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전 세계의 전략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후위기 대응 정책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감축(Mitigation)’에만 절대적인 중심을 두었다면, 지금은 그 이상이 필요하다.
이미 시작된 이상기후와 폭염 피해에 즉시 유연하게 대처하며 생존을 도모하는 ‘적응(Adaptation)’ 정책이 온실가스 감축 이상으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폭염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실질적인 기온 상승 억제 효과로 이어지기까지는 수십 년 이상의 세월이 소요된다. 반면 매년 찾아오는 사상 최악의 폭염은 당장 수많은 인명과 경제적 피해를 야기하고 있다.
우선 폭염을 바라보는 국가와 사회의 법·제도적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폭염을 가뭄, 홍수, 지진과 맞먹는 국가적 ‘중대 재난’으로 명확히 재정의하고, 이에 상응하는 체계적인 국가 재난 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가동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재난안전기본법상 폭염이 자연재난에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예산 배정과 전문 인력 확보, 실질적인 위험 대응 가이드라인은 여전히 임시방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김경석 박사는 “폭염은 태풍이나 지진처럼 눈에 보이는 파괴적 형태를 띠지 않지만, 단기간에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침묵의 살인자’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국가 차원의 종합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걸 특히 강조했다. 그는 “단순히 야외 쉼터를 늘리는 수동적 대응을 넘어, 기상청 폭염 경보와 실시간 연동해 지자체, 보건소, 사회복지 네트워크가 전방위로 움직이는 ‘기후재난 긴급대응 모니터링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재해보험 확대, 기후 적응형 인프라 확충, 노동·보건 법안을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재정비하고, 일정 온도 이상의 폭염에서 작업 중단을 강제로 의무화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기후재난 피해자에 대한 법적 보상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기후위기 적응 전략의 최우선 가치로 ‘기후 정의(Climate Justice)’와 ‘포용적 거버넌스’를 꼽는다.
폭염의 피해는 사회 계층에 따라 결코 평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 고성능 냉방 장치와 에어컨을 가동할 경제적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 폭염 특보 속에서도 생계를 위해 뙤약볕 아래 일해야 하는 야외 건설 노동자와 라이더, 돌봄 공백 상태에 놓인 쪽방촌 독거노인 등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참혹하게 쓰러진다.
소비자정의실천연대 및 환경사회학 연구자인 박진우 교수는 “기후위기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한층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특성이 있다”면서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급 범위를 대폭 늘리고, 체감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야외 노동을 법적으로 강제 정지시키는 강력한 근로자 보호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후재난의 피해가 약자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기후 정의 관점에서 정책적·재정적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포용적 거버넌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국가 ‘기후적응기금’을 신설해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일상적 지원 체계를 강화하는 등 국가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초열 시대의 폭염과의 싸움은 단순한 여름철 일회성 대책이 아니다. 국가 전체의 법·제도, 보건 의료 체계, 노동 환경, 도시 공간 구조를 기후 위기 맞춤형으로 체질 개선해야 하는 장기 과제다.
탄소 중립을 향한 감축 노력과 함께, 눈앞에 다가온 초열 시대를 견뎌낼 탄탄한 인프라 및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만이 우리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재난이다. 지금 바로 대응하지 않으면 미래세대는 더욱 혹독한 여름을 살아가야 한다. <기획시리즈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