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에서 대규모 돌발홍수로 수백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실종된 데 이어 이번에는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도 강한 돌발홍수가 발생해 20명 이상이 실종 또는 연락 두절 상태에 놓였다.
미국 NBC뉴스와 국립공원관리청(NPS) 등에 따르면 현지시간 29일 오후 2시30분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 브라이트 엔젤 캐니언과 팬텀 랜치 일대에 갑작스러운 폭우가 쏟아지면서 강과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NPS는 30일 현재 이 일대를 지나거나 머물렀던 20명 이상이 아직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며, 등산객과 캠핑객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제보를 요청한 상태다. 당초 약 15명이 실종 또는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피해지역에 머물렀던 등산객과 백패커에 대한 확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미확인 인원은 20명 이상으로 늘었다.
30분 사이 쏟아진 폭우.. 계곡물이 ‘벽’처럼 밀려왔다
이번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은 짧은 시간 집중된 강한 폭우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당시 일부 지역에서는 약 30분 동안 1인치, 약 25㎜ 안팎의 비가 집중됐다.
문제는 그랜드캐니언의 지형이다. 좁고 깊은 협곡과 급경사가 이어지는 곳에서는 산 정상이나 협곡 위쪽에 내린 비가 짧은 시간 안에 한쪽 물길로 집중되면서 수위가 폭발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당시 브라이트 엔젤 크리크 수위는 불과 10분 만에 5피트(1.5m) 이상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잔잔하게 흐르던 계곡물이 갑자기 진흙과 바위, 나무를 섞은 거대한 급류로 돌변한 것이다.
현장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한 생존자는 “갑자기 사방에서 폭포가 생겼고, 바위와 진흙, 산사태가 한꺼번에 밀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여러 등산객과 캠핑객들은 급류가 밀려오는 것을 본 뒤 황급히 높은 곳으로 올라가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형 산불이 남긴 ‘불탄 땅’도 위험 키워
이번 홍수 피해가 커진 배경에는 지난해 발생한 ‘드래곤 브라보(Dragon Bravo) 산불’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NPS에 따르면 2025년 드래곤 브라보 산불은 그랜드캐니언 노스림 일대와 브라이트 엔젤 크리크 유역을 포함한 여러 산악 유역을 태웠다. 산불이 지나간 뒤에는 식생과 낙엽층이 사라지고 토양 표면이 굳어지면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그대로 흘러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NPS는 이런 ‘번 스카(burn scar)’ 지역에서는 집중호우가 발생할 경우 수분 안에 돌발홍수와 토석류가 발생할 수 있다고 이미 경고해왔다. 물과 재, 진흙, 돌, 나무가 섞인 토석류는 수㎞ 이상 하류로 이동하면서 도로와 건물, 시설물을 파괴하는데, 이번 네팔 홍수와 상황과 유사하다.
이번처럼 짧은 시간 집중된 폭우가 산불 피해 유역에 떨어지면서 단순한 계곡 범람이 아니라 진흙과 암석을 동반한 강한 급류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 이유다.
보행교 대부분 파괴… 62명 헬기로 대피
피해는 그랜드캐니언 내부 주요 탐방시설에 집중됐다. NPS는 30일 오전까지 팬텀 랜치와 노스 카이밥 트레일 하부지역에서 62명을 대피시켰으며, 추가 인원도 코튼우드 캠프장과 팬텀 랜치 등에서 구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피자들은 사우스림의 매스윅 로지 카페테리아로 옮겨졌으며, 미국 적십자사가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다행히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기반시설 피해는 상당하다. 브라이트 엔젤 크리크를 가로지르던 보행교 대부분이 급류에 휩쓸려 파괴됐고, 등산객들이 계곡을 건널 수 있는 길이 사실상 사라졌다. 팬텀 랜치와 브라이트 엔젤 캠프장, 팬텀 랜치 식당과 숙박시설, 노스 카이밥 트레일 전체 구간도 무기한 폐쇄됐다.
급류가 떠밀고 내려온 금속 구조물과 잔해가 콜로라도강까지 유입되면서 강을 이용한 보트·래프팅 운항도 중단됐다. NPS는 등산로와 교량뿐 아니라 상하수도, 전력 등 각종 기반시설 피해 규모도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추가 폭우 예보… 돌발홍수·토석류·낙석 위험 계속
NPS는 30일과 31일까지 추가로 천둥·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가 내릴 가능성이 있어 또 다른 돌발홍수와 토석류, 낙석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토양이 젖어 있고 산불 피해지역의 지반이 약해진 상태라 작은 강우에도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불로 약해진 유역에서는 비가 내리는 장소와 실제 홍수가 발생하는 장소가 수㎞ 이상 떨어질 수 있다. 등산객 입장에서는 머리 위에 비가 거의 오지 않더라도 상류에서 발생한 급류가 갑자기 협곡 안으로 밀려들 수 있다는 의미다.
NPS는 “상황이 빠르게 변할 수 있다”며 해당 지역에 접근하지 말고 기상특보와 공원 폐쇄정보를 계속 확인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네팔과 원인은 달라도.. ‘순식간에 덮치는 물’은 같았다
불과 사흘 사이 네팔과 미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두 돌발홍수는 직접적인 발생 원인은 다르다.
네팔·티베트 홍수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대규모 빙하·암석 붕괴가 토석류와 홍수로 이어진 연쇄재난이었다. 반면 그랜드캐니언은 단시간에 쏟아진 폭우와 좁고 깊은 협곡, 지난해 산불로 약해진 지표면이 결합하면서 급류가 증폭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두 재난 모두 거대한 양의 물과 토사가 짧은 시간에 한 지점으로 집중됐고, 대피할 시간을 거의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단 네팔 대규모 홍수재난과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구조작업이 진행되면서 그랜드캐니언의 미확인 인원 규모가 더 늘어날지, 또는 연락 두절자들이 안전하게 확인될지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관건으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