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홍수로 기후위기 체험장된 유럽의 지난 여름...지중해 9개국 정상, 사상 첫 공동대응 선언

이탈리아 시실리 무려 48.8도 찍어... 아테네, 가장 먼저 사람 못사는 수도로 전락 우려
지중해 국가, 기후위기가 각종 재난 초래의 명백한 증거에 동의...개인·기업·국가 총체적 노력
우리나라도 이런 명백한 증거 보기 전에 실제적 조치 필요

한국재난안전뉴스 안정호·노혜정 기자 |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유럽의 지나간 여름은 더 이상 '아름다운 바캉스의 유럽'으로  기억되기 어렵게 됐다."

 

기후위기(climate crisis)의 대표적인 징후인 '극도로 뜨겁고 건조한'(extremely hot and dry) 날씨가 유럽 지중해 연안을 강타하면서 이른바 산림에서 '자연발화'(spontaneous ignition)되는 사건이 지중해 지역에 잇따랐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홍수에도 큰 영향을 줘 독일은 거의 100년만에 최악의 물벼락을 맞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른바 '기후위기의 체험장'이 돼버린 유럽 지중해 연안의 정상들이 사상 처음으로 최근 한 자리에 모여 현실화해버린 기후위기에 공동 대응키로 한 이유다. 

 

 

우리나라도 이미 기후위기 혹은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고취하고, 국가차원에서 2050년 탄소중립(carbon neutralization)국가 실현을 비롯해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심 경영, 그리고 개인들의 자발적인 친환경 제품 사용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중해 국가들의 이런 움지임은 우리에게 보다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22일 영국 가디언(Guardian)과 외신 등에 따르면, 지중해를 낀 유럽 9개 국가 정상들은 지난주 금요일 1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수도인 아테네에 모여 공동선언(the Athens Declaration)을 채택했다. 이른바 지중해 국가들(Mediterranean countries)이 한 자리에 모여 '극한의 고온과 싸울 필요성을 확인하고 공동 대응키로 합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 재난(natural disasters)는 더 이상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고, 특히 사상 최고의 폭염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 낸 기후변화'(human-made climate change)라는 점에 방점을 뒀다. 

 

즉,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폭염과 가뭄으로 인해 지난 7월부터 최근까지 발생한 대형 산불(wild fires), 그리고 지난 7월 독일과 벨기에 지역을 강타한 사상 최악의 홍수(flooding) 모두 결국은 자연이 아닌 인간의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이번 정상회의에는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키프러스, 몰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그리스(주최국) 등 9개국이 참석했는데, 그 골자는 '안전하고, 확고하며, 번영가능하고, 공평하며, 지속가능한 미래'(a safe, secure, prosperous, fair and sustainable future)를 제시하는 것이고, 이러한 목표달성은 개인, 지역사회, 지방, 국가 모든 수준에서 동시다발적인 공조에 의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이번  회의에서 “올 여름 발생한 재앙적인 산불은 우리가 배운 최고의 교훈이었다. 더는 시간이 없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지중해 연안국의 중심 지역인 그리스의 아테네는 현재 가장 뜨거운 메트로폴리스로 손꼽히고 있으며, 지금처럼 온도가 상승한다면 이들 연안 국가 중에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첫번째 수도(the first uninhabitable capital city)가 될 것으로 보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7월 이 지역의 온도는 며칠 간 42도를 넘어선 적이 있고, 한때는 사상 유례 없는 47도의 수은주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역시 시실리(Sicily)의 경우 지난 1977년 이래 가장 높은 48.8도를 기록해 사실상 유럽에서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역시 시실리 지역 등에서 산불로 인해 사상자 속출하는 것은 물론, 산림과 농작지역이 대부분 불타버렸다. 
 

유럽 대부분의 지역이 살인적인 무더위에 휩싸운 가운데,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Galicia)에서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영국인 은퇴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남부 안달루시아(Aandalucia) 지역에서도 이달 대형 산불로 인해 1000여명에 가까운 은퇴자와 휴가객이 대피하기도 했다. 

 

지중해 국가인 스페인과 프랑스 역시 이런 기후위기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고, 40도 이상으로 올라가면 산불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온도 상승은 향후 추가적인 재난으로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기후위기는 산불만이 아니라, 홍수로도 유럽을 강타했다. 터어키의 흑해(Black Sea) 연안에서는 지난 8월 홍수와 이로 인한 범람으로 인해 100년만에 사상 유례 없는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한꺼번에 1700명 이상이 해당 지역에서 대피하기도 했고, 330여마을에서 도로 붕괴 및 전력차단 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도 지난 7월 중순 100년만에 최악인 홍수로 인해 서부지역에서 무려 18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고, 인근 벨기기에서도 같은 폭우로 인해 30명 이상이 사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유럽에서는 과연 기후위기가 산불과 홍수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그중에서 최근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일 홍수와 관련해서는 기후위기가 이번 홍수 발생 가능성을 9배 이상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정부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보고서에서는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방출이 지구의 극한 기후(extreme weather)를 초래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명백한 증거(unequivocal evidence)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이번 9개국 지중해 국가 모임처럼 발빠르게 행동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들은 제조업 기반 경제 구조 등 현실적인 이유, 혹은 기업들의 이해 관계, 국민들의 인식수준 등으로 인해 인해 기후위기 예방 혹은 대응을 위한 보다 강력하면서 실제적인 조치들이 나오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여름 폭염이 잦아지면서 기후위기로 인한 문제의식이 높아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지중해 정상회의에서 논의된 것처럼 개인, 기업, 사회, 국가 수준의 다차원적 접근 전략은 여전히 한계에 이르고 있어, 이번 '기후위기가 현실화된 지중해의 여름'을 반면교사로 삼는 것이 시급한 대목이다. 유럽처럼 '실체적 증거'와 맞닥뜨리기 전에 행동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어서다. 

관련기사

93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기획·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