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산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작업을 멈추거나 사업주에게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안전·보건조치 의무 위반으로 1년간 노동자 3명 이상이 숨지는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주에게는 영업이익의 최대 5%에 달하는 과징금도 부과된다.
반복적인 사망사고에도 안전관리가 개선되지 않는 사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산업재해 예방 정책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는 ‘안전한일터위원회’도 신설된다.
국회는 1일 본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노동안전 종합대책’의 핵심 과제들이 법률에 반영된 것이다. 개정안은 제도별로 공포 즉시 또는 공포 후 3개월·6개월·1년 뒤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이번 개정안의 큰 방향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뒤 사업주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이 실제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현장에서 작업을 멈출 수 있도록 예방 기능을 강화한 데 있다. 동시에 반복적인 사망사고를 일으킨 기업에는 경제적 책임을 강화해 안전 투자를 유도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사고 난 뒤가 늦다”… 작업중지권 대폭 확대
현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할 변화는 ‘작업중지’ 제도다. 노동자뿐 아니라 근로자대표와 명예산업안전감독관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거나 그럴 우려가 있을 경우 사업주에게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다.
특히 하청 노동자도 원청에 직접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다단계 도급구조가 많은 건설·제조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가 자신을 고용한 사업주를 거치지 않고 원청에 위험 상황을 알리고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개별 노동자의 작업중지·대피 범위도 넓어진다. 지금까지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었다면 앞으로는 급박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도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는 범위도 확대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뿐 아니라 노동자가 사고로 부상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거나 생사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등에도 정부가 작업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사업주가 안전난간 설치 등 시정조치 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시정이 끝날 때까지 작업을 재개할 수 없도록 하는 ‘작업금지 의무’도 신설됐다.
1년에 3명 이상 사망하면 ‘영업이익 5%’ 과징금
기업 입장에서 파급력이 큰 조항은 ‘사망사고 과징금’이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1년 동안 3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면 영업이익의 5% 이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징수된 과징금은 산재보험기금에 귀속돼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사용된다. 정부는 기업에 대한 단순한 제재 강화가 아니라 기업 규모와 위반행위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기업의 안전 투자를 확대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조항은 법 공포 6개월 뒤부터 시행된다.
반복 사망사고 사업은 ‘등록 말소’ 요청까지
반복적으로 중대한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에 대한 제재도 한층 강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한 사고에서 2명 이상이 동시에 숨지는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3년 동안 영업정지 처분을 두 차례 이상 받았는데도 다시 영업정지 요청 대상이 될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관계 행정기관에 해당 사업의 등록 말소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단순 과태료나 영업정지를 넘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사업 등록 자체를 말소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관련 조항은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폭염·한파도 ‘공사기간 연장’ 사유로 명문화
기후변화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폭염과 한파에 대한 안전장치도 법에 명확하게 담겼다. 건설현장에서 도급인이 공사기간 연장을 요청할 수 있는 사유에 폭염과 한파를 명시했다. 기존에는 태풍·홍수 등 악천후와 전쟁·사변, 지진, 화재, 전염병, 폭동 등이 규정돼 있었는데 폭염과 한파를 명확한 사유로 추가한 것이다.
공사기간을 맞추기 위해 폭염이나 한파 속에서도 작업을 강행하면서 노동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줄이려는 취지다. 이 규정은 법 공포일부터 시행된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적용 범위도 넓어진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 계상 의무를 건설공사 발주자에서 도급인 및 다른 업종으로 확대한다. 건설 분야는 공포 6개월 뒤, 건설업 이외 분야는 공포 1년 뒤 적용된다.
노사정 함께 산재정책 논의… ‘안전한일터위원회’ 신설
산업안전 정책을 논의하는 별도 사회적 협의기구도 만들어진다. 고용노동부에 신설되는 ‘안전한일터위원회’에는 노동계와 경영계, 산업안전·보건 전문가 등이 참여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전체 위원은 20명 이내로 구성한다.
위원회에서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본계획을 비롯한 주요 산업안전·보건 정책을 심의한다. 정부뿐 아니라 현장의 안전 주체인 노사와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산업재해 예방 정책을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관련 규정은 공포 3개월 뒤 시행된다.
안전법 위반 신고하면 포상금… 현장 감시도 강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신고포상금 제도도 도입된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이나 이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사실을 신고한 사람에게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신설됐다. 정부는 시행령 등 하위법령을 마련해 구체적인 포상금 지급 기준을 정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위험요인이나 법 위반 사실을 적극적으로 신고하도록 해 사업장의 법 준수를 유도하고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취지다. 신고포상금 제도는 공포 3개월 뒤 시행된다.
반면 기업의 불필요한 행정·비용 부담을 줄이는 내용도 포함됐다. 안전인증 대상 기계 등에 대해 수출 목적으로 수입하는 경우에도 안전인증을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법 공포일부터 시행된다.
‘사고 후 처벌’ 넘어 ‘사전 예방’ 강화… 현장 안착이 관건
이번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은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주체와 책임을 동시에 확대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동자에게는 위험 상황에서 작업을 멈추고 대피하거나 작업중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넓히고, 사업주에게는 안전조치와 안전투자에 대한 책임을 강화했다. 정부 역시 위험 현장의 작업을 중지시키고 반복적인 사망사고에 행정·경제적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수단을 추가로 확보했다.
특히 ‘급박한 위험’뿐 아니라 그러한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까지 작업중지 범위가 확대되면서 앞으로 산업현장에서 어느 정도의 위험을 작업중지 요건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제도 정착의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영업이익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 역시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구체적인 부과 기준 등 하위법령 마련 과정도 주목된다.
개정안은 내용별로 시행 시기가 다르다. 건설공사 기간 연장 사유 확대와 안전인증 면제 확대는 공포일부터 시행되고, 안전한일터위원회와 신고포상금 제도는 공포 3개월 뒤 시행된다. 작업중지 범위 확대와 반복 사망사고 사업 등록 말소 요청, 사망사고 과징금 등은 공포 6개월 뒤 시행된다. 건설업 외 업종에 대한 산업안전보건관리비 확대는 공포 1년 뒤 적용된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고, 살려고 나간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무”라며 “지난해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통해 발표한 주요 과제가 법제화된 만큼 정부는 하위법령 정비 등 새로운 제도가 현장에 잘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사정이 함께 참여하는 안전한일터위원회 구성·운영을 통해 안전 주체인 노사가 현장에서 산재 예방을 위한 역할과 책무를 잘 이행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