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 기업을 살린다] ②안전은 비용인가, 투자인가

사고 한 번에 공장 멈추고 납품 차질
“안전설비 투자는 생산성 높이는 보험”

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울산의 한 대형 조선소. 수십만㎡에 이르는 작업장에는 선박 블록과 크레인, 용접 장비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작업자들이 오가는 통로와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작업구역 곳곳에는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다. 조선업은 작업공간이 넓고 공정이 복잡한 만큼 안전관리에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도 사고가 발생하면 문제는 단순히 ‘안전사고’로 끝나지 않는다. 작업이 멈추고, 생산 일정이 밀리고, 납품에 차질이 생긴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동안 다른 공정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안전에 들어가는 돈을 아깝게 생각하다가 오히려 훨씬 큰 비용을 치르는 이유다.

 

 

산업현장에서 오랫동안 반복돼온 질문이 있다. 안전은 비용인가, 투자인가.

 

최근의 산업현장을 보면 답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안전에 들어간 돈은 사고를 막는 비용인 동시에 생산중단과 인력 손실, 품질 저하, 기업 신뢰 하락을 막는 투자라는 것이다.

 

실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2024년 2월 HD현대중공업 해양공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자 회사는 해당 공장의 생산을 중단했다. 당시 기업공시에 따르면 생산중단 분야의 매출액은 7852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8.68%에 해당했다.

 

회사는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안전조치를 완료한 뒤 작업을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사고 근절을 위한 특별 안전교육을 위해 전 공장의 생산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관리 비용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멈춰선 생산라인에서 발생하는 손실, 납기 지연에 따른 부담, 대체인력 투입, 사고 조사와 법률 대응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줄줄이 따라온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손실비용 관련 연구도 산업재해의 비용이 치료비나 보상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생산·매출 손실, 설비 수리비, 납기 지연, 인력대체에 따른 생산성 저하, 소송비용, 사고 수습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대책 비용, 기업 이미지 훼손 등 다양한 간접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1년에 600명 넘게 일터에서 숨진다

 

우리 산업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5년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605명이다. 2024년 589명보다 16명, 2.7% 증가했다. 2022년 644명, 2023년 598명, 2024년 589명으로 감소하던 사고사망자가 3년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건설업에서 286명, 제조업에서 158명이 숨졌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에서만 174명이 숨져 전년보다 22명 증가했다.

 

사망자 숫자만 놓고 보면 안전투자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 안전에 투자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건설업의 경우 정부는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제도를 통해 안전 관련 비용을 공사비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2025년부터 관련 계상요율은 평균 19% 인상됐고, 스마트 안전장비 구입·임대비용의 인정 범위도 확대됐다. 2026년에는 스마트 안전장비 비용을 산업안전보건관리비에서 100% 인정하고, 관련 사용한도도 종전 10%에서 20%로 늘렸다. 폭염·한파에 대비한 휴게시설과 냉·난방기기 임대비용도 사용항목에 포함됐다.

 

정부가 안전 관련 비용을 단순한 부대비용으로 보지 않고 작업환경 개선에 필요한 투자로 접근하고 있다는 의미다.

 

◇안전설비 투자는 생산성도 높인다

 

김현중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안전투자를 생산성과 연결해 설명했다.

 

그는 “한 번의 실수가 사망으로 이어지면 공정이 중단되고, 이는 생산성 손실로 이어진다”며 “안전설비 투자는 사고 피해를 줄이면서 생산성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안전을 ‘빨리 가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로 생각하는 현장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며 “안전할수록 더 빨라진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실제로 이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기로지텍은 에어컨 설치 작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락사고를 줄이기 위해 안전벨트와 안전모 등의 보호구 착용 기준과 관리체계를 마련해왔다. 대형 TV 배송 과정에서 작업자가 제품을 들다가 넘어지거나 부딪히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별도의 지그를 제작해 사용하는 사례도 있다. 회사 측은 위험요인을 사전에 찾아 개선하는 방식으로 안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기도 협력사까지 안전관리 범위를 넓히고 있다. 2025년 협력사 100여 곳의 대표와 안전환경 책임자가 참여한 안전환경 워크숍을 열고 사고 예방과 현장 개선 사례를 공유했다. 10개 협력사를 대상으로는 맞춤형 컨설팅과 교육을 진행해 위험성평가와 사고예방 시스템을 함께 구축했다.

 

이런 투자는 당장 손익계산서에 ‘수익’으로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투자 효과일 수 있다. 생산라인이 멈추지 않고, 숙련된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지 않고, 납품 일정이 지켜지는 것 역시 기업이 얻는 경제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안전투자의 효과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매출을 늘리기 위한 설비투자는 생산량 증가라는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만, 안전설비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존재감이 없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소 몇천만 원, 몇억 원을 아끼기 위해 미뤘던 설비 개선이 한순간에 수십억 원, 수백억 원의 생산손실로 돌아올 수도 있다.

안전은 그래서 보험과 비슷하다. 사고가 나지 않으면 쓴 돈이 아깝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그때 왜 미리 투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문제는 모든 기업이 안전투자를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안전시설 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이 2026년 클린사업장 조성지원사업에 전년보다 399억 원 늘어난 5334억 원을 투입하기로 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10인 미만 사업장 등에는 떨어짐·끼임·부딪힘 사고 예방을 위한 설비 개선비용을 최대 90%까지 지원한다.

 

◇안전투자의 이유가 바뀌어야

 

안전보건공시제가 올해부터 시행되면서 기업의 안전보건 투자와 산업재해 현황 등을 외부에 공개하는 길도 열렸다. 이제 기업의 안전관리는 현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성과와 기업가치를 바라보는 하나의 지표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이 안전에 투자하는 이유도 달라져야 한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만 안전예산을 편성한다면 사고가 줄어드는 데 한계가 있다. 생산을 계속하기 위해, 숙련된 인력을 지키기 위해, 납품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업의 신뢰를 지키기 위해 안전에 투자해야 한다.

 

안전은 생산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생산을 멈추지 않게 하는 조건에 가깝다. ‘안전이 기업을 살린다’는 말은 구호가 아니다. 사고 한 번으로 멈춰선 생산라인과 그 뒤에 따라오는 비용을 생각하면, 안전에 먼저 돈을 쓰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가장 현실적인 경영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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