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일상화된 재난사회, 후진국형 안전사고 막을 방법 없나

2022.01.24 06:00:37 이계홍 기자 kdsn6@gmail.com

단속 기관의 엄중조치 엄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 <편집자주> 이달초 전남 광주에서 발생한 신축 아파트의 붕괴로 실종자 수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오는 27일부터 50인 이상의 기업에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안전사고(산업 및 시민 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중대재해로 인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례를 이제는 선진국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처벌'에만 방점이 너무 찍혀 경영자나 사업자에게 너무 과도하는 경영계의 볼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국재난안전뉴스는 재난재해로부터 우리 가족.이웃.사회 모두가 더욱 안전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자, 관련 기획 뉴스 및 사설을 내놓는다.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논설고문 | 지난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산업 주상복합 아파트 붕괴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20일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중장비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또 발생했다.

 

포항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40분쯤 포스코 포항제철소 3코크스 공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석탄 운반기기인 장입차량에 끼인 뒤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한 시간 만에 숨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안전지킴이를 포함해 7명이 작업 중이었으나 사고를 막지는 못했다.

 

이에 앞서 19일엔 전남 영암군 현대삼호중공업에서 하청업체 여성 노동자가 선박 화물창 청소를 하다가 20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하청업체 직원으로 출근한 지 일주일도 안돼 참변을 당했다. 

 

주말인 23일 오후에는 포천베어스타운 스키장에서 상급자 코스의 리프트가 스키어를 태운 체 역주행하면서 중경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하마터면 큰 인재가 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전기 감전사고, 화력발전소 근로자 사망 사고 등 안전사고는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지게차가 후진하다 사람을 덮치고, 고공작업 발판이 무너져 떨어져 사망하고,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다 상판이 무너져 죽고, 화재현장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   

 

재난이 일상화된 사회가 돼버렸다.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으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고 하더라고, 실제로 사고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드는 상황이다.  

 

그러면, 사고를 막을 방법은 없는가.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4월 2020년 산업재해 사고사망 통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산재 사고사망자는 882명으로  전년대비 27명 증가해, 3.2% 늘었다. 매일 약 2,5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셈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전년대비 사고사망자수 30명 증가한 51.9%(458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제조업은 22.8%(201명)로 5명 감소했다. 재해유형별로는 추락 37.2%(328명), 끼임 11.1%(98명)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인적 특성으로는 전체 사고사망자의 39.3%(347명)가 60세 이상이며, 외국인은 10.7%(94명)로 나타났다. 

 

이와 달리 학계 보고에 따르면, 각종 사건사고 등 외부적 요인으로 매년 전국에서 약 3만명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과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등을 통해 나온 수치인데, 또 외상이나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건수는 연간 1000만건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 드는 직접 비용이 수십 조원 규모가 되는데, 산재와 교통 사고 및 재난사고 사망과 부상으로 국가적 손실이 엄청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사회 안전수준은 국민소득 3만달러를 벌써 넘어섰지만 1만달러 이하 중후진국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평가하는 전문가가 많다. 국민의 안전을 담보해야 할 가초적인 안전지수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후진국형 사고가 반복적으로 빈발하는 것은 재난안전관리체계가 취약한 데 원인이 있지만 사회의 물적·안전관리시스템의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여기에 정부의 실천성 없는 형식적·의례적 대처와 무능, 산업현장과의 유착, 안전관리시스템의 부재 등 ‘사고공화국’의 오명을 구조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평가다.  

 

다음으로 산업시설의 노후와 안전관리시스템이 부실하다는 점이다. 대규모 제철소 및 중공업, 중화학공업이나 원전, 지하철, 가스관, 송유관, 도심의 여러 건축물 등이 내구연한을 초과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동원되는 노동자가 대체로 미숙련공이다. 

 

하청업자는 이익을 빼먹기 위해 말이 서툴고 미숙련공인 외국인 근로자나 값싼 비정규직을 투입한다. 안전교육을 실시한다지만, 그들이 생명에 대한 애정이 없는 막장인생들이기 십상이다. 

 

비용을 절감하려고 값싼 노동력을 취하다보니 미숙련공, 고령화, 외국인 근로자화의 외주화가 보편화되는 현실. 따라서 이윤추구만을 노린 미숙련 노동자 채용과 기업의 안이한 근로형태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사고는 빈발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여파로 필요 이상의 강제된 작업속도감도 근로자 안전을 해치고 있다. 정해진 물량을 정해진 기한에 처리해야 하고, 그 경우 가장 취약한 말단 노동자에게 책임의 절대량이 요구된다. 이럴 때 뚜렷한 직업의식이 없는 노동자가 무리하게 서툴게 작업을 하다가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작업 현장에서 작업 노하우가 뛰어난 장인들이 노후화된 시설을 보충하는 역할을 해왔다. 시설이 노후화됐더라도 이들이 이상 징후를 미리 발견해 선제 대응을 하다 보니 사고를 상대적으로 잘 막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자리에 비정규직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을 한다. 또 회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근무 여건이 불안정한 외주화 작업이 이루어지니 안전 장치도 미흡해지고, 작업에 대한 열의도 없다. 이 모든 것이 돈문제로 결부된다. 값싼 노동력으로 가성비를 높이겠다고 하지만 구조적으로 노동의 질이 떨어지고, 사고 요인은 늘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가장 큰 문제가 ‘하청 문화’다. 늘 반복되는 문제지만 하청을 받은 업자가 이익을 빼먹으려면 값싼 노동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추락·화재 등으로 사망한 근로자 중 하청업체 노동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인건비를 뽑아먹기 위해 미숙련공을 과도한 노동현장에 투입하거나 위험한 곳에 투입한 결과가 이렇게 나온다는 게 전문가의 중론이다. 

 

원청은 하청업체한테, 하청업체는 재하청업체에 단가를 후려쳐 주면서도 정작 안전교육이나 안전장비 설치 등은 소홀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처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방'을 통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우리 가족과 이웃을 얼마나 구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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