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사회적 재난] ⑥폭염경제학...폭염이 돈을 얼마나 태우나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선 날, 에어컨을 켜는 순간부터 돈이 나가기 시작한다. 가정에서는 전기요금이 올라간다. 상점과 식당은 냉방비가 늘어난다. 공장은 전력 사용량이 급증한다. 건설현장에서는 작업시간이 줄어든다. 택배기사와 배달노동자의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농민은 작물이 타들어가는 것을, 축산농가는 가축이 떼로 죽어나가는 것을, 어부는 고기가 둥둥 물위에 떠다니는 걸 바라본다. 병원 응급실에는 온열질환자가 몰린다.

 

폭염이 끝나도 비용은 끝나지 않는다. 농산물 생산량 감소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전력 수요 급증은 발전·송전망 투자 부담을 키운다. 노동생산성 저하는 기업의 생산량과 임금소득, 나아가 국가 경제성장률에도 영향을 준다.

 

폭염은 이제 단순히 ‘날씨’가 아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폭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돈을 빼앗아가는 거대한 비용 발생 장치다. 문제는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이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타는 돈은 ‘노동생산성’

 

폭염의 경제적 피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의외로 전기요금이나 농산물 피해가 아니다. 사람의 노동력이 떨어지는 데서 발생하는 손실이다.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등이 2025년 발표한 연구는 2016~2022년 우리나라 폭염 피해를 노동생산성 손실과 온열질환 진료비 등을 합쳐 분석했다.

 

분석 결과, 폭염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손실은 7년간 연평균 2,651억 원, 전체 임금지급액의 0.18%에 달했다. 폭염이 가장 심했던 2018년에는 손실액이 7,616억 원​으로 치솟았다. 당시 전체 임금지급액의 0.48%가 폭염으로 사라진 셈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피해 구조다. 2016~2022년 평균 폭염 피해액 2,678억 원 가운데 노동생산성 손실이 2,651억 원으로 약 99%를 차지했다.

 

한국환경연구원은 2018년 폭염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감소액을 약 3,450억 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더위가 심해지면 노동자는 쉬는 시간이 늘어난다. 작업속도도 떨어진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실수가 증가한다. 결국 같은 8시간을 일해도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건설·농업·운송·물류·조선·제조업처럼 육체노동 비중이 높은 산업의 피해가 크다.

 

◇에어컨을 켜는 순간 시작되는 ‘전력 비용’

 

폭염은 전력시장에도 직접적인 충격을 준다. 2024년 우리나라에서는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최대 전력수요가 연이어 기록을 갈아치웠다. 8월 20일에는 최대 전력수요가 97.1GW까지 치솟아 당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5년에는 상황이 더 빨라졌다. 폭염이 일찍 시작되면서 7월 초부터 전력 총수요가 100GW를 넘었고, 7월 8일에는 103.9GW까지 치솟았다.

 

2026년에도 폭염에 따른 전력수요 급증은 주요 전력수급 위험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는 2026년 여름 최대 전력수요가 98.8GW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전망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비용이 숨어 있다. 전력수요가 폭증하면 발전소를 더 가동해야 하고, 송전망과 변전소 등 전력 인프라의 확충 필요성도 커진다. 폭염이 길어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고, 더 많은 설비를 갖춰야 한다. 결국 더위가 에너지 인프라 투자비로 바뀌는 것이다.

 

 

◇작물, 가축, 물고기가 죽는다

 

폭염은 밭과 과수원에서도 돈을 태운다. 2024년 여름 폭염으로 인한 고온 현상으로 인삼·레드향·단호박 등 3,447ha​의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고, 벼멸구 생육기에 지속된 고온으로 벼 피해 면적도 1만7,732ha​에 이르렀다.

폭염은 작물의 품질까지 떨어뜨린다. 과일의 착색과 당도에 영향을 주고, 채소의 생육을 방해하며 병해충 발생 조건을 바꾼다. 결국 농민의 손실이 소비자의 식탁 물가로 이전된다.

 

폭염은 축산업에도 치명적이다. 2024년 폭염으로 가축 폐사 규모가 약 168만9,000마리​에 달했다. 전년보다 약 88만1,000마리 증가했다. 닭과 돼지 등은 사람보다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폭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고 성장률과 산란율이 떨어진다.

계란·육류 등 공급이 감소하면 가격 상승으로 연결된다.

 

폭염의 경제적 피해는 육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바다의 수온이 올라가면 양식업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다. 2024년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관측 해수면온도는 최근 10년 가운데 가장 높았고, 이상고수온 발생일수도 최근 10년 평균의 3.6배에 달했다.

 

그 결과 넙치·조피볼락·전복·멍게·굴 등 양식생물의 대량 폐사가 발생했고 피해액은 1,430억 원​으로 집계됐다. 폭염이 육지의 농산물을 위협한다면 고수온은 바다의 수산물을 위협한다.


◇병원비만 나가는 게 아니다

 

폭염의 대표적인 경제 피해로 온열질환 의료비도 꼽힌다. 그러나 실제 비용은 치료비보다 훨씬 크다.

 

환자가 병원에 가면 치료비가 발생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하루 일을 쉬면 임금손실이 발생한다. 가족이 환자를 돌보면 돌봄 노동의 가치가 발생한다. 중증환자가 발생하면 장기적인 치료비와 사회보장 비용이 발생한다. 사망에 이르면 그 사람이 생전에 창출했을 경제적 가치까지 사라진다.

 

한국환경연구원은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산정하면서 온열질환자 치료비뿐 아니라 사망자의 경제적 가치와 노동생산성 감소까지 함께 고려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폭염으로 인한 모든 비용을 하나의 숫자로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가 여러 부처와 산업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각자의 숫자는 있지만 이 숫자를 하나로 묶는 ‘폭염 국가회계’는 없는 셈이다.

 

◇폭염을 막는 데 돈을 쓰는 것이 오히려 싸다

 

여기서 중요한 경제학적 질문이 등장한다.

“폭염 피해를 줄이는 데 돈을 쓰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타당한가?”

 

서울대 연구팀이 최근 폭염 대응기술의 비용 대비 편익을 분석한 결과, 옥상·벽면 녹화의 편익비용비(BCR)는 2.60, 쿨루프는 1.66​으로 나타났다. 즉 투자비용보다 폭염 피해 감소로 얻는 경제적 편익이 더 컸다는 의미다. 반면 안개분무시설은 0.80, 퍼걸러는 0.86으로 기술별 경제성이 달랐다.

 

이 결과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폭염 대응은 돈을 쓰는 정책이 아니라 미래에 발생할 더 큰 비용을 줄이는 투자라는 것이다.

 

◇폭염이 왜 ‘사회적 재난’인가

 

폭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찾아오지만 비용은 공평하게 부과되지 않는다. 에어컨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차이가 있다. 실내 노동자와 야외 노동자의 차이가 있다. 대기업과 영세사업장의 냉방비 부담도 다르다. 농민과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도 다르다.

 

결국 폭염은 경제적 불평등을 확대한다. 기후위기의 비용을 가장 많이 부담하는 사람이 오히려 폭염을 만들어내는 데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폭염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더위에 대비하자는 뜻이 아니다. 폭염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결정하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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