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관리자 기자 |
“안전에 돈을 쓰면 생산성이 떨어진다.”
산업현장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게 이런 말이 들려온다. 안전교육을 위해 작업시간을 할애하고, 보호구를 지급하고, 노후설비를 교체하고, 위험공정을 개선하려면 비용이 든다. 생산라인을 멈춰 설비를 점검하면 당장의 생산량도 줄어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안전을 비용으로만 보는 것은 기업이 부담하는 ‘사고의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은 결과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치료비와 보상비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작업중단, 설비수리, 대체인력 투입, 사고조사, 재발방지 조치, 납품 지연, 불량 증가, 숙련인력 이탈 등 연쇄적인 손실이 발생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OSHA)도 효과적인 안전보건 프로그램이 산업재해와 함께 산재보상·의료비·생산성 손실 등을 줄이고,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공정상의 변화가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안전이 기업경영과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알루미늄 기업 알코아(Alcoa)다. 1987년 알코아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폴 오닐은 취임 당시 투자자와 경영진 앞에서 일반적인 경영목표인 매출이나 이익보다 ‘안전’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근로자 한 명 한 명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이었다. 당시 알코아 내부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생산성과 수익성보다 안전을 앞세우는 경영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오닐은 안전을 별도의 비용 항목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안전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작업절차와 설비, 의사소통 방식, 관리자와 현장 근로자의 관계까지 바꿔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알코아의 안전 중심 경영은 생산현장의 운영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안전을 높이기 위해 작업공정에서 문제를 찾아내고, 현장의 목소리를 경영진에게 전달하는 시스템을 강화하면서 조직 전반의 운영 효율도 높아졌다.
미국산업안전전문가협회(ASSP)는 알코아 사례를 “안전과 기업성과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하고 있다.
안전관리와 생산성 향상이 만나는 지점은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작업장에 자재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으면 근로자가 이동하는 거리가 길어지고 자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동시에 넘어짐이나 충돌사고의 위험도 커진다. 통로를 정리하고 자재 위치를 표준화하면 사고 위험을 줄이는 동시에 작업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기계설비의 정기적인 점검도 마찬가지다. 고장을 예방하는 것은 안전을 위한 조치이지만 동시에 갑작스러운 생산라인 중단을 막는 예방정비이기도 하다.
작업표준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도 안전과 생산성에 동시에 도움이 된다. 근로자가 작업순서와 위험요인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실수가 줄고 작업 품질도 일정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안전관리는 생산현장의 ‘낭비’를 찾아내고 제거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안전문화가 강한 기업은 직원도 오래 일한다. 생산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숙련도다. 숙련된 근로자가 오랫동안 근무하면 작업속도와 품질이 높아진다. 반면 이직률이 높으면 기업은 끊임없이 신규인력을 채용하고 교육해야 한다.
경영진이 근로자의 안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기업에서는 ‘회사가 나를 보호한다’는 신뢰가 형성되기 쉽다. 현장 근로자가 “이 공정은 이렇게 바꾸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라고 제안하고 경영진이 이를 받아들이는 기업이라면 안전과 생산성을 동시에 개선할 가능성이 높다.
안전관리가 생산성뿐 아니라 품질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불량품이 발생하는 이유와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이유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업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설비상태가 불량하거나 작업환경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다.
따라서 작업공정을 표준화하고 설비를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며 근로자에게 충분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안전과 품질을 동시에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자동차·전자·기계 등 정밀한 생산공정에서는 특히 그렇다.
안전경영이 성숙한 기업들은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자를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제거하는 ‘예방 중심’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는 품질관리에서 불량품을 사후에 걸러내는 것보다 불량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을 개선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기업 경영에서 안전을 바라보는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안전관리비를 단순한 비용으로 생각하면 경영이 어려워질 때 가장 먼저 삭감할 대상으로 보기 쉽다. 하지만 안전투자를 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자로 보면 판단이 달라진다.
노후설비를 교체하면 사고 위험이 줄어드는 동시에 설비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있다. 자동화·방호장치를 도입하면 근로자의 위험한 작업을 줄이면서 작업속도와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작업환경을 개선하면 근로자의 피로가 감소해 실수와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투자했느냐’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안전투자가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험요인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작업공정과 연결해 개선한다면 안전과 생산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위험한 말 가운데 하나는 “생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 안전수칙을 생략하고, 작업속도를 높이기 위해 보호장치를 무력화하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노후설비를 방치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성이 아니라 ‘위험을 미래로 떠넘기는 것’이다.
안전과 생산성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안전관리는 생산공정의 불필요한 중단과 낭비를 줄이고 품질을 높이며 숙련인력의 이탈을 막는다. 결국 안전한 기업이 생산성도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사고가 나지 않는 기업은 멈추지 않는다. 설비가 제대로 관리되는 기업은 고장이 적다. 작업이 표준화된 기업은 실수가 적다. 근로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기업은 사람을 붙잡을 수 있다. ‘안전한 기업’이라는 말이 곧 ‘효율적인 기업’이라는 뜻이 될 수 있도록 안전경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