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5호선 여의나루역과 마포역 사이는 한강 지하 구간이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고, 최악의 경우 한강물이 지하철을 덮쳐 모든 승객의 생사를 담보할 수 없다. 그래서 한강 지하를 지날 때는 유독 신경을 써야 하고, 안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 정신없는 사람이 불을 놓아 하마터면 대형 사고가 날뻔했다. 방화자는 이혼에 불만을 품고 다같이 죽자며 휘발유를 전동차 바닥에 쏟아붓고 불을 냈다. 기관사의 기지와 승객들의 민첩한 대응으로 큰 사고를 막았지만, 돌이켜보아도 아찔해지는 순간이다.
지난달 31일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 객실에 불을 지른 60대 남성 원모씨가 살인미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많은 시민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방화를 벌인 ‘살상 의도’를 혐의로 추가한 것이다.
원씨가 범행 열흘 전 휘발유와 토치형 라이터를 준비하고, 정기예금과 보험을 해지하는 등 사전에 범죄를 계획한 정황도 검찰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손상희)은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 안에서 불을 지른 원아무개(67)씨를 승객 160명의 살해를 시도하고 6명을 다치게 한 혐의 등(살인미수죄 및 현존전차방화치상죄, 철도안전법 위반)으로 25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원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42분께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으로 향하던 5호선 열차 내에 휘발유를 붓고 라이터로 불을 지른 혐의를 받는다. 당시 화재로 탑승객 다수가 경상을 입었고 승객들은 지하 통로로 대피했다.
경찰이 애초 원씨에게 방화로 시민을 다치게 한 혐의(현존전차방화치상)만 적용했던 데서 나아가, 검찰은 살인 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 전담수사팀은 원씨의 혐의를 “전체 승객을 대상으로 한 테러에 준하는 살상행위”라고 설명했다.
검찰 조사 결과, 원씨는 이혼 소송에서 패소한 뒤 ‘열차에 불을 질러 자신도 함께 죽겠다’는 생각으로 범행을 계획했다. 이후 정기예탁금, 보험 공제 계약을 해지하고 펀드도 환매해 이를 친족에게 송금하는 등 미리 신변을 정리했다고 한다.
검찰은 특히 범행 장소가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마포역 사이였던 데 대해 “(해당 구간은) 한강 밑을 관통하는 약 1.6㎞의 하저 터널로 대피 가능성, 질식 가능성, 화재 진압 어려움, 압사 가능성 등에 있어 현저히 위험성이 높은 곳”이라고 짚었다. 검찰은 ‘방화를 위해 뿌린 휘발유에 임산부인 승객이 넘어져 대피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을 붙인 점’도 원씨의 살상 의도를 입증하는 증거로 봤다.
사건 당시 승객들의 침착한 대응과 기관사의 민첩한 판단력이 사고를 막았다. 수사팀은 “승객들이 신속히 대피했고 비상핸들을 작동시켜 전동차를 비상정차 시킨 후 출입문을 개방해 유독가스를 외부로 배출하고 소화기로 잔불을 진화했다”고 높은 시민의식을 평가했지만, 그것으로 대형 사고를 막을 수는 없다.
특히 서울지하철 5~8호선은 기관사 1명이 운전과 열차 내 민원과 안전 관리를 도맡는 1인승무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사고가 날 경우 속수무책일 우려가 커진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지하철 승무원 숫자를 늘리는 방안과 승객 안전을 위한 대책을 철저히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하루 이용객이 수백만명이란 점을 감안하여 안전 대책이 최우선적으로 세워져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