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시간당 100㎜ 폭우 뉴노멀"…도시 배수·산사태 설계기준 괜찮나

거제 124.5㎜/h ‘200년 빈도’ 폭우…2024·2025년에도 100㎜ 이상 호우 31개 지점
지하차도 설계빈도 50→100년…산림 배수시설도 극한호우 기준 대폭 강화
문제는 이미 지어진 도시와 산지…“과거 통계 넘어 미래 기후 반영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시간당 100㎜.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상재난 기사에서 쉽게 보기 힘든 숫자였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떻게 보면 뉴노멀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이번에 보여준 '거제 폭우'다.

 

17일 새벽 경남 거제에는 한 시간 동안 124.5㎜의 비가 쏟아졌다. 1972년 거제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강한 1시간 강수량이다. 기상청은 이를 연최대 1시간 강수량 기준 ‘200년 빈도’ 수준으로 분석했다.

 

비는 한 번 퍼붓고 끝나지도 않았다.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잇따라 쏟아지면서 이날 오후 6시까지 거제의 하루 강수량은 638.7㎜에 달했다. 산사태가 아파트를 덮쳐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도로와 주택, 지하공간 곳곳이 물에 잠겼다.

 

문제는 이런 ‘100㎜/h’의 비가 더 이상 아주 특별한 예외로만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18일 기상청에 따르면 2024년 7~9월 전국 16개 지점에서 시간당 100㎜ 이상 비가 관측됐다. 지난해에도 가평·서산·함평·군산 등 15개 지점에서 1시간 최다강수량이 100㎜를 넘어섰다. 지난해 9월 군산에서는 시간당 152.2㎜까지 기록됐다.

 

이제는 이른바 비가 내리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도시의 하수관과 지하차도, 도로 배수시설은 시간당 100㎜가 넘는 비를 버틸 수 있을까이다. 산사태를 막는 산지 배수시설과 사방시설은 100년, 200년 빈도의 극한호우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느냐이다. 

 

비 오는 날은 줄었는데 ‘한 번에 세게’ 온다

기상청이 작년말 내놓은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는 최근 강수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1912~2024년 장기간 추세를 보면 연간 강수일수는 감소한 반면 강수량과 강수강도는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최근 들어 시간당 100㎜가 넘는 국지성 호우가 두드러지면서 기상청도 “최근 기후변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쉽게 말하면 ‘조금씩 자주 내리는 비’보다 짧은 시간에 좁은 지역을 집중적으로 때리는 비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 2024년 한 해만 16개 지점, 지난해에는 15개 지점에서 시간당 100㎜ 이상 호우가 관측된 것도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연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하더라도 특정 시간과 지역에 강수가 집중되면 도시가 감당해야 하는 재난의 강도는 전혀 달라진다.

 

이미선 기상청장도 지난해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폭염과 열대야, 호우, 가뭄 등 극한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며 복합재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시는 과연 어느 정도 비까지 버틸까

시간당 100㎜가 내린다고 모든 도시가 반드시 침수되는 것은 아니다. 지형과 하천 규모, 하수관·빗물펌프장·저류시설의 처리 능력 등에 따라 피해 정도는 달라진다.

 

하지만 배수시설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도로와 하천, 지하차도 같은 기반시설은 일정 수준의 강우를 가정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사용하는 개념이 ‘설계빈도’다. 50년 빈도라면 매년 2%, 100년 빈도라면 매년 1% 확률로 발생할 수 있는 규모의 강우나 홍수를 기준으로 시설 규모를 정한다.

 

문제는 17일 거제처럼 설계 당시 예상했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비가 닥칠 때다. 배수능력을 넘어선 물은 결국 도로와 저지대에 쌓이고 지하공간으로 밀려든다. 아무리 하수관을 잘 관리해도 처리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물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침수를 완전히 막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정부도 지하차도 기준 50년에서 100년으로

정부도 이미 설계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023년 오송참사 사건에서 나타나듯 엄청난 양의 물을 버티는 것은 대부분 결국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2월 ‘도로 배수시설 설계 및 관리지침’을 개정했다.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도로 배수불량과 지하차도 침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도시지역 침수위험지역과 하천 주변 지하차도는 배수시설 설계빈도를 기존 50년에서 100년으로 높였다. 집수정의 빗물 유입구를 확대하고 도로 주변 비탈면 배수시설 기준도 강화했다.

 

2023년 충북 청주 오송 궁평2지하차도 참사 등을 거치면서 극한호우 때 지하공간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가 드러난 뒤 방재기준 자체가 강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거제 호우는 이보다 한 단계 높은 ‘200년 빈도’ 수준이었다. 새 기준을 적용했다고 해서 모든 극한호우에 안전하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산사태 대응 설계기준도 ‘과거 평균’에서 ‘최근 극값’으로

산사태 대응기준도 바뀌고 있다. 산림청은 지난해 임도 설계·시공 기준을 강화했다. 기존에는 배수구와 교량, 암거 등을 최근 100년 빈도 확률강우량의 1.2배 수준으로 설계했지만, 개정된 기준에서는 100년 빈도 확률강우량 또는 최근 5년간 실제 발생한 극한호우를 반영한 강우량의 최대 2배 수준까지 고려하도록 했다.

 

주목할 부분은 ‘최근 5년 극한호우’를 설계에 직접 반영했다는 점이다. 과거 수십 년 평균만 갖고는 앞으로의 산사태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산사태는 단순히 하루에 얼마나 많은 비가 왔는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짧은 시간의 강우 강도와 앞서 내린 비의 양, 토양 수분, 경사와 지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폭우가 계속되면서 토양이 물로 포화되면 흙을 붙잡아주는 힘이 약해지고 어느 순간 비탈면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

 

17일 거제 옥포동 산사태가 아파트까지 덮친 사고는 산과 도시의 경계가 극한호우 시대의 새로운 취약지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만큼,  대비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 큰 숙제는 ‘이미 만들어진 도시’.. 선택과 집중해야

설계기준을 높인다고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새 도로나 지하차도는 강화된 기준으로 지을 수 있지만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는 수십 년 전에 설치된 하수관과 도로, 옹벽, 지하공간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모두 최신 기준에 맞춰 단기간에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꼭 폭우만이 아니라, 지진 등 대부분 재난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비용뿐 아니라 지하철·전력·통신·상하수도 시설이 얽힌 도심에서는 공간 확보도 쉽지 않다.

 

따라서 모든 지역의 배수시설을 일률적으로 키우는 것보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한번 침수되면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지역부터 우선순위를 정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지하차도와 지하역사, 상습침수 저지대, 하천 주변, 반지하주택 밀집지역, 산비탈과 맞닿은 아파트 등이 대표적이다. 하천의 홍수위험 역시 100년·200년·500년 등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위험지역을 파악하는 방식으로 관리되고 있다. 환경당국은 기후변화에 따라 증가하는 홍수량을 시설 설계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방어기준을 강화해 왔다.

 

100% 대책은 없다.. 과감히 차선책 대안 모색이 중요

도시 전체를 시간당 100~150㎜가 와도 한 방울도 잠기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배수관을 무한정 키울 수 없고 극한호우가 설계능력을 넘어서는 순간은 언제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 방재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일부 빗물은 저류조나 공원·운동장 등에 일시적으로 저장하고, 대심도 터널 등을 이용해 우회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하차도나 하천변처럼 대피가 어려운 곳은 침수가 시작된 뒤가 아니라 위험이 커지기 전에 통제해야 한다.

 

‘물을 모두 빼내는 도시’가 아니라 ‘물이 넘쳐도 사람이 죽지 않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더 현실적인 목표라는 얘기다.

 

산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산에 사방댐과 옹벽을 설치할 수는 없다. 시설로 막을 수 없는 수준의 비가 예상되면 결국 사람이 먼저 피해야 한다. 실시간 강우량과 누적강수량, 토양수분, 경사와 지질을 종합해 위험지역을 더 세밀하게 예측하고, 산과 맞닿은 아파트·주택까지 선제적인 대피체계를 갖춰야 한다.

 

‘100년 빈도’라는 말도 달라져야 

기후변화 시대에는 ‘100년에 한 번’이라는 표현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100년 빈도는 한 번 발생하면 99년 동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매년 1%의 발생확률이 있다는 통계적 의미다. 200년 빈도 역시 연간 발생확률 약 0.5%를 뜻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확률의 상당 부분이 과거 관측자료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기후가 안정적이라면 과거가 미래를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온도와 해수온, 대기 중 수증기량이 변하면서 강수의 특성까지 달라진다면 과거의 ‘100년 빈도’가 앞으로도 같은 확률을 유지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2년 연속 전국 다수 지점에서 시간당 100㎜가 넘는 호우가 나타난 것도 과거 통계에만 의존한 방재기준을 재점검해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거제 124.5㎜가 던진 숙제.. 이제부터 새로 짜야 

17일 거제의 시간당 124.5㎜는 하나의 기상 신기록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2024년에는 전국 16개 지점, 지난해에는 15개 지점에서 시간당 100㎜ 이상 호우가 관측됐다. 지난해 군산에서는 152.2㎜까지 쏟아졌다. 정부 역시 변화에 맞춰 지하차도와 도로 비탈면, 임도 등 주요 기반시설의 설계기준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기후가 변하는 속도에 맞춰 이미 만들어진 도시와 산지의 시설을 모두 뜯어고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시설 보강과 함께 ‘위험하면 먼저 통제하고 대피하는 방재’로의 전환이 시급한 이유다.

 

장석환 대진대(스마트건축토목공학) 교수는 극한호우 대응과 관련 “극한호우가 잦아진 만큼 지방하천 홍수 빈도를 강화해야 하지만 전 구간을 정비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만큼 인구가 많은 구간이나 취약지구부터 200년 빈도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산사태 대응에 대해서도 "강우 강도를 취약지역 평가에 반영하고 위험도를 지역별로 세분화해 실시간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3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