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안전] ⑮횡단보도에서는 왜 사고가 끊이지 않을까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횡단보도는 보행자와 자동차가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보행자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고 신호까지 설치돼 있지만, 횡단보도 사고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횡단보도 사고는 차량이 보행자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거나, 보행자가 신호를 믿고 주변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순간 발생한다. 따라서 어느 한쪽의 주의만으로는 사고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

 

횡단보도 사고에서 가장 흔한 착각 가운데 하나가 “보행 신호가 켜졌으니 이제 안전하다”는 생각이다.

 

보행 신호가 켜졌더라도 차량이 정지선을 넘어 들어오거나, 우회전 차량이 보행자를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뿐 아니라 운전자의 부주의, 사각지대, 급하게 회전하는 차량 등이 예기치 못하는 위험 요소다.

 

특히 횡단보도에 진입하기 전에는 좌우를 한 번 더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어린이와 고령자는 차량의 접근을 판단하고 피하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어 더욱 주의해야 한다.

 

◇가장 위험한 차량은 ‘우회전 차량’

 

횡단보도에서 특히 주의해야 하는 것이 우회전 차량이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인 2021~2025년 우회전 보행자 교통사고는 1만 9235건 발생했고, 이 사고로 305명이 숨지고 1만 9640명이 다쳤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매년 60명 안팎의 보행자가 우회전 차량에 목숨을 잃은 셈이다.

 

우회전 차량은 좌회전이나 직진 차량보다 보행자를 놓치기 쉽다. 운전자가 회전 방향에 시선을 집중하거나 차량 구조물에 의해 보행자가 가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전문 정경일 변호사는 우회전 사고의 핵심은 “멈춰야 사람이 보인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특히 대형 트럭은 우측에 사각지대가 크게 생기기 때문에 보행자를 발견하기 어렵고, 어린이나 노인은 차량을 피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 사고에 취약하다.

 

우회전 차량을 만났다면 차량이 완전히 멈췄는지 확인한 뒤 건너야 한다. 차량의 방향지시등만 보고 ‘차가 나를 봤겠지’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운전자 역시 우회전할 때는 속도를 충분히 낮추고 횡단보도 주변을 확인해야 한다. 보행자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회전하는 순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일단 멈춤’

 

우회전 차량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운전자의 일시정지 습관이 중요하다. 정경일 변호사는 일시정지가 단순히 단속을 피하기 위한 규정이 아니라 “멈춰야 사람이 보인다”​는 안전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이 움직이는 상태에서는 운전자의 시야가 제한될 수 있지만, 차량을 멈추면 운전자가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뛰지 말아야 하는 이유

 

횡단보도에 도착하면 빨리 건너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뛰어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횡단보도에서는 오히려 천천히 주변을 살피며 건너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신호가 바뀌기 직전에 뛰어들거나, 보행 신호가 끝나기 전에 급하게 건너는 행동은 위험하다.

 

횡단보도 중앙까지 왔다고 해서 안심해서도 안 된다. 차량은 양쪽에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는 동안에도 휴대전화 화면을 보거나 이어폰으로 주변 소리를 차단하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스마트폰은 횡단보도에서 잠시 내려놓자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역시 사고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하면 차량의 움직임이나 주변 사람의 행동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이어폰까지 착용하고 있으면 자동차 경적이나 주변의 위험 신호를 듣지 못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도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고, 보행 중 스마트폰 주의 안내를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 왔다. 당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보행자 교통사고 예방과 보행자를 배려하는 안전문화 정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길을 건너는 몇 초 동안만이라도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것이 좋다. 지도나 메시지를 확인해야 한다면 횡단보도를 건넌 뒤 안전한 장소에서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린이와 고령자는 더욱 조심해야

 

어린이는 키가 작아 운전자의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고, 갑자기 뛰어드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어린이에게는 단순히 “신호등이 초록색이면 건너라”고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고, 좌우를 살피고, 차량이 멈췄는지 확인한 뒤 건너도록 반복해서 교육해야 한다.

 

고령자의 경우에도 횡단보도를 건너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신호가 바뀌기 직전에 무리하게 건너기보다는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다.

 

특히 대형 차량 주변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정경일 변호사 역시 대형 트럭의 사각지대와 어린이·노인 보행자의 취약성을 우회전 사고의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적했다.

 

◇횡단보도 자체도 바뀌고 있다

 

횡단보도 시설을 개선하는 것도 사고 감소에 효과를 주고 있다. 제주에서는 보행시간을 늘리고 차량 신호보다 보행 신호를 먼저 주는 ‘보행자 우선출발신호(LPI)’ 등을 도입한 결과, 고령 보행자가 많은 219곳에서 개선 전후 분석 기간 동안 차 대 보행자 사고가 4건에서 0건으로 감소했다. 우회전 차량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도 25.3% 줄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유태선 본부장도 “맞춤형 신호체계 개선은 보행자와 차량 모두의 안전을 높이는 핵심 수단”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우회전 차량과 보행자의 충돌을 줄이기 위해 횡단보도를 차량 회전 지점에서 일정 거리 떨어뜨려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연구에서는 차량 회전 지점에서 약 3m 떨어진 곳에 횡단보도를 설치하면 우회전 차량과 보행자의 충돌 가능성이 평균 7%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안전한 횡단보도는 보행자에게만 주의를 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차량의 속도를 낮추고,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하며, 보행자가 먼저 보이도록 도로환경 자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횡단보도 안전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보행자는 멈추고, 살피고, 확인하고, 천천히 건너는 것이고, 운전자는 속도를 줄이고, 일시정지하고, 보행자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매일 수없이 오가는 횡단보도지만 사고는 언제나 방심하는 순간 찾아온다. 몇 초의 기다림과 한 번의 확인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