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회적 재난] <7‧끝>폭염 대책은 환경‧복지‧보건‧노동‧도시정책 되어야

선제적으로 취약 계층을 찾아내 사전등록 필요
인천시, 숙박업소와 연계한 ‘안심 숙소’ 제도 모범 사례
노동자 ‘작업중지권’ 법적 보호...‘폭염수당’도 필요
‘무더위 쉼터’ 확대보다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폭염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피해의 크기까지 모두에게 똑같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쪽방촌 주민, 노숙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옥외노동자 등은 폭염에 훨씬 취약하다.

 

폭염은 단순한 기상현상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격차에 따라 피해가 달라지는 불평등한 ‘사회적 재난’이 돼가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돼 가고 있다.

 

한 가지 확실한 전망은 기후위기와 폭염이 해가 갈수록 심해질 거라는 점이다. 따라서 폭염 대책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폭염에 가장 취약한 사람을 먼저 찾아내고, 그들에게 더 많은 자원을 집중하는 ‘차등적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

 

정부도 이런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2026년 정부의 여름철 폭염 대책은 폭염 취약계층을 신체적·경제적·사회적 취약성에 따라 세분화하고 맞춤형 안전관리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강화됐다.

 

취약 어르신에게는 폭염특보 때 생활지원사가 매일 한 차례 이상 안부를 확인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는 에너지바우처와 찾아가는 에너지 복지서비스, 에어컨 설치·교체 지원 등을 시행하고 있다. 또 취약사업장에는 이동식 에어컨 등을 지원하고 폭염 단계에 따른 작업중지 이행도 점검한다.

 

이런 정책은 더 발전시켜야 한다. 전문가들은 ‘폭염 취약계층 사전등록제’를 강조한​다. 폭염이 닥친 뒤 누가 위험한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부터 독거노인, 중증장애인, 냉방취약가구, 쪽방촌 주민 등을 지역별로 파악하고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자동으로 보호체계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희동 전 기상청장(연세대 대기과학과 특임교수)은 “폭염중대경보 같은 최고 단계의 특보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폭염은 계층별 피해 특성이 극명히 갈리는 만큼 주기적인 농촌 어르신 안부 확인, 옥외노동자 영향예보 강화, 24시간 냉방 지원 등 현장 맞춤형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더위쉼터’도 숫자보다 접근성이 중요하다. 2026년 8월 현재 전국에서 약 9만3천 곳의 무더위쉼터가 운영되고, 경로당과 주민센터뿐 아니라 금융기관, 철도역사, 공공도서관 등으로 공간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나 장애인 등이 쉼터까지 걸어서 20~30분이 걸린다면 무용지물이다. 폭염이 심한 날에는 셔틀버스 등을 이용해 취약계층을 쉼터로 이동시키는 수단이 필요하다. 야간과 주말에도 이용할 수 있는 쉼터를 확대하고, 냉방시설과 음료·생수, 간단한 건강 체크 기능까지 갖춘 생활권 쉼터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폭염을 “예방이 가장 쉬운 예고된 재난”이라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독거노인 등에게 숙박시설을 활용한 ‘안심숙소’ 바우처를 사전에 제공하는 등 밀착형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천시가 바로 올해부터 지역내 숙박업소와 협력해 ‘안심숙소’ 제도를 시행해 지방정부의 실험 가운데 주목할 만한 사례를 남겼다. 부평구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65세 이상 독거노인, 냉방시설을 갖추지 못한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폭염특보 기간 숙박비를 지원했다.

 

앞으로는 민간 숙박시설뿐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의 빈 공간, 복지시설, 종교시설, 학교 등의 유휴공간까지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냉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에너지바우처를 확대하고, 폭염특보가 일정 수준 이상 지속될 경우 취약계층에 냉방비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폭염에 가장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건설현장 노동자와 농업인, 택배·배달·이동노동자다. 이들에게는 ‘작업중지권’이 생명선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체감온도가 되면 작업을 중단하거나 작업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제도를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정부는 2026년 폭염 대책에서 취약사업장의 휴식 여부를 점검하고 폭염 단계별 작업중지 이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문은영 변호사는 “온열질환 위험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는 단순한 휴식 권고를 넘어 법적으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근거와 지방정부의 권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장기간 폭염으로 소득이 줄어드는 업종에는 ‘폭염수당’이나 ‘기후재해수당’ 등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폭염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폭염 대응을 재난관리와 복지정책의 중간 영역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가 폭염 대응 예산을 지방정부에 조기 교부하고, 폭염중대경보를 새롭게 도입하는 등 대응체계를 강화한 것도 이런 방향의 변화다.

 

폭염에 강한 사회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사회가 아니다. 더 위험한 사람을 먼저 찾아내고 더 많이 보호하는 사회다. 기후변화로 폭염이 더욱 강해지고 길어질수록 폭염 대책은 환경정책을 넘어 복지정책이고, 보건정책이며, 노동정책이고, 도시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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