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앞으로가 더 위험”.. 홍수재앙 촉매제, 히말라야 영구동토층

산악 붙잡던 ‘자연 접착제’ 녹는다.. 빙하·암반 붕괴 위험도 동반 상승
얼음·바위 무너지면 계곡물과 합쳐져 토석류·돌발홍수로 증폭
ICIMOD “빙하·눈·영구동토층 변화 전례 없고 되돌리기 어려워”.. 연쇄재난 우려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의 가파른 암벽과 거대한 빙하는 왜 수천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단순히 암석이 단단하고 기온이 낮기 때문만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얼음층인 ‘영구동토층'(permafrost)이 산속 깊은 곳에서 바위와 토양을 서로 붙잡아주는 일종의 자연 접착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이 접착제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영구동토층의 얼음이 녹으면 바위 사이의 결합력이 떨어지고 경사면 내부에 물이 스며들면서 산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 여기에 빙하가 그동안 받치고 있던 암벽까지 노출시키면 어느 순간 수백 만t의 얼음과 암석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형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을 덮친 홍수 재앙도 이런 고산지대의 연쇄재난 위험을 다시 확인시킨 사건으로 평가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네팔 랑탕국립공원 랑탕리룽 북사면에서 발생한 빙하 붕괴가 거대한 토석류와 홍수를 촉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붕괴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는 규모 5.2 지진에 해당할 정도였고, 얼음과 물, 암석이 뒤섞인 급류는 하천을 따라 약 100㎞를 이동했다.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이번 사건이 우연히 발생한 한 차례의 특이 재난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힌두쿠시-히말라야(HKH) 지역에서 빙하와 눈, 영구동토층이 동시에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산사태와 암석 붕괴, 빙하호 범람, 토석류가 서로 연결되는 ‘연쇄재난’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급경사 산악을 붙잡는 ‘얼음 접착제’

영구동토층은 토양이나 암석의 온도가 최소 2년 이상 0도 이하로 유지되는 지층을 말한다. 시베리아나 알래스카처럼 평평한 툰드라를 떠올리기 쉽지만, 히말라야처럼 해발고도가 높은 산악지대의 암반 틈에도 넓게 존재한다.

 

급경사의 산에서는 영구동토층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암석의 작은 균열과 틈으로 들어간 물이 얼어붙으면 서로 떨어져 있던 암반을 결합시키고 경사면을 지지한다. 네이처 인디아는 지난달 히말라야 암석 붕괴 위험을 분석하면서 얼어붙은 지반을 암반 내부에서 작용하는 ‘접착제(glue)’에 비유했다. 기온 상승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을수록 산비탈이 낙석과 산사태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위험은 단순히 얼음이 물로 바뀌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얼음이 녹으면 암석을 붙잡고 있던 결합력이 먼저 약해진다. 동시에 녹은 물이 암석 틈으로 들어가면서 마찰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낮에는 녹고 밤에는 다시 얼어붙는 동결·융해가 반복되면 암석 균열이 조금씩 넓어질 수도 있다.

 

결국 산비탈 전체가 오랜 시간 서서히 약해지다가 특정 시점에 폭우나 급격한 해빙, 추가적인 기온 상승 같은 작은 충격을 만나면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국제통합산악개발센터(ICIMOD)는 특히 영구동토층 온도가 영하 1도에서 0도 사이로 올라간 급경사 산악지대를 위험구간으로 보고 있다. ICIMOD가 과학자들과 진행한 연구 논의에서는 경사도가 30도 이상이고 영구동토층이 녹기 직전의 온도대에 있는 암벽일수록 안정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히말라야의 장대한 절벽과 설산이 관광객들에게는 아름다운 풍광이지만, 지질학적으로 보면 중력이 끊임없이 아래로 잡아당기는 거대한 경사면이다. 그 산을 붙잡아주던 얼음이 사라질수록 풍광 자체가 재난의 잠재적 무대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구동토층 녹으면 ‘산 붕괴→홍수’ 연쇄반응

고산지대의 암벽이 무너졌다고 해서 모두 대규모 홍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히말라야에서 위험성이 특히 큰 이유는 가파른 경사 아래로 수많은 빙하와 계곡, 하천, 빙하호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과정은 일종의 도미노와 같다. 먼저 기온 상승으로 영구동토층과 빙하 내부의 얼음이 녹으면서 산비탈의 지지력이 약해진다. 이후 거대한 바위와 빙하가 무너지면 수백m에서 1㎞ 이상을 낙하하면서 엄청난 운동에너지를 얻게 된다. 바위와 얼음은 떨어지는 과정에서 더 많은 암석과 흙을 끌어들이고, 계곡 바닥의 물과 만나면서 규모를 키운다. 일종의 대형산불이 세력을 키우는 것과 유사하다. 

 

이 거대한 흐름이 강으로 직접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수위를 끌어올리며 돌발홍수를 일으킬 수 있고, 빙하호에 떨어질 경우에는 물을 댐 밖으로 밀어내거나 자연제방을 파괴해 빙하호 붕괴홍수(GLOF)로 이어질 수 있다. ICIMOD 역시 영구동토층 해빙이 암석 붕괴와 토석류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빙하호 붕괴홍수 위험까지 높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번 네팔 사태도 그 구조와 닮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랑탕리룽 북사면에서 발생한 거대한 얼음·암석 눈사태가 렌데콜라강으로 쏟아져 들어가면서 연쇄적인 홍수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붕괴는 국경을 넘어 수력발전소와 도로, 교역시설을 잇따라 파괴했고, 하류 100㎞ 이상 지역의 하천 모습까지 바꿔놨다.

 

사이먼 콕스 뉴질랜드 지구과학연구소(Earth Sciences New Zealand) 수석과학자는 “기후변화가 고산지역의 암석과 얼음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온 상승이 급경사면을 받치는 얼음을 약화시키고 융빙수를 늘리는 동시에 동결과 융해, 강우 패턴까지 바꿔 대규모 붕괴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예고된 재앙... 네팔 홍수의 현주소

이 때문에 이번 네팔 홍수를 ‘예견된 재난’이라고 표현하는 분석도 나온다. 특정한 날짜와 장소까지 예측할 수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히말라야의 눈과 빙하, 영구동토층이 빠르게 약해지면서 이와 유사한 대규모 연쇄재난의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는 경고가 이미 수년 전부터 반복됐다는 뜻이다.

 

ICIMOD는 지난 2023년 ‘HI-WISE’ 보고서에서 힌두쿠시-히말라야 지역의 빙하와 눈, 영구동토층 변화가 “전례가 없고 인간의 시간尺度에서는 상당 부분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이미 경고했다. 특히 영구동토층 면적이 줄어들면서 고산지대의 산사태와 기반시설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보고서가 경고했던 것은 단일 재난이 아니었다. 빙하 감소와 영구동토층 해빙, 극단적인 강우, 빙하호 증가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한 차례의 산사태가 홍수를 만들고, 다시 홍수가 산사태나 제방 붕괴를 일으키는 복합·연쇄재난이었다.

 

실제로 최근 히말라야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2023년 인도 시킴에서는 빙하호 붕괴홍수가 발생했고, 지난 2024년 네팔 셰르파 마을 타메에서도 빙하호 범람이 일어났다. 작년에는 네팔·티베트 국경 지롱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했다. 이번에는 규모가 훨씬 큰 얼음·암석 붕괴가 또다시 국경지역을 덮쳤다.

 

벤저민 호턴 홍콩시립대 에너지환경대학 학장은 이번 사태를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감소와 영구동토층 해빙, 경사면 불안정 등이 서로 결합한 ‘복합사건(compound event)’의 사례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나의 원인이 재난을 만든 것이 아니라 여러 취약 요인이 겹치면서 개별 요인보다 훨씬 파괴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빙하 녹는 속도 빨라질수록 산도 함께 흔들린다

앞으로가 더 위험하다고 보는 가장 큰 이유는 히말라야의 냉각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ICIMOD가 올해 3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힌두쿠시-히말라야의 빙하는 1990~2020년 전체 면적의 약 12%, 추정 얼음량의 약 9%를 잃었다. 2000년 이후 빙하 손실속도는 그 이전보다 두 배 수준으로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전망은 더욱 심각하다. ICIMOD는 현재와 같은 배출경로가 지속될 경우 힌두쿠시-히말라야 빙하가 이번 세기 말까지 현재 부피의 최대 80%를 잃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2도 이하로 제한하더라도 빙하 부피의 30~50%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다.

 

빙하가 줄면 물 공급만 감소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빙하가 옆에서 눌러주던 산비탈이 지지력을 잃는 ‘디버트레싱(debuttressing)’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동시에 빙하가 후퇴하며 새로운 호수가 생기고 영구동토층까지 녹으면 산의 위쪽에서는 붕괴 위험이 커지고 아래쪽에는 대량의 물이 쌓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떨어질 것은 위에 더 많아지고, 받아낼 물은 아래에 더 많아지는’ 위험한 조합인 셈이다.

 

ICIMOD는 이달 초 발표한 힌두쿠시-히말라야 빙권 모니터링 전략에서도 이 지역에서 빙하 질량 감소와 영구동토층 퇴화, 불규칙한 하천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빙하호 붕괴홍수, 눈사태, 토석류와 산사태 같은 재난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역의 빙하와 눈에 직·간접적으로 의존하는 인구만 산악지대 2억7,000만명, 하류까지 합치면 20억명을 넘는다는 분석이 있다. 

 

어디가 먼저 무너질지 예측이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영구동토층이 빙하처럼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빙하는 위성사진을 통해 면적 변화와 후퇴 속도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암반 깊숙한 곳의 온도와 얼음 상태를 지속적으로 관측하려면 시추공과 지중 온도계 등 장기간의 현장관측이 필요하다.

 

하지만 히말라야 고산지역에는 이런 관측망이 매우 부족하다. ICIMOD도 알프스와 달리 힌두쿠시-히말라야에서는 암반 영구동토층의 장기 심부 온도관측 자료가 거의 없다고 지적해왔다. 또한 산악인이 어렵게 올라가는 곳이 대부분이라서 헬기 등을 통한 접근이 어렵다. 결국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만 어느 산비탈이 언제 한계에 도달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는 얘기다. 

 

‘세계의 지붕’이 새로운 재앙 위험 지대로

히말라야는 수천 년 동안 눈과 얼음이 만든 절경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기후변화 시대에는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바로 그 얼음이 새로운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경고다.

 

얼음이 충분히 차갑고 단단할 때는 바위와 산비탈을 붙잡아주는 안전장치지만, 0도에 가까워질수록 그 역할은 정반대로 바뀐다. 녹은 물은 경사면을 약하게 만들고, 후퇴하는 빙하는 암벽을 노출시키며, 무너진 얼음과 바위는 아래의 강과 호수에서 다시 홍수의 에너지로 변한다.

 

이번 네팔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을 ‘영구동토층 해빙’으로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USGS 역시 현재 확인된 직접적인 시작점은 대규모 빙하 붕괴라고 보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급격한 눈 녹음과 빙하 변화, 영구동토층, 경사면 상태 등이 각각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이번 홍수의 원인이 꼭 영구동토층 문제는 아닐지라도 기온 상승이 계속될수록 빙하와 영구동토층이라는 히말라야의 ‘냉동 접착제’는 약해지고, 높은 산에서 시작된 붕괴가 낮은 계곡의 대형 홍수로 증폭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네팔 홍수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한 번의 거대한 빙하 붕괴가 아니다. 히말라야에서 지금까지 산을 지탱해 온 얼음 자체가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가 앞으로 산사태와 토석류, 빙하호 붕괴, 돌발홍수라는 서로 다른 재난을 하나의 사슬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편, 히말라야산맥은 지구에 가장 높은 베레스트산 등 14개의 봉우리가 몰려있는데, 네팔, 인도, 중국 티베 자치구, 파키스탄, 부탄 등에 걸쳐 있으며 산맥 인구만 5,300만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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