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의 역습] ①편리함에 저장된 에너지, 새로운 위험이 되다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전기차부터 스마트폰, 전동킥보드, 보조배터리, ESS(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배터리는 우리 생활의 필수품이 됐다. 그러나 에너지를 저장하는 배터리가 때로는 화재와 폭발이라는 새로운 위험으로 역습을 하고 있다. 배터리는 왜 불이 나고, 왜 끄기 어려우며,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져야 할까. “우리는 과연 배터리 시대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 한국재난안전뉴스는 제조에서 사용·재활용, 소방과 보험, 해외 규제와 미래 기술까지 배터리의 빛과 그림자를 10회에 걸쳐 추적한다. (편집자 주)

 

2024년 8월 1일 오전 6시 15분. 인천 서구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주차돼 있던 전기차 한 대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주변으로 번졌다. 소방대가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완전히 불이 꺼진 것은 화재 발생 8시간20분 뒤였다.

 

그 사이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23명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주차장 내부 온도는 1000도 이상 치솟았고 배관 등이 녹으면서 정전과 단수까지 발생했다. 한 대의 자동차에서 시작된 불이 아파트 주민들의 일상을 뒤흔든 것이다.

 

 

이 사건은 사람들이 배터리의 위험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전기차를 충전하고, 전동킥보드를 타고,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시대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하는 ESS에도 대량의 배터리가 들어간다. 배터리는 어느새 우리 생활과 산업의 곳곳에 자리 잡았다.

 

문제는 배터리가 단순한 ‘전기 저장장치’가 아니라는 데 있다.

 

◇작은 셀 하나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에너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전해질, 그리고 양극과 음극이 직접 맞닿지 않도록 하는 분리막으로 구성된다. 충전할 때 리튬이온이 이동하고 방전할 때 다시 이동하면서 전기를 만들어낸다.

 

평소에는 안정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외부 충격이나 내부 결함 등으로 분리막이 손상되거나 전기적 단락이 발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셀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연쇄적인 화학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이게 바로 공포의 ‘열폭주(Thermal Runaway)’ 현상이​다.

 

서울대 화학부 임종우 교수 연구팀은 2024년 배터리 열폭주 과정에서 음극과 양극 사이의 자가증폭 반응이 열폭주를 급격하게 악화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임을 규명했다. 임 교수팀은 열폭주가 일어나면 배터리 온도가 수 초 만에 1000도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하나가 뜨거워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인접한 셀까지 열이 전달되면 또 다른 셀에서 열폭주가 발생하고, 다시 주변 셀로 번질 수 있다. 수백, 수천 개의 셀이 모여 있는 전기차 배터리팩이나 ESS에서는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임 교수는 당시 인터뷰에서 배터리 화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보다는 열폭주의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산업계와 학계가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면서 안전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배터리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에너지 밀도’가 문제

 

그렇다고 배터리 자체를 위험한 물건으로 볼 수는 없다. 배터리 기술의 발전은 같은 크기와 무게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저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덕분에 스마트폰은 얇아졌고 전기차는 한 번 충전으로 더 먼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됐다. 에너지 밀도가 높아진 만큼 편리성도 커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곳에 저장된 에너지의 양도 커졌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배터리 내부의 에너지가 한꺼번에 방출될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리튬이온 배터리는 열폭주가 시작되면 단순히 배터리 표면의 불꽃만 제거하는 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배터리 화재는 충격이나 과충전 등 여러 요인이 원인인데 무엇보다 예방과 안전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배터리 시대’의 안전 기준은?

 

배터리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넘어 산업시설과 에너지 저장 분야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안전의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전기차에서는 충돌 이후 배터리 손상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아파트에서는 지하주차장의 화재 감지와 소화설비를 고민해야 한다. ESS에서는 대규모 배터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전동킥보드와 보조배터리에서는 사용자가 충전과 보관 과정에서 지켜야 할 안전수칙이 중요하다.

 

소방청도 전기차 화재의 진압 시간이 내연기관 차량보다 길고 더 많은 소화수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지하주차장 소방시설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는 이미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가 됐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은 배터리가 아니다. 배터리가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배터리의 역습’은 배터리를 두려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배터리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터리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 때문에 불이 붙으며, 왜 진화가 어려운지, 전기차와 전동킥보드, 보조배터리, ESS에서는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 불탄 배터리는 어디로 가며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지 그런 걸 사전에 이해하고 있어야만 정확한 대처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배터리 시대를 맞을 준비가 돼 있는가”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