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수백명의 시신이 수습되고 수천명의 실종자를 찾는 수색작업이 이어지는 국가적 비탄 속에서 네팔 정부가 해외 관광객들에게 뜻밖의 호소를 내놨다. 대홍수의 충격으로 비탄에 빠졌지만, 외국인 히말라야 관광에 크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상, “네팔을 떠나지 말고, 오히려 지금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3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카닥 라즈 파우델 네팔 문화관광민간항공부 장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NepalCalling’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영상 메시지를 올리고 “우리의 산길과 트레킹 코스는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파우델 장관은 이어 “이번에 네팔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한 휴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돌발홍수라는 비극과 싸우고 있는 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라 전체가 재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관광객 유치를 호소하는 모습은 언뜻 역설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팔 입장에서는 관광산업마저 멈출 경우 홍수의 직접 피해에 이어 또 다른 경제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절박감이 깔려 있다.
관광산업 피해만 500억루피… “경제까지 무너질라”
지난달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 히말라야 산악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로 네팔에서는 지금까지 최소 1,100명 이상이 숨지고 3,900명가량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외국인 실종자도 500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지역에는 힌두교 성지를 찾은 순례객과 히말라야 트레킹 관광객들이 대거 포함돼 있어, 이번 참사가 관광산업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팔 정부가 파악한 관광산업 피해도 이미 막대하다. 파우델 장관은 최근 의회에 출석해 호텔과 식당, 관광차량, 트레킹 코스, 종교·문화시설 등의 피해를 합치면 관광 분야에서만 500억 네팔루피, 약 3억3,0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호텔 140여곳과 식당 수십곳, 관광 관련 차량 100여대가 피해를 입었고, 랑탕과 고사인쿤다 등 주요 트레킹 코스도 상당 부분 파손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도로와 교량, 수력발전시설 등 국가 인프라 복구비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훨씬 커진다. 네팔 재무부는 이번 홍수 이후 국가 복구에 적어도 40억~5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대 추정치인 50억달러는 네팔 전체 경제 규모의 약 1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관광수입까지 급격히 감소할 경우 복구에 필요한 외화 확보에도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히말라야 관광, 네팔에선 ‘산업’ 넘어 생계 수준
네팔에서 관광은 단순한 여행산업이 아니다. 히말라야 산악관광을 중심으로 한 관광산업은 네팔 국내총생산(GDP)의 약 6%를 직접적으로 차지하고 있으며, 항공과 숙박, 음식점, 유통, 교통, 가이드와 포터 등 연관산업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경제 기여도는 10% 안팎으로 추산된다.
특히 네팔과 같은 저소득 산악국가에서는 관광이 해외 노동자 송금과 함께 대표적인 외화 획득 수단으로 꼽힌다. 관광객 한 명이 네팔을 찾으면 돈은 카트만두의 대형 호텔에만 머물지 않는다. 산악마을의 작은 롯지와 음식점, 택시기사와 가이드, 포터, 기념품점, 농산물 판매자에게까지 흘러간다.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형성된 수많은 지역경제가 관광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지출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관광객 감소가 장기화하면 직접적인 홍수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까지 소득이 줄어드는 ‘2차 경제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네팔 정부가 국가적 추모 분위기 속에서도 서둘러 관광객들에게 “다시 와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다.
빙하 붕괴 공포에 관광객 발길 끊길 우려
관광객들의 불안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홍수는 일반적인 집중호우가 아니라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대규모 빙하와 암석 붕괴가 촉발한 연쇄재난으로 분석되고 있다. 얼음과 바위가 산에서 한꺼번에 무너져 계곡과 강을 덮쳤고, 거대한 토석류가 하류지역까지 순식간에 밀려가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특히 희생자와 실종자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과 순례객이 다수 포함되면서 “히말라야가 안전한가”라는 우려가 해외 여행객 사이에서 커질 가능성이 있다. 추가적인 빙하 붕괴나 돌발홍수 가능성도 심리적인 부담이다. 히말라야의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기후변화로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이번 재난이 일회성 사고인지에 대한 불안도 남아 있다.
여기에 수천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직후 네팔 여행을 떠나는 것에 대한 심리적·도의적 부담까지 더해질 수 있다. 결국 네팔 정부가 맞닥뜨린 고민은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과 ‘비탄의 나라를 관광지로 찾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두 가지 장벽을 동시에 넘어야 한다는 데 있다.
“지금 오는 것이 네팔 돕는 길”
파우델 장관은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피해지역 전체가 아니라 안전이 확인된 지역의 관광은 정상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자연재해는 어느 나라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며 “이번 재난이 네팔 관광산업 전체를 멈춰 세우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관광객들에게 네팔을 찾는 것이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재난 극복을 돕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네팔 정부의 논리는 비교적 명확하다. 피해지역에는 구조와 복구가 필요하지만, 피해를 입지 않은 지역까지 관광객이 사라지면 재난과 직접 관계없는 주민들마저 생계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광산업의 특성상 한번 ‘위험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면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대규모 자연재해 이후 관광 예약 취소가 이어지고 항공편이 줄어들 경우, 재난이 끝난 뒤에도 경제적 충격은 수개월 또는 수년간 이어질 수 있다. 네팔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NepalCalling’을 앞세워 적극적인 해외 홍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홍수 복구와 관광 회복, 두 마리 토끼 잡아야
네팔 정부는 장기적으로 이번 재난 자체를 기후위기 교육과 관광에 연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일부 피해지역을 ‘기후유산’ 형태로 보존해 기후변화와 빙하재난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박물관이나 기념시설, 교육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안전에 대한 신뢰다. 훼손된 트레킹 코스와 교량을 복구하고, 빙하 붕괴와 돌발홍수를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관광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네팔로서는 지금 생존자 구조와 실종자 수색이라는 당장의 과제와 함께 국가경제를 다시 세워야 하는 장기적인 숙제를 동시에 안게 된 셈이다.
수천명이 여전히 가족의 생사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히말라야로 와달라”는 정부의 요청은 다소 낯설고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관광산업마저 무너질 경우 홍수의 충격이 국가 전체의 빈곤과 실업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네팔 정부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우리 산길은 여전히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파우델 장관의 말에는 관광 홍보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재난으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려면 구조대뿐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도 필요하다는, 네팔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