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무려 1천400명 이상의 실종자와 400명 가까운 사망자를 몰고온 비극적인 네팔의 홍수 재앙은 하늘에서 쏟아진 폭우만으로 만들어진 재난이 아니었다. 추가 조사는 필요하지만, 결국 우리 인류이 초래하고 있는 지구온난화의 부메랑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미국 지질조사국(USGS) 등을 조사를 종합하면, 재앙의 시작점은 해발 5,0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 한복판이었다. 거대한 빙하와 암반이 산에서 떨어져 나간 뒤 약 1㎞가 넘는 높이를 곤두박질쳤고, 얼음과 바위, 토사, 물이 뒤섞인 거대한 흐름이 좁고 가파른 계곡을 타고 하류로 질주했다.
당초에는 지진이 산사태를 일으켰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분석은 정반대였다. 지진이 빙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지진과 같은 강한 진동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위성사진과 지진파 기록, 하천 수위 자료를 종합한 과학자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홍수라기보다 '빙하 붕괴→얼음·암석 눈사태→토석류→돌발홍수'로 이어진 연쇄재난(cascading disaster)으로 보고 있다.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수십 배.. 산 하나가 움직이듯 붕괴
NBC뉴스는 위성사진과 지질학자들의 분석을 토대로 히말라야 빙하 붕괴가 네팔·중국 국경지역에 얼음과 암석, 홍수를 한꺼번에 밀어 넣었다고 보도했다.
NBC는 지질학자들을 인용해 산 정상 부근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과 암석 덩어리의 규모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수십 배에 달했다고 전했다.
캐나다 캘거리대 지형학자 댄 슈거(Dan Shugar) 부교수가 플래닛랩스(Planet Labs)의 위성영상을 분석한 결과, 빙하 하단부 일부가 해발 약 5,200m 지점에서 떨어져 나와 약 1,200m 아래 계곡 바닥으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기 분석에서는 무너진 부분의 면적만 약 0.2㎢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높이 1.2㎞는 서울 롯데월드타워 두 채를 위아래로 쌓은 것보다 더 긴 낙차다. 이 정도 높이에서 수백만t에 이를 수 있는 얼음과 암석이 떨어지면 막대한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충돌 과정에서 빙하와 암석이 산산이 부서지고 주변의 흙과 자갈, 물까지 빨아들이면서 처음보다 훨씬 거대한 토석류로 변할 수 있다.
슈거 교수는 많은 양의 암석이 큰 높이에서 추락하면 상당한 열이 발생해 얼음을 녹일 수도 있다며, 이것이 현장에서 목격된 막대한 물의 일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말 그대로 산 위에 있던 얼음과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하나의 거대한 '움직이는 재난'으로 변한 셈이다.
'규모 4.4 지진' 없지만, 빙하 급붕괴로 지진진동 발생
재난 직후 네팔 정부 안팎에서는 지진이 첫 원인으로 거론됐다. 시시르 카날 네팔 외교장관도 의회에서 당시 초기 보고를 근거로 인근 지역의 지진이 산사태를 촉발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지진 관측망에는 강한 진동이 잡혔다. 당초에는 규모 4.4 안팎의 지진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USGS가 지진파를 정밀 분석하면서 상황은 뒤집혔다. USGS는 이번 현상을 '2026 네팔 토석 눈사태 및 돌발홍수'로 규정하고, 랑탕국립공원 일대의 빙하 붕괴가 대규모 토석류와 홍수를 촉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USGS 분석상 이 붕괴는 규모 5.2에 상당하는 지진 신호까지 만들어냈지만 실제 지각운동에 의한 지진은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지진이 빙하 붕괴를 초래하고 이게 홍수를 발생시킨 게 아니라, 히말라야 빙하·암석이 일시에 붕괴되면서 강력한 지진파를 발생시키고 진흙과 암석이 동반한 홍수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거대한 산사태나 빙하 붕괴는 지진과 비슷한 지진파를 발생시킨다. 수백만t의 물질이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지표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기 때문이다.
얼음만 떨어진 게 아니었다… 암석·토사까지 물고온 눈 사태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번 붕괴가 단순한 '빙하 조각의 낙하'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도 시킴대 공학지질학자인 비크람 굽타 교수는 위성영상을 분석한 결과 "빙하 말단부의 상당 부분이 붕괴해 사건을 시작한 것이 확인된다"며 이 과정에서 상당량의 암석과 퇴적물까지 함께 휩쓸려 내려갔을 것으로 분석했다.
네팔 국가재난위험경감관리청(NDRRMA)의 지질학자 프라카시 포카렐 역시 이번 사태를 'ice-rock avalanche', 즉 얼음·암석 눈사태라고 설명했다. 네팔 당국은 네팔·중국 국경 검문소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렌데(Lhende)강 상류에서 이 대규모 붕괴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 빙하만 떨어졌다면 피해가 제한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수직 낙하한 빙하가 산의 암석과 흙을 뜯어내고 하천수까지 합류시키면 상황이 달라진다. 질량은 계속 커지고, 좁은 계곡은 물과 토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하류 방향으로 집중시키는 통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눈사태는 내려오면서 '빙하 붕괴→토석류→홍수'라는 도미노 상황을 몰고왔다는 분석이다.
시속 180㎞ 가까운 속도.. 사람이 피할 상황 안돼
로이터가 지질학자와 위성자료 등을 토대로 재구성한 결과 얼음과 암석이 섞인 흐름은 일부 구간에서 초당 약 50m 속도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무려 180㎞에 달한다.
이미 네팔 국경검문소의 CCTV 등에서도 확인됐지만, 이는 사람이 보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USGS는 붕괴 이후 형성된 토석류와 홍수가 트리슐리강과 보테코시강을 따라 거의 100㎞를 이동하며 하류지역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국제산악통합개발센터(ICIMOD)에 따르면 하류 갈치(Galchhi) 지역에서는 강 수위가 불과 30분 사이 최대 9m 상승했다. 물만 내려온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바위와 흙, 나무, 건축물 잔해까지 섞인 '움직이는 벽'이 계곡을 따라 내려왔다. 이것이 네팔의 마을과 수력발전시설, 도로와 교량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힘의 정체다.
홍수 전날 위성사진에 잡힌 이상징후.. 눈이 빠르게 사라졌다
빙하는 왜 갑자기 무너졌을까. 현재 과학자들이 가장 신중하게 들여다보는 대목이다. 슈거 교수는 사고 직전 24시간 동안 촬영된 위성사진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눈으로 덮여 있던 인근 빙하 상당 부분이 사고 당일에는 맨얼음 상태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다. 급격한 기온 상승은 눈과 얼음을 녹인다.
녹은 물이 빙하 밑이나 암석의 갈라진 틈으로 들어가면 마찰력이 떨어지거나 수압이 높아질 수 있다. 높은 산악지역에서 얼음이 접착제처럼 붙잡고 있던 암석 틈이 녹으면서 산비탈의 안정성이 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구동토층은 산을 붙잡는 '접착제'.. 녹으면 암벽도 흔들린다
히말라야와 같은 고산지대에는 일 년 내내 얼어 있는 영구동토층(permafrost)이 넓게 분포한다. 이 얼음은 단순히 땅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암석의 균열 사이에서 얼어붙어 바위들을 서로 붙잡는 역할을 한다.
호주 모나시대 빙하학자 앤드루 매킨토시는 영구동토층을 가파른 산악지대의 암석과 때로는 주변 빙하까지 붙잡아주는 일종의 '접착제'에 비유했다. 기온이 지속적으로 올라 얼음이 녹으면 이 접착력이 약해지고 산비탈과 빙하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빙하 자체도 마찬가지다. 빙하가 얇아지고 후퇴하면 이전까지 얼음이 받치고 있던 암벽이 노출된다. 빙하 밑으로 녹은 물이 들어가면 빙하와 암반 사이의 마찰도 줄어들 수 있다. 이 모든 변화가 중력과 결합하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거대한 붕괴로 이어질 수 있어 추가 위험이 여전하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네팔 빙하, 30여년 동안 얼음 약 3분의 1 잃었다
이번 재난을 장기적인 변화와 떼어놓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엔에 따르면 네팔의 빙하는 지난 30여년 동안 얼음의 약 3분의 1을 잃었다. 힌두쿠시 히말라야 지역의 빙하 소실 속도는 2011~2020년 이전 10년과 비교해 약 65% 빨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관계당국 역시 힌두쿠시 히말라야의 빙하가 빠르게 질량을 잃고 있고 눈의 패턴이 달라지는 동시에 영구동토층이 약화하면서 돌발홍수와 산사태, 눈사태, 토석류 같은 연쇄재난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네팔만의 문제도 아니다. 힌두쿠시 히말라야는 극지방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얼음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산악지역 주민뿐 아니라 인더스강·갠지스강·브라마푸트라강 등 대형 하천을 통해 20억명 이상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아시아의 급수탑'이다.
이 거대한 냉동고가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우려다.
다만 “기후변화가 이번 붕괴 직접 일으켰다” 단정은 아직 이르다. 슈거 교수도 "기후변화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앞으로 분명히 조사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빙하의 구조와 암반 상태, 빙하 밑의 물, 단기간의 기온 변화, 눈의 양, 지형, 주변 개발 등 여러 요인을 함께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기후변화가 히말라야라는 '재난의 무대'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과학계의 근거가 훨씬 강하다.
인간이 데운 지구가 되돌려주는 '부메랑'인가
산업화 이후 인류가 화석연료를 대규모로 사용하며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 기온을 끌어올렸다는 사실은 이미 확립된 과학이다. 문제는 그 피해가 배출량에 비례해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네팔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작지만 고산지대의 취약한 지형과 제한된 재난대응 인프라 때문에 기후변화의 충격을 크게 받을 수 있는 국가다. 최근 연구들에서도 네팔과 같은 저개발 산악국가가 낮은 적응능력과 취약한 기반시설 때문에 기후재난으로부터 불균형적으로 큰 손실을 입을 가능성을 지적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재난은 안타깝게도 우리 인간이 산업화와 현대화 과정에서 가속한 온난화가 전혀 다른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되돌아오는 '기후 부메랑'의 한 단면으로 읽힐 수 있는 점에서 네팔과 같은 나라의 기후재난 피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