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안전에 돈을 많이 쓰면 정말 사고가 줄어들까?”
기업 경영진에게는 꽤 현실적인 질문이다. 안전설비를 새로 설치하고, 안전관리자를 채용하고, 작업장을 개선하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하지만 투자액이 많다고 해서 사고가 반드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안전에 쓴 돈이 실제 위험을 없애는 데 쓰였는지가 더 중요하다.
최근 정부와 안전보건공단의 자료는 이 질문에 의미 있는 답을 내놓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2023~2024년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받은 사업장 4만2906곳을 분석한 결과, 컨설팅 전후를 비교했을 때 사고사망자는 70.4%, 요양기간 90일을 초과하는 중상해 재해자는 35.1% 감소했다.
전문가가 사업장을 찾아 사업주에게 “안전에 돈을 더 쓰라”고 지시한 것만으로 얻은 결과는 아니다. 작업장마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찾아내고, 위험성평가를 통해 실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부분부터 개선한 결과다.
◇안전예산보다 중요한 ‘투자의 방향’
산업현장에서는 안전투자가 엉뚱한 곳에 쓰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고 위험이 큰 노후 설비는 그대로 둔 채 안전교육 횟수만 늘리거나, 작업자가 실제로 사용하기 불편한 보호구를 지급하는 식이다. 서류상으로는 안전예산이 집행됐지만 현장의 위험은 그대로 남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기업의 안전보건비용과 산업재해의 관계를 분석한 연구에서도 단순히 “안전비용을 많이 지출한 기업일수록 재해율이 낮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점이 확인됐다. 기업 규모와 업종, 작업환경, 위험 수준 등 여러 변수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결국 안전투자는 액수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기계에 작업자가 끼이는 사고가 반복되는 공장이라면 “조심하라”는 교육보다 위험구역에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방호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많은 건설현장이라면 안전구호보다 작업발판과 추락방지시설을 갖추는 것이 먼저다.
안전은 ‘주의’를 요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되고, 사람이 실수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데 투자해야 한다.
◇사고가 많아지면 기업 성과도 흔들린다
반대로 산업재해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비교적 뚜렷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기업의 재무자료와 산업재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재해율이 높아질수록 1인당 매출액과 영업이익액이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재해율 1% 증가는 기업의 매출 성장률과 영업이익률에도 통계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사고가 단순히 치료비와 보상금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이 중단되고, 숙련된 노동력이 빠져나간다. 사고 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에 관리인력이 투입되고, 설비를 다시 고쳐야 한다. 납기가 늦어지고 거래처의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지난해 우리 산업현장에서 재해조사 대상 사고로 숨진 노동자는 605명이었다. 전년보다 16명 늘어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특히 50인 미만 사업장과 50억 원 미만 건설현장에서 351명이 숨져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안전투자의 여력이 부족한 작은 사업장이 여전히 산업재해의 취약지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은 기업일수록 ‘돈이 없어 사고를 막지 못한다’
중소기업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대기업은 안전전담 조직을 만들고 수십억 원짜리 설비를 도입할 수 있지만, 영세 사업장에는 수백만 원의 시설 개선비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안전설비와 위험성평가, 컨설팅 지원을 확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안전투자를 ‘기업에 부담을 주는 비용’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고가 집중되는 곳에 먼저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실제로 공공기관의 소규모 수급업체 지원 사례 가운데 스마트 안전장비와 현장 컨설팅을 확대하면서 재해자가 2022년 33명에서 2023년 26명, 2024년 14명으로 감소한 사례도 보고됐다. 위험한 작업을 찾아내고 필요한 장비와 관리체계를 함께 지원한 결과다.
◇“얼마를 썼나”보다 “무엇이 달라졌나”
안전투자의 성적표는 결국 예산액이 아니라 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안전예산이 지난해보다 20% 늘었다고 해도 사고가 반복된다면 투자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반대로 비교적 적은 돈을 들였더라도 추락방지시설 하나를 설치해 치명적인 사고를 막았다면 그것이 더 효과적인 투자일 수 있다.
이제 기업이 던져야 할 질문은 “안전에 얼마를 쓸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 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곳은 어디이며, 그 위험을 없애는 데 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가”다.
안전에 돈을 쓴다고 사고가 자동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의 위험을 정확히 찾아내고, 설비와 작업환경을 바꾸고, 노동자가 실제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투자한다면 사고를 줄일 가능성은 분명히 커진다.
결국 안전투자의 핵심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방향이다. 많이 쓰는 기업보다, 위험한 곳에 제대로 쓰는 기업이 더 안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