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건설현장의 산업재해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추락이나 끼임 같은 사고뿐 아니라 오랜 기간 육체노동을 하면서 몸에 쌓인 부담이 질병으로 이어지는 ‘질병 산업재해’ 신청이 불과 3년 만에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건설근로자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반복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작업이 계속되는 건설업의 특성까지 겹치면서 산업안전 정책도 사고 예방뿐 아니라 노동자의 장기적인 건강보호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 산업재해 신청은 4만2,837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만5,958건이 산재로 인정됐다.
건설업 산재 신청은 2022년 3만3,149건에서 2023년 3만5,349건, 2024년 3만8,932건, 지난해 4만2,837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3년 만에 29.2% 늘어난 셈이다.
증가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까지 접수된 건설업 산재 신청만 3만3,297건에 달한다. 지금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연간 신청 건수는 지난해를 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
사고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는 ‘질병 산재’
눈여겨볼 대목은 질병 산재의 가파른 증가세다. 건설업 질병 산재 신청은 2022년 4,542건에서 지난해 2만건으로 늘었다. 불과 3년 사이 4.4배가 된 것이다. 전체 건설업 산재 신청이 같은 기간 29%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질병 산재 증가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올해 들어서는 증가세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8월까지 건설노동자가 신청한 질병 산재는 1만9,258건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신청 건수에 육박했다. 이 가운데 1만2,582건이 산재로 승인됐다.
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이 산재를 인정받는 사례도 늘고 있다. 건설노동자 유족의 질병 산재 승인은 2022년 58명에서 지난해 103명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올해도 8월까지 73명이 질병 산재로 인정됐다.
건설업은 그동안 산업재해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고위험 업종으로 꼽혀 왔다. 지난해 산재보험 유족급여 승인 기준 건설업 사고사망자는 361명으로 전체 사고사망자의 41.4%를 차지했다.
추락·끼임·깔림 같은 눈에 보이는 사고 위험에 더해 이제는 장기간 노동하면서 서서히 축적되는 건강 위험까지 건설현장의 또 다른 안전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평균 연령 50세 넘은 건설현장.. 고령화 가팔라
질병 산재의 급증 배경에는 건설근로자의 빠른 고령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 자료 등을 토대로 한 건설근로자공제회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건설업 취업자의 평균 연령은 50.2세였다. 기능원 및 관련 기능종사자는 51.1세, 단순노무종사자는 53.0세로 더 높았다. 특히 단순노무종사자 가운데 60대 이상이 34.7%, 50대가 32.7%를 차지했다. 50대 이상이 전체의 3분의 2가 넘는 셈이다.
건설현장의 고령화는 다른 산업보다 안전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철근과 거푸집, 콘크리트 타설, 자재 운반 등 상당수 공정이 육체적 힘을 요구한다. 무거운 물건을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거나 허리를 숙이고 쪼그려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어깨와 허리, 무릎 등에 부담이 오랜 기간 누적되면 근골격계 질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옥외작업이 많은 건설업 특성상 여름철 폭염과 겨울철 한파에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많고, 공사기간에 맞춰 작업해야 하는 특성도 노동자의 신체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젊은 노동자의 신규 유입이 줄어들면서 숙련된 고령 노동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건설업의 인력구조 역시 쉽게 바뀌기 어려운 상황이다.
운수업도 심상찮다.. 질병 산재 84% 증가
육체적 부담이 큰 다른 업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육상·수상운수업의 산재 신청은 2022년 1만162건에서 지난해 1만4,858건으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산재 승인도 9,317건에서 1만3,420건으로 늘었다.
특히 질병 산재 신청은 615건에서 1,134건으로 84% 증가했다. 질병 산재 승인도 292건에서 409건으로 늘었다. 운수업 역시 장시간 운전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는 업무 특성 때문에 목과 허리 등에 근골격계 부담이 쌓이기 쉽다. 장시간 노동과 불규칙한 근무가 계속될 경우 뇌·심혈관계 건강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
배달·배송 노동자의 경우 장시간 도로를 주행하면서 폭염과 한파, 비와 눈 등 악천후에도 노출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직업성 건강 위험이 존재한다.
‘떨어짐·끼임’ 막는 안전 넘어 노동자의 ‘몸’ 살펴야
이번 통계는 산업안전 정책의 범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건설업 안전대책은 그동안 추락과 끼임, 부딪힘 등 사고성 재해를 줄이는 데 상대적으로 집중돼 왔다. 안전난간과 안전대 착용, 위험성평가, 작업계획 수립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사고 예방은 여전히 중요하다. 지난해에도 건설업에서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질병 산재가 이처럼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고령 노동자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작업 배치와 중량물 취급 개선, 반복작업 감소, 충분한 휴식시간 확보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폭염·한파에 따른 작업시간 조정과 근골격계 부담작업에 대한 예방관리도 중요하다.
특히 질병 산재는 사고처럼 발생 시점과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랜 기간 작업하면서 생긴 질환이 업무 때문인지, 개인적 요인이 얼마나 작용했는지를 판단하는 과정도 복잡하다. 따라서 앞으로는 신청 건수 증가뿐 아니라 어떤 질환의 신청과 승인이 늘었는지, 노동자의 연령과 근속기간, 직종 및 작업 형태 등까지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태영 의원은 “건설·배달업처럼 육체적 부담이 큰 노동환경에서 질병 산재가 급증하는 만큼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예방할 대책이 시급하다”며 “질병 산재는 인과관계 입증이 까다로운 만큼 노동자에게만 입증 책임을 맡기지 않도록 산재 인정 절차와 지원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