과관계를 판단함이 상당(타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고들의 불법행위가 증명되지 않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대상자들의 흡연과 폐암 등 발생 사이의 개별적 인과관계에 관해서는 나아가 판단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선택하지 않은 설계상의 결함이나, 위해성과 의존성 등을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표시상의 결함을 들어 담배회사가 불법행위를 했다는 공단 주장을 전부 배척했다.
연합뉴스는 "건보공단은 고엽제와 같이 담배 제조업자 역시 '고도의 위험방지 의무'(제조업자가 최고의 기술 수준으로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해 위험을 제거·최소화하고, 확인되기 전까지는 유통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고엽제와 담배는 사용방법, 그 해악의 회피 가능성 등에 차이가 있다"며 "같은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의존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으로 니코틴 함량을 줄인 담배를 제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천연 담뱃잎에 함유된 니코틴 양을 일정 수준으로 줄여 담배를 제조하지 않은 것이 설계상 결함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의존성을 유발하지 않는 수준의 '니코틴 함량 기준'이 객관적으로 존재함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담배 제조 과정에서 사용된 첨가제로 인해 유해성이 증가됐는지에 관해 상반된 연구결과들이 존재하는 등 그 유해성 여부가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문제삼은 '천공필터'(필터에 작은 구멍을 뚫어 흡연시 공기를 유입시키는 필터)에 대해서도 니코틴과 타르의 양을 더 줄이기 위해 채택된 설계방식"이라며 "단순 필터 담배가 천공필터 담배보다 덜 유해할 것이라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아울러 해외와 비교해 담배 위험성 경고의 정도가 낮지 않고, 흡연에 의존성이 있다는 사정은 사회 전반에 널리 알려졌다며 "담뱃값 경고문구 표시 외에 추가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표시상 결함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건보공단이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로 보험급여액 상당의 손해를 입었다는 주위적(주된) 주장에 대해선 "원고의 보험급여 지출은 피고들의 위법행위로 발생했다기보다는 '국민건강보험 가입에 따른 보험관계'에 따라 지출된 것에 불과하다"며 직접 청구권을 부정했다.
공단은 피해자인 환자들이 치료비 상당 손해를 입었고, 건보공단이 환자들의 치료비로 보험급여를 지출했으므로 환자들을 대위(권리를 대신 행사)해 이들의 손해배상을 구한다는 예비적 청구(주위적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내놓는 주장)를 했고, 이에 기초해 심리가 이뤄졌으나 수용되지 않은 것이다.
연합뉴스는 앞서 1심도 2020년 건보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고 보도했다. 1심은 대상자들이 흡연에 노출된 시기와 정도, 생활 습관, 가족력 등 흡연 외의 다른 위험인자가 없다는 사실이 추가로 증명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건보공단은 재판 과정에서 3000여명 환자들의 건강검진 자료와 진단 내역을 일일이 확인하고, 각종 학회와 단체의 연구자료 및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결론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선고 과정에서 이를 언급하며 "관계자들의 노고와 깊은 열정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며 "우리 사회의 흡연 대한 인식과 대처는 시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있고,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책과 기준이 수립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이날 판결 선고 뒤 "실망스럽고 아쉬운 판결이지만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