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이지 않는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가정에서도 충전 조심해야

무선청소기, 보조배터리, 노트북, 전기자전거까지
“눈으로 꺼졌다고 보여도 꺼진 게 아니다”
아리셀 공장, 청라 지하주차장 대형 화재 이후 리튬배터리 문제 부각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1

8월 21일 오전 1시 32분께 세종시 새롬동의 한 아파트 29층에서 불이 났지만 바로 꺼져서 큰 피해는 없었다. 출동한 소방당국은 침대 옆에서 충전 중이던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난 것으로 판단했다.

 

전날인 8월 20일 오후 6시 11분께는 세종시 조치원읍 신흥리의 한 아파트 6층에서 불이 나 18분 만에 꺼졌다. 충전해 둔 무선청소기에 내장된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집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2

지난 7월 2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 한 아파트에서 로봇 청소기 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해 주민들이 긴급 대피했다. 해당 로봇 청소기는 중국 업체가 제조한 제품으로, 리튬 이온전지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3

하루 전인 7월 20일에는 인천에서 출발해 필리핀 보라카이로 향하던 티웨이항공 여객기 안에서 승객의 보조 배터리에 불이 나 연기가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승무원들의 빠른 대응으로 불길은 곧바로 잡혔지만,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지난해 1월에도 김해에서 홍콩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던 에어부산 여객기 내에서 보조 배터리에 불이나 승객과 승무원 등 7명이 다치고 여객기가 전소됐다.

 

#4

전북자치도소방본부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리튬이온배터리 화재 통계를 분석한 결과, 총 128건에 연평균 26건의 화재가 발생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로 인해 7명이 부상을 입고, 32억 4천만 원에 달하는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충전 중에 발생한 화재가 전체의 54.7%인 70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보관 중 화재가 26.6%인 34건, 운행 중과 주차 중 화재가 각각 6건으로 집계됐다.

 

 

#5

2024년 6월 24일 오전 10시 31분께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불이 났다.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근로자 23명이 숨진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당시 현장 CCTV에는 최초 배터리에서 흰 연기가 발생한 뒤 불과 수십 초 만에 작업장 내부로 연기가 급격히 퍼지는 모습이 확인됐다. 배터리 화재가 일반적인 가연물 화재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준 장면이다.

 

#6

두 달 후인 2024년 8월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1층에 주차돼 있던 전기차배터리에서 불이 발생했고, 화재 진압에는 8시간 이상이 걸렸다. 배터리 열폭주가 일어나며 주변에 있던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리는 피해를 입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열폭주’로 인한 화재가 끊임 없이 발생하고 있다.

 

리튬배터리는 전기차부터 로봇, 전동 킥보드나 전기 자전거 같은 개인형 이동장치, 무선청소기, 노트북, 전동공구, 휴대용 보조 배터리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에너지원이 됐다. 작고 가벼우면서도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높은 에너지 밀도는 위험의 근원이기도 하다. 배터리 내부에서 이상이 발생하면 단순히 불이 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열을 만들어내며 주변 셀까지 연쇄적으로 폭주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바로 ‘열폭주(Thermal Runaway)’다.

 

열폭주는 배터리 셀이 통제할 수 없는 자기 발열 상태에 들어가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극도로 높은 온도와 가스, 연기, 화염이 발생하고 경우에 따라 배터리 내부의 압력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가스와 파편이 강하게 방출될 수 있다.

 

◇왜 불이 잘 꺼지지 않을까

 

배터리 내부에 저장된 에너지와 열 때문이다. 리튬이온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를 리튬이온이 이동하면서 충·방전하는 구조다. 내부에는 양극과 음극이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얇은 분리막이 들어 있다.

 

문제는 이 분리막이 손상되거나 내부에 결함이 발생하면 양극과 음극 사이에 내부 단락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격, 압착, 제조 과정의 불량, 과충전, 과방전, 고온 환경 등이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내부 단락으로 열이 발생하고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 배터리 내부의 화학반응이 빨라진다. 화학반응이 열을 만들고, 그 열이 또 다른 반응을 촉진한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리튬이온배터리 화재에서 소방관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재발화다. 배터리팩 겉에서 불꽃이 사라졌다고 해서 내부의 열폭주가 완전히 끝났다고 볼 수 없다.일부 셀의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았다면 시간이 지나 다시 열폭주가 발생할 수 있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안전수칙

 

리튬배터리 화재는 충돌이나 외부 충격 때문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가정 전자제품 충전 과정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배터리가 과충전되거나 지나치게 높은 온도에서 충전될 경우 화재 위험성이 상존한다. 충전이 끝난 뒤에는 바로 배터리를 기기와 분리해야 한다.

 

손상된 배터리를 계속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배터리가 부풀어 올랐거나 변형됐거나, 평소보다 지나치게 뜨겁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지직거리거나 딱딱거리는 소리가 난다면 내부 손상의 신호일 수 있다. 인증된 제품을 사용하고, 제조사가 지정한 충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배터리를 햇빛이 직접 닿는 자동차 안이나 뜨거운 장소에 방치해서도 안 된다. 리튬이온배터리는 가능한 한 실온에서 보관하고, 0℃ 이하 또는 40℃ 이상에서는 충전하지 않아야 한다.

 

손상된 배터리를 일반 쓰레기와 함께 버려서는 안 된다. 배터리 폐기 과정에서 압착이나 충격이 가해지면 화재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폐배터리는 지정된 수거·재활용 체계를 이용해야 한다.

 

◇리튬배터리 시대, 안전 문제 해결해야

 

리튬이온 배터리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탄소중립과 전기화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기술이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안전 체계가 충분히 따라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의 화재안전은 ‘불이 난 뒤 얼마나 빨리 끌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리튬이온배터리 시대에는 ‘열폭주가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 발견하고, 시작된 열폭주가 다른 셀과 시설로 번지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화성 아리셀과 인천 청라의 사례는 배터리 화재가 단순한 제품 화재가 아니라 산업재해와 도시재난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자동화·무인화 설비 확대로 물류센터 등 산업현장에서 로봇 사용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쓰이는 리튬 이차전지의 화재 안전관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문제다.

 

소방청은 아리셀 공장 화재를 계기로 리튬 일차전지를 ‘특수가연물’로 지정해 관리를 강화하는 화재예방법 시행령을 올해 5월 입법예고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언론에 “정부가 피지컬 인공지능(AI)을 강조하면서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 문제는 갈수록 부각될 것”이라며 “산업 현장에서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세심한 관리와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검증된 제조사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라며 “배터리는 적정 수준에서 충전하고, 연기나 이상한 냄새가 감지되면 담요 등으로 감싼 뒤 욕조 등에 넣고 냉각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응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