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는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노동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공사는 이제 초기 단계여서 땅을 파기 위해 굴착기와 흙은 나르는 덤프트럭들이 움직이고, 철근과 건축자재가 쉴 새 없이 오간다. 몇 미터만 발을 잘못 디뎌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곳이다.
현장에서는 매일 안전을 강조한다. 그러나 공사가 본격화하면 안전보다 ‘공정’이 앞선다.
건설현장이 산업재해 사망 사고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건설업은 해마다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다.
고용노동부의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고사망자는 605명으로 전년보다 16명 증가했다. 이 가운데 건설업 사망자는 286명으로 전체의 47.3%를 차지했다. 제조업은 158명, 기타 업종은 161명이었다. 사실상 사고사망자 2명 가운데 1명 가까이가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셈이다.
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사고 사망자수 상위 기업 10곳의 산재 사망자는 53명이었는데 업종별로 분류하면 건설업이 7곳, 배달업이 2곳을 차지했다.
기업별로 배달 플랫폼인 우아한청년들에서 8명의 산재사망자가 나와 가장 많았지만, 이어 현대엔지니어링(7명), 포스코엔지니어링(7명), HJ중공업 건설부문(6명), 카카오모빌리티(5명), GS건설(4명), 현대건설(4명), 대우건설(4명), 삼정기업(4명), 제주항공(4명) 순으로 건설회사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만이 아니다. 2021년에도 9곳, 2022년에는 10곳, 2023년엔 9곳, 2024년엔 5곳을 차지해 건설업 산재사망자가 매년 압도적이었다.
10월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산재로 연간 3명 이상 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업에 영업이익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6개월 후 법안이 시행되면 지난해 기준 산재사망자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부과 대상이 된다.
가령 4명의 산재사망자가 나온 현대건설의 작년 영업이익은 6530억 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최대 5%를 적용하면 과징금이 326억5천만 원에 달한다. 과징금 부과는 동일 법인 산하의 모든 사업장을 기준으로 하므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건설현장이나 물류센터가 다르더라도 합산해 집계된다.

건설업, 왜 유독 사망사고가 많은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위험은 추락이다. 비계나 작업발판, 지붕, 개구부 등에서의 추락은 한 번 사고가 나면 중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건설기계와 차량에 부딪히거나 자재에 깔리는 사고, 구조물이 무너지는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위험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장에 안전난간이 설치돼 있고 안전모를 쓰고 있다 해도 공사 순서가 바뀌거나 작업자가 바뀌고, 여러 공종이 동시에 투입되면 위험은 달라진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건설업 산재 감소 방안을 연구한 결과에서도 고용의 불안정, 위험성평가 소홀, 작업자의 역량 부족, 안전관리 역량 부족 등이 안전관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건설현장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다. 공사가 늦어지면 인건비와 장비 임차료가 늘고 준공 지연에 따른 비용까지 발생한다. 결국 현장에서는 예정된 공기를 맞추기 위한 압박이 생긴다.
실제 건설현장 취재에서도 착공 초기에는 안전교육과 장비점검이 철저했지만 공사가 지연되면서 잔업이 늘고 안전관리가 뒷전으로 밀렸다는 노동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공사기간과 안전을 별개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이 공사기간에 처음부터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도급 구조도 문제다
발주자에서 원청, 하청,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노동자는 가장 아래 단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원청의 안전관리 시스템이 현장 말단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책임과 관리의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기술관리연구실장은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처벌법 등 처벌 제도가 강화됐는데도 사고가 계속되는 현실은 처벌만으로는 사고 예방에 한계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며 “정부와 기업, 노동자 모두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소규모 건설 현장이 더 위험하다
2025년 전체 사고사망자 가운데 50억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351명이었다. 특히 5억 미만 사업장에서는 174명이 숨져 전년보다 22명, 14.5% 증가했다.
고용노동부는 건설업에서도 공사기간이 짧고 안전관리 수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5억 원 미만 소규모 현장의 사망자 증가가 전체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소규모 현장일수록 안전관리자를 별도로 두기 어렵고 안전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부족하다. 사고를 막는 데 필요한 안전난간 하나, 추락방지망 하나가 공사비 부담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도 올해 소규모 건설현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은 2026년 730명의 ‘건설업 안전한 일터 지킴이’를 운영하면서 중소규모 현장과 지붕공사를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추락방지시설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감독과 처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건설현장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처음부터 적정한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책정하고, 하도급 단계에서도 안전비용이 실제 현장에 전달되도록 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안전수칙’만 탓하면 사고를 막을 수 없다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흔히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부터 나온다. 그러나 사고 원인을 개인의 부주의로만 돌리면 사고가 반복되는 구조를 놓치게 된다.
왜 작업자는 위험한 곳에서 작업했는지, 왜 안전시설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는지, 작업을 멈추고 위험을 개선할 시간이 없었는지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
정부도 최근 노동안전 종합대책에서 적정 공사비와 충분한 공사기간을 보장하고,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 단속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안전을 비용이 아니라 공사의 필수 조건으로 보겠다는 방향이다.
안전은 사고가 난 뒤 공사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기 전에 공사를 멈출 수 있는 권리와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안전수칙을 지키라’는 구호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정 공사비와 공사 기간, 책임 있는 원청 관리, 실효성 있는 하도급 관리, 소규모 현장에 대한 지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