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분석] 200년來 한 번 올 ‘거제 물폭탄 재난’.. 왜 쏟아졌을까

하루 638.7㎜·한 시간 124.5㎜.. 거제 관측사상 일·시간 강수량 모두 1위
태풍 돌핀이 남긴 저기압에 뜨거운 남해·강한 남풍·산악지형까지 ‘최악의 조합’
기온 1도 오르면 대기 수증기 약 7% 증가.. 극한호우 더 강해질 가능성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하늘에 거대한 물탱크라도 열린 듯 비가 쏟아졌다. 17일 경남 거제에 내린 비는 ‘많이 왔다’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루 동안 600㎜가 넘는 비가 쏟아졌고, 가장 거셌던 한 시간에는 124.5㎜가 퍼부었다. 무려 200년 만에 나올 법한 비가 이번에 왔다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폭우가 가능한 것일까.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까지 거제의 일강수량은 638.7㎜를 기록했다. 지난 1972년 1월 거제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다. 전국 97개 종관기상관측지점으로 범위를 넓혀도 역대 세 번째다.

 

이보다 많았던 사례는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한 2002년 8월 31일 강릉 870.5㎜와 대관령 712.5㎜뿐이다. 태풍이 직접 거제를 관통한 것도 아닌데 루사 때에 버금가는 비가 한 지역에 집중된 셈이다.

 

비의 양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속도’였다.

17일 오전 1시 32분부터 한 시간 동안 거제에는 124.5㎜가 쏟아졌다. 기존 거제의 1시간 최다강수량 기록인 2001년 7월 5일 96.5㎜보다 28㎜나 많다. 기상청은 이를 ‘200년 빈도’​에 해당하는 강우로 분석했다. 장기간 통계상 매년 이런 강도의 비가 발생할 확률로 치면 약 0.5%라는 의미다.

 

시간당 124.5㎜는 어느 정도일까. 강수량 1㎜는 1㎡에 물 1ℓ가 떨어진 것과 같다. 따라서 시간당 124.5㎜는 1㎡마다 한 시간 동안 124.5ℓ의 물이 쏟아진 것이다.  이런 비가 도시와 산지에 동시에 쏟아지면 하수관과 배수시설이 감당하기 어렵다. 특히 가뭄으로 인해 흡수 능력이 떨어진 산지 토양은 빠르게 포화되고 하천 수위도 순식간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거제 옥포동에서 산사태가 아파트까지 덮쳐 사망자가 발생한 것도 이 같은 극한강우와 무관하지 않다.

 

거제만의 일도 아니었다. 통영에서는 한 시간에 97.4㎜가 내려 1968년 관측 시작 이후 최고 기록을 세웠고, 기상청 분석상 100년 빈도 수준으로 평가됐다. 부산 가덕도에서도 시간당 101.5㎜가 쏟아졌다.

 

사흘간 912㎜.. 여름 한 철 비가 한꺼번에

거제의 종전 일강수량 최고 기록은 1985년 5월 5일 438.3㎜였다. 이번에는 이보다 200㎜가량 더 많은 638.7㎜가 내려 41년 만에 기록을 크게 갈아치웠다. 전국적으로도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가장 많은 일강수량이다.

 

광복절인 15일부터 17일 오후 6시까지 거제 누적강수량은 912.4㎜에 달했다. 거제의 평년 여름철 전체 강수량은 935.1㎜다. 6~8월 석 달 동안 내릴 비의 약 98%가 사흘도 안 돼 쏟아진 셈이다. 통영도 같은 기간 748.8㎜가 내려 평년 여름철 강수량 728.8㎜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태풍이 직접 상륙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이런 비가 가능했을까.

 

기상청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극한호우에는 태풍 돌핀이 남긴 저기압, 강한 남풍, 뜨거운 남해, 거제·통영의 산악지형​이 한꺼번에 맞물렸다. 태풍은 사라졌지만 ‘수증기 통로’는 그대로 남았다

 

출발점은 제13호 태풍 ‘돌핀’이었다. 돌핀은 세력이 약화해 저기압으로 변했지만 이 저기압이 한반도 남서쪽에서 접근하면서 대기의 흐름을 바꿨다. 북반구 저기압 주변에서는 바람이 반시계 방향으로 분다. 한반도가 저기압 동쪽에 놓이면서 남해에서 한반도를 향해 강한 남풍이 불어 들어오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남풍은 사실상 ‘수증기 컨베이어벨트’ 역할을 했다. 한 번 비가 내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남해에서 새로운 수증기가 끊임없이 공급된 것이다. 

 

여기에 한반도 북동쪽에는 고기압이 자리 잡았다. 남서쪽의 저기압과 북동쪽 고기압 사이 기압 차가 커지면서 두 기압계 사이의 남풍도 더욱 강해졌다. 기상청 역시 이처럼 좁아진 ‘바람길’을 기록적인 호우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했다.

 

결국 강한 비구름 한 덩어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구름을 계속 만들어낼 ‘연료’가 같은 지역으로 지속적으로 들어온 것이 핵심이었다.

 

27~28도 뜨거운 남해가 ‘연료탱크’ 역할

남풍이 지나온 남해도 평소보다 뜨거웠다. 16일 기준 남해 해수면 온도는 27~28도 안팎이었다. 바닷물이 따뜻할수록 증발하는 수증기는 많아진다. 그 위를 지나가는 따뜻한 남풍 역시 더 많은 수증기를 머금을 수 있다.

 

남해가 이번 폭우를 키운 거대한 ‘수증기 공급원’이 된 셈이다. 기상학적으로 따뜻한 공기는 차가운 공기보다 더 많은 수증기를 품는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대기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수증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이 약 7% 증가한다고 설명하는데,  극한강수 강도 역시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커지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대기를 스펀지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더 큰 스펀지가 되고, 비를 내릴 조건이 갖춰지면 한꺼번에 더 많은 물을 쏟아낼 수 있다.

 

거제의 산이 습한 공기를 들어 올렸고, 지형이 방아쇠를 당긴 셈이다. 거제와 통영은 바다 바로 뒤로 산지가 이어진다. 남해에서 수증기를 잔뜩 머금고 올라온 남풍이 산지에 부딪히면 공기가 강제로 상승한다.

 

이를 ‘지형성 상승’이라고 하는데,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팽창하면서 온도가 떨어지고, 공기 속 수증기는 물방울로 응결한다. 이미 많은 수증기를 품은 공기가 거제의 산을 만나 계속 상승하면서 비구름은 더욱 강하게 발달했다.

 

여기에 비구름이 한 번 지나간 뒤 끝난 것이 아니라 비슷한 통로를 따라 계속 유입됐고, 따뜻하고 습한 남풍의 방향이 장시간 유지되면서 거제·통영·가덕도 부근에 강수대가 반복적으로 형성됐고, 결국 거제에서는 시간당 124.5㎜라는 극한강우와 하루 638.7㎜라는 기록적인 누적강수가 동시에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200년 빈도’ 비, 또 올 수 있다

200년 빈도라면 앞으로 200년 동안 이런 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00년 빈도는 매년 이런 수준의 강우가 발생할 확률이 약 0.5%라는 통계적 의미일 뿐, 한 번 내린 뒤 200년 동안 다시 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 기후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고, 이건 바로 다시 이런 상황이 올 확률이 높이고 있는 셈이다.  기후변화로 대기 온도와 해수온, 대기 중 수증기량 자체가 변하고 있어 과거의 ‘200년 빈도’가 앞으로도 그대로 200년 빈도로 남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 우리나라의 비도 ‘자주 조금씩’보다 ‘한꺼번에 강하게’ 내리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기상청의 ‘우리나라 113년 기후변화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1912~2024년 연간 강수일수는 감소했지만 연강수량은 증가했다. 강수강도와 호우일수, 시간당 50㎜ 이상 강우 발생일수도 증가 추세다.

 

2024년에는 시간당 100㎜ 이상 호우가 전국 16개 지점에서, 지난해인 2025년에는 15개 지점에서 관측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간당 100㎜는 매우 보기 드문 숫자였다. 이제는 매년 전국 여러 지역에서 등장하고 있다.

 

미래에는 ‘100년 빈도’ 비 자체가 강해질 수도

실제로 기상청의 미래 전망도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를 이용한 분석에서는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도 우리나라의 100년 빈도 극한강수량이 현재보다 30% 안팎 늘어날 가능성이 제시됐다.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증가폭이 더 커져 21세기 후반에는 현재보다 50% 이상 증가하는 지역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미래의 문제는 단순히 ‘비가 많이 온다’는 데 있지 않다. 연간 강수량이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도 더 짧은 시간에, 더 좁은 지역에, 더 강하게 쏟아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데 있다.

 

다만 이번 거제 폭우 하나를 곧바로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미선 기상청장도 장기 기후변화 분석 결과를 발표하면서 “최근 기후변화는 유례없는 기온 상승과 더불어 폭염, 열대야, 호우, 가뭄 등 여러 극한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복합재해의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최악’이 미래의 기준이 될 수도

불과 며칠 전까지 폭염과 가뭄으로 농업용수와 저수율을 걱정했다. 그런데 사흘 만에 여름 한 철 내릴 비에 가까운 912㎜가 쏟아졌고, 산사태와 침수라는 상황까지 연결됐다. 

 

주목해야 할 것은 ‘신기록’ 자체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 시대에는 ‘관측 사상 처음’이라는 기록이 생각보다 오래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거제 물폭탄은 태풍 돌핀이 남긴 저기압과 강한 남풍, 27~28도의 뜨거운 남해, 거제의 산악지형이 한곳에서 맞물린 결과였다. 

 

하지만 그 비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따뜻한 바다와 수증기 많은 대기’라는 배경은 앞으로 더 자주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200년에 한 번 올 것으로 계산한 비가 반드시 다음 200년을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IPCC는 "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대부분 육지에서 극한강수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온난화가 심화할수록 매우 드문 폭우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밝힌 점은 향후 상황 악화에 대한 대응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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