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선임기자 | 2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25층짜리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하마터면 대형 사고로 전락할 뻔했다. 화재 때 작동해야 하는 비상벨은 물론 안내방송도 없었고, 내부에서 스프링쿨러도 작동하지 않아 대규모 인명피해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이 나자 주민 60여명이 옥상 등으로 긴급 대피했으며, 이중 12명이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됐으며, 구조 주민 가운데 4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문제는 화재 발생 이후 주민 안전확보를 위한 대응절차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열 감지에 따라 스프링쿨러가 작동해야 하는데, 작동하지 않았다. 한 주민은 "불이 났는데도 스프링쿨러가 작동을 안했고, 경보기도 울리지 않아 자신이 직접 눌렀으며, 이웃 주민 대피도 문을 두들겨 대피시켰다"고 했다.
비상벨도 작동하지 않았고, 안내방송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주민도 "경보기나 비상벨이 안울려서 연기를 보고 대피했다"고 했고, 또 다른 주민은 "8층 주민이 문을 두들겨서 그때 불이 난 걸 알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주민들 스스로의 자구책이 없었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었다.
백주 대낮에 이 지경이었다면, 만약에 밤중에 이런 사고가 났다면 대형 사고가 되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 참사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에따라 아파트 주거문화를 근본부터 따져보기로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대도시는 고층 아파트 붐이 일고 있다. 빌딩도 고층화를 지향하고 있다. 좁은 땅에 경제성을 살리는 등 효능감을 높이기 위해 이같이 건물의 고층화가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고층화의 가장 취약점인 화재에 잘 대비하고 있는가. 고층 건물에서의 화재사고는 한번 사고가 났다고 하면 결정타를 안겨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입장이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아닌 것 같다. 고층아파트 및 고층 빌딩의 화재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수년 전 부산 해운대 주상복합아파트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미 예고된 사고가 일어났을 뿐이다. 강풍이 불면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바닷가에 건축 허가를 내준 것에서부터 그곳이 태풍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화재가 아니더라도 태풍이 불어닥쳐 고층 아파트 유리창이 파손되는 등 사고가 빈발했다.
시민들이 경관을 구경하고 즐겨야 할 곳에 돈 많은 소수가 독점하며 살도록 건물을 짓도록 해 준 것은 건설자본과 건축허가권자인 관청이 결탁했기 때문이다.
바닷 바람도 특정인의 독점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바람이 조금이라도 세게 불면 헬기를 이용한 화재진압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가를 내주었다. 자본과 관의 유착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관이 이런 사고를 방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례는 해운대만의 일이 아니다. 허가를 내주어서는 안될 곳에 내주고, 화재의 위험성을 감안한 설계가 아니라 형식적이고 눈가림식의 설계가 적지 않다고 한다. 사고가 난 뒤에 허점 투성이로 드러난 것만 보아도 이것들이 증명이 된다. 우선 허가에 따른 기초적인 자격 유무를 따지고, 정 허가를 내준다면 저층으로 해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고층아파트 유행은 언론과 건설자본의 장난에서 비롯됐다. 언론은 고층일수록 조망권을 내세워 일등 아파트인 양 오도시킨다. 건설자본은 ‘땅이 좁은 나라라 어쩔 수 없다’고 고층으로 짓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다. 모든 구조물의 시공은 기초공사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조금만 보강해주면 고층으로 올릴 수 있으니 돈벌이가 쉽다. 그래서 안전은 뒷전이고 고층화는 유행하는 것이다.
유럽의 사정을 보자. 유럽도 한때는 고층 아파트를 선호했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중ㆍ저층으로 전환했다. 우리나라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도 고층아파트를 짓지 않는다. 저층이 살기 좋고 편안하며, 무엇보다 안전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된 후 동독지역의 고층아파트 처리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회주의 국가였으니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으로 고층아파트를 지었으나 통일 후 빈집이 많이 생겨 거주하기 불편해지자 고안해낸 것이 아파트를 중저층으로 반토막내는 공사였다고 한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 채택한 방식이라데, 또다른 이유 중 하나가 우스갯 얘기지만 고층에 살면 부부싸움 횟수도 잦다는 연구결과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불안 횟수가 많아져 사소한 것에도 신경 예민하게 부딪칠 수 있다는 논거를 대고 있다.
필자 역시 27층 짜리 아파트 중 17층에 살지만 늘 조마조마하고 화재가 나면 어떡하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런 때 신경 거슬릴 일 있으면 부르르 화를 내게 되고, 자연 곁에 있는 사람에게 신경질을 부리게 된다.
싱가폴은 고층아파트에 5~6층마다 옆 동과 연결된 대피 시설이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그곳으로 먼저 피한다. 우리의 경우 이웃집과의 프라이버시 문제로 이것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기초적인 문제부터 안전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고층아파트는 언젠가는 흉물처럼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먼 미래를 보아 아파트도 10층 이내로 제한했으면 한다. 그것이 비용을 덜게 될지도 모른다. 극 도심화를 계획하기보다 도시의 평면 범위를 넓힐 필요도 있다. 좁은 땅덩어리라고 하지만 교통 인프라만 깔면 전국을 메가시티화할 수 있다.
안전문제 뿐아니라 시민 정신 안정을 고려해 아파트 고층화는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기왕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면 안전과 재난관련법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