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로봇이 바꾸는 산업안전] ⑩해외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AI와 로봇이 산업현장에 빠르게 들어오면서 세계 각국의 산업안전 정책도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작업을 하는 것 자체가 안전대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AI가 작업자의 행동을 분석하고,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움직이며, 알고리즘이 작업순서와 생산방식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국은 단순히 “로봇을 안전하게 사용하라”는 수준을 넘어 AI와 로봇 자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AI와 디지털화가 산업안전보건에 미치는 영향을 별도의 보고서로 다루면서 자동화와 첨단 로봇, 스마트 안전·모니터링 시스템, 알고리즘에 의한 작업관리 등을 주요 변화로 꼽고 있다.

 

 

◇미국, AI를 ‘새로운 산업위험’으로 주시

 

미국의 접근법에서 눈에 띄는 것은 AI를 단순한 첨단기술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 분야를 담당하는 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NIOSH)은 AI가 작업장에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2026년 NIOSH가 발표한 자료는 AI가 물리적인 위험뿐 아니라 작업조직과 직무 변화 등을 통해 심리사회적 위험을 만들어낼 가능성까지 지적했다. AI가 탑재된 기계나 시스템의 알고리즘이 작업방식을 바꾸면서 기존과 다른 위험 프로파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NIOSH가 제시한 개념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알고리즘 위생(algorithmic hygiene)’이다. 산업위생 전문가가 작업장에서 유해물질의 노출 정도를 측정하고 관리하듯이, 앞으로는 AI 알고리즘이 작업환경과 노동자의 안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체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AI가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다고 볼 것이 아니라, AI가 어떤 데이터를 학습했고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며, 그 판단이 실제 작업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또 다른 특징은 로봇 안전에서 법률 하나로 모든 것을 규정하기보다는 기존 산업안전 규정과 표준을 결합해 관리한다는 점이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현재 로봇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단일 OSHA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 대신 기계 방호, 위험에너지 차단, 작업환경 관리 등 기존 규정과 ANSI·ISO 계열의 로봇 안전표준 등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로봇 사고가 발생하는 순간이 로봇이 정상적으로 작업할 때보다 프로그래밍·정비·시험·설치·조정 등 비정상 작업상태일 때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로봇 자체가 안전한가만 볼 것이 아니라 사람이 로봇을 정비하거나 로봇과 협업하는 순간의 위험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 AI를 ‘안전과 기본권’의 문제로 규제

 

유럽연합(EU)은 한발 더 나아가 법과 규제를 통해 AI의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EU의 AI법은 2024년 제정됐으며, 2026년 8월 2일부터 본격적인 적용 단계에 들어갔다.

 

이 법의 기본 방향은 AI 산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인간 중심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육성하면서 건강·안전과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EU는 AI와 첨단 로봇이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자를 제거하고 반복적이고 위험한 작업을 대신함으로써 산업안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동시에 예상하지 못한 충돌, AI에 대한 과도한 신뢰, 인간과 기계 사이의 상호작용 문제, 개인정보와 노동자 감시 문제 등을 새로운 위험으로 지적한다.

 

특히 AI를 이용해 노동자의 위치와 행동, 피로도, 심박수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안전장비가 확산하면서 ‘안전을 위한 감시’와 ‘노동자에 대한 과도한 감시’ 사이의 경계도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유럽의 접근법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귀결된다. “AI가 노동자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노동자를 더 많이 감시하게 만드는가?”

 

◇일본, 무인화 시대의 안전에 관심

 

일본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와 노동력 부족 때문에 제조업과 물류, 건설 등에서 로봇과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6년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약 3분의 1이 AI 로봇을 이미 사용하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사용 중인 기업은 4%였지만 5%는 도입 예정이고 25%는 도입을 검토하고 있었다. AI 로봇의 활용 목적 가운데 제조가 가장 많았고 위험한 작업도 주요 활용 분야로 나타났다.

 

그러나 무인화가 확대될수록 새로운 안전문제가 생긴다. 사람이 직접 조작하는 기계라면 작업자가 위험을 느끼고 멈출 수 있지만,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기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6년 ‘기계의 무인운전에 있어서 안전 확보 등에 관한 전문가 검토회’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 검토회에서는 무인운전 기계에 의한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 어떤 안전조치가 필요한지를 논의하고 있으며, 2026년 8월에는 중간 검토 결과가 노동정책심의회 안전위생분과회에 보고됐다.

 

일본의 움직임은 앞으로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는 기계가 늘어날 경우 누가 위험을 판단하고 어떤 안전장치를 의무화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보여준다.


◇해외의 공통점은 ‘기술보다 안전이 먼저’

 

미국과 유럽, 일본의 접근법은 서로 다르다. 미국은 위험평가와 표준, 유럽은 법과 규제, 일본은 무인화에 따른 안전기준에 상대적으로 무게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공통점도 분명하다.

 

첫째, AI와 로봇이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만 강조하지 않는다.

둘째, 기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을 함께 평가한다.

셋째, 노동자를 기술의 대상이 아니라 안전관리의 중요한 참여자로 본다.

넷째, AI가 내린 판단을 사람이 어떻게 검증하고 책임질 것인지 고민한다.

 

국제노동기구 역시 AI와 자동화 기술을 안전하게 도입하기 위해서는 위험성 평가뿐 아니라 노동자 참여와 예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로봇이 안전해져도 ‘사람’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흔히 이런 질문을 한다. “언젠가는 안전관리자도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닌가?”

 

해외의 흐름은 오히려 반대 방향을 보여준다. 기술이 복잡해질수록 안전관리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 안전관리자는 기계와 작업환경을 점검했다. 앞으로는 여기에 AI 알고리즘과 센서, 로봇의 판단체계까지 살펴야 한다.

 

AI가 내린 판단이 합리적인지, 데이터에 오류는 없는지, 로봇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사람이 로봇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확인해야 한다.

 

즉 미래의 안전관리자는 ‘기계의 안전’을 넘어 ‘인간과 AI가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국도 ‘AI 도입’에서 ‘AI 안전’으로 가야

 

한국 역시 AI와 로봇을 산업안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위험 사업장을 AI로 선별하고, CCTV와 센서를 이용해 위험행동을 감지하며, 드론과 로봇을 위험현장에 투입하는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의 움직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기술 도입 속도만이 아니다. “AI를 얼마나 빨리 도입할 것인가”보다 “AI를 얼마나 안전하게 도입할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AI가 위험을 예측한다고 해서 그 예측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된다. 로봇이 사람보다 위험한 작업을 잘한다고 해서 로봇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과정의 위험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작업자를 AI로 실시간 감시하는 것이 곧 안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답은 ‘사람을 위한 기술’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사례는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의 방향을 보여준다. AI와 로봇의 최종 목적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위험을 줄이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한 작업은 로봇에게 맡기고, AI는 사고 가능성을 찾아내며, 드론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을 먼저 살핀다. 그러나 최종적인 판단에는 사람이 참여한다. 이것이 지금 세계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산업안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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