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슈] “죽지 않고 일할 권리” vs “기업 옥죄기”… 확 바뀐 산안법, 현장 바꿀까

작업중지권 확대하고 반복 사망사고 기업엔 영업이익 최대 5% 과징금
노동계 “위험하면 멈출 권리 실질화”.. 경영계는 비용·경영 부담 우려
처벌만으로 산재 줄이기 한계.. 중소사업장 예방 역량 높이는 게 관건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위험하면 일단 멈춰라.”


산업현장의 오랜 원칙이지만 현실에서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사고 위험을 느껴도 작업을 중단했다가 공정에 차질을 빚거나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하청 노동자라면 원청에 직접 작업중지를 요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확대하는 동시에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기업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까지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반복적인 중대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은 등록 말소 요청까지 가능해진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한층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기업 현장에서는 “안전 강화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제재 수위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법을 강화하는 것만으로 산업재해가 줄어들 수 있느냐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사고 난 뒤 처벌’에서 ‘사고 전 멈춤’으로
이번 개정의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작업중지 범위 확대다. 노동자뿐 아니라 근로자대표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이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주에게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다. 하청 노동자도 원청에 직접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 스스로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는 요건도 넓어졌다. 기존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서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까지 확대한 것이다.

 

산업안전의 무게중심을 사고 이후의 책임 규명에서 사고 이전의 예방으로 한 발 더 옮겼다는 의미가 있다. 대형 산업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왜 위험한 줄 알면서도 작업을 계속했느냐”는 지적이 반복돼 왔다. 하지만 생산 일정과 공사기간, 원·하청 관계 등이 얽힌 실제 현장에서 개별 노동자가 작업을 중단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 법 개정에 노동계와 근로자 측이 기대를 거는 이유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가 위험 신호를 발견했을 때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작업을 멈추게 하는 것이 가장 직접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 범위도 넓어진다.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뿐 아니라 노동자가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생사가 불분명한 경우 등에도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기업을 초긴장시키는 과장금 ‘영업이익 5%’
기업들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은 과징금이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1년 동안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매기는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기존의 정액형 벌금이나 과태료와 달리 이익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과징금 절대액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기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효과다. 산업재해가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비용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사후 제재를 넘어 안전시설과 인력, 교육 등에 대한 선제적인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계에서는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와 별개로 제재 수준이 과도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존 법률에 따른 형사책임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제재가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대규모 과징금까지 더해지면 기업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는 논리다.


산업현장의 사고가 사업주의 안전조치 미흡뿐 아니라 노동자의 작업 방식, 설비 결함, 원·하청 구조, 공정 특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과만 놓고 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번 과징금은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부과되는 구조는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1년간 3명 이상이 사망한 경우가 대상이며 과징금 역시 영업이익의 일률적인 5%가 아니라 ‘5% 이내’다.


결국 기업 규모와 위반 정도, 사고 경위 등을 과징금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가 향후 하위법령 마련 과정의 핵심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폭염·한파도 안전 문제… 예방 범위 넓어져
개정안은 처벌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다. 건설공사 기간 연장 사유에 폭염과 한파를 명확하게 포함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공기를 맞추기 위해 폭염이나 혹한에도 무리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관행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도 건설공사 발주자에서 도급인과 다른 업종으로 확대된다. 산업재해 예방에 필요한 돈을 비용으로 명확하게 인정하고 현장에서 실제 안전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노사정이 함께 산업안전 정책을 논의하는 ‘안전한일터위원회’도 고용노동부에 설치된다. 노동계와 경영계,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산업재해 예방 기본계획 등 주요 정책을 심의한다. 산업안전을 정부의 규제나 기업의 의무만으로 보지 않고 노동자와 사용자, 정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로 접근하려는 변화다.


강한 처벌이 곧 안전한 일터는 아니다
관건은 법 시행 이후다. 강력한 제재가 기업의 안전투자를 늘리고 작업중지권 확대가 사고 직전의 ‘마지막 안전장치’로 작동한다면 산업재해 감소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안전비용을 줄이는 것이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더 큰 경제적 위험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


그러나 법과 처벌이 강화됐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한 일터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영세 사업장은 안전관리 전문인력과 비용, 기술 자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무엇이 위험한지 알아도 개선할 사람과 돈이 부족하다면 처벌 강화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부의 기술·재정 지원과 전문인력 확충, 실효성 있는 위험성평가와 안전교육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작업중지권도 마찬가지다. 법에 권리가 적혀 있어도 노동자가 불이익을 걱정해 사용하지 못한다면 제도의 취지는 반감된다. 반대로 ‘위험 우려’의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면 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에 작업중지를 둘러싼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분명 산업현장의 안전에 관한 책임과 권리를 한 단계 강화했다. 하지만 진짜 성적표는 법 조문의 강도가 아니라 앞으로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고와 죽음을 막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에는 안전을 비용이 아닌 경영의 기본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변화가, 노동자에게는 위험 앞에서 실제로 “멈추겠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정부 역시 처벌과 감독을 넘어 취약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을 찾아내고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고,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며 “새로운 제도가 현장에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줄이겠다는 법의 목표에는 노사 모두 큰 이견이 없다. 근로자에게 큰 손실이지만, 기업에게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얼마나 강하게 처벌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하면 실제 사고를 줄일 것인가’다. 개정 산안법의 성패 역시 그 지점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어서 현장 적용에서 실제 효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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