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도 폭우에 쓰러지고 무너지고.. 남부지방 피해 잇따라

가뭄에 기다렸던 단비가 ‘물폭탄’으로.. 경남 하동 114.5㎜·한라산 271.5㎜
사찰 뒤 돌무더기 무너지고 전봇대·가로수 쓰러져.. 지하상가·도로 곳곳 침수
전남광주 호우 피해 신고 125건.. 부산 전역도 호우주의보, 추가 피해 우려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한 달 넘게 이어진 폭염과 가뭄 끝에 애타게 기다렸던 비가 이번에는 ‘물폭탄’이 돼 남부지방을 덮치면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폭우가 17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추가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경남과 부산, 전남광주, 제주 등 남부지역에 강한 비가 쏟아지면서 도로와 상가가 물에 잠기고 나무와 전봇대가 쓰러지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산비탈에서는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렸고 제주 한라산에는 하루 사이 270㎜가 넘는 비가 퍼부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저수율 하락과 농작물 생육 부진을 걱정하며 비를 기다리던 지역들이다. 실제 이번 비는 농업용 저수지를 채우고 가뭄을 완화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메마른 땅에 짧은 시간 많은 비가 집중되면서 ‘해갈의 단비’와 ‘재난의 폭우’가 동시에 나타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기사청 및 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16일 오후 4시 현재까지 다행히 경남과 제주 등에서 이번 호우로 인한 인명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남해안과 지리산을 중심으로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상돼 긴장을 늦추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뭄 앓던 경남에 100㎜ 넘는 비.. 이번엔 낙석·침수

경남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지역에 따라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오후 3시 기준 누적 강수량은 하동 금남이 114.5㎜로 가장 많았고 산청 지리산 99.5㎜, 하동 92.5㎜, 진주 82.7㎜, 합천 대병 71.5㎜, 밀양 65.5㎜, 창원 58.4㎜ 등을 기록했다.

 

남해·사천·고성·거제·통영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졌고 나머지 경남 시·군에는 호우주의보가 발효됐다. 오후 1시 32분께 사천시 동서동 일대에는 시간당 50㎜ 이상의 장대비가 쏟아지면서 기상청이 침수 위험을 알리는 긴급재난문자까지 발송했다.

 

가뭄 때문에 비를 기다렸던 지역에 너무 많은 비가 짧은 시간 쏟아지면서 피해도 시작됐다. 경남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께까지 호우와 강풍 관련 신고는 13건 접수됐다. 오전 8시 44분께 하동군 악양면의 한 사찰 뒤편에서는 많은 비를 견디지 못한 돌무더기가 무너져 내렸다.

 

오전 9시 5분께 의령군 화정면에서는 전봇대가 쓰러져 소방당국이 긴급 안전조치를 했다. 낮 12시 22분께에는 김해시 삼방동 한 마트 지하에 물이 들어찼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당국이 배수 작업에 나섰다.

 

산청과 창녕 등에서는 비바람에 가로수가 쓰러져 도로를 막는 사고가 이어지는 등 도로 장애 신고만 10건에 달했다. 다행히 오후 4시까지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쓰러지고, 무너지고, 잠기는’ 피해가 동시에 벌어진 셈이다.

 

가뭄에는 반갑지만.. 산사태 경보는 ‘주의’로

이번 비가 가장 많이 내리고 있는 경남은 그동안 가뭄 피해가 특히 컸던 지역이다. 저수지의 물이 줄고 농작물 생육 부진이 이어지면서 농가에서는 농업용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때문에 이번 비로 저수지와 농경지의 가뭄은 상당 부분 숨통이 트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비의 양과 속도가 문제다.  산림청은 이날 경남지역 산사태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높였다. 최근까지 이어진 폭염과 가뭄으로 지표가 메말라 있던 상황에서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면 물이 토양 깊숙이 천천히 스며들기보다 지표면을 따라 빠르게 흘러 계곡과 하천으로 몰릴 수 있다. 특히 급경사지와 산비탈에서는 집중호우로 토양에 물이 급격히 차면서 낙석과 산사태 위험이 커진다.

 

기상청은 17일까지 경남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을 중심으로 많은 곳에 150~250㎜ 이상의 비가 더 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남도와 각 시·군도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근무에 들어가 급경사지와 산간계곡 등 취약지역 예찰을 강화하고 야영객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지사도 이번 집중호우를 앞두고 산사태 취약지역과 급경사지, 하천변, 지하차도, 저지대 등에 인력과 장비를 미리 배치하도록 특별지시했다.

 

경남도는 “연휴 기간 야간과 새벽에도 대응 공백이 없도록 인명피해 우려지역을 중심으로 철저히 대비하겠다”며 “하천변과 계곡, 지하차도 등 위험지역의 출입을 자제하고 대피 안내가 있을 경우 신속하게 이동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라산에는 271.5㎜.. 516도로 나무 쓰러져 한때 통행 막혀

제주에도 강풍을 동반한 많은 비가 쏟아졌다.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15일부터 16일 오후 2시까지 한라산 진달래밭에는 무려 271.5㎜의 비가 내렸다.

 

남벽에도 265.5㎜가 쏟아졌고 윗세오름 178.5㎜, 성판악 148.5㎜, 영실 141.5㎜를 기록했다. 산지가 아닌 지역도 성산수산 135.5㎜, 가시리 102.5㎜, 산천단 96.5㎜, 한남 93㎜ 등 곳에 따라 100㎜ 안팎의 많은 비가 내렸다.

 

강한 비와 바람은 곧바로 사고로 이어졌다. 이날 정오께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516도로 숲터널에 나무가 쓰러지면서 차량 통행이 완전히 막혔다.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나무를 절단한 뒤 도로 밖으로 옮겼고, 작업이 끝나기까지 약 40분간 차량 운행에 차질이 빚어졌다.

 

앞서 오전 10시 50분께 서귀포시 남원읍에서도 나무가 도로 쪽으로 쓰러져 소방당국이 안전조치에 나섰다. 오전 7시 5분께 서귀포시 법환동에서는 도로에 물이 차오르면서 소방대원들이 긴급 배수 작업을 벌였다.

 

오후 2시 기준 제주 소방당국에 접수된 기상 관련 신고는 모두 3건이었다. 제주지방기상청은 한라산둘레길과 오름, 올레길 등의 출입을 자제하고 저지대 침수와 하천 범람·급류, 시설물 피해에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해남 201㎜·목포 165㎜.. 전남광주는 피해신고 125건

전남광주는 제주와 경남보다 먼저 밤사이 폭우의 직격탄을 맞았다. 광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까지 해남에는 201.3㎜의 비가 내렸다. 영암 185.9㎜, 목포 165㎜, 진도 133㎜, 무안 110㎜ 등 서남해안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집중됐다.

 

특히 목포에는 한 시간 동안 66.4㎜가 쏟아지며 8월 시간당 강수량 기록을 새로 썼다. 해남도 시간당 64㎜, 진도 60.8㎜의 강한 비가 내렸다.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리자 침수 신고가 쏟아졌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오전 10시 30분까지 접수된 호우 피해 신고는 모두 125건에 달했다.

 

목포에서는 오전 5시 47분께 물이 차오른 상가에서 주민 2명이 소방당국에 구조됐다. 용당동에서는 상가 지하실이 침수돼 긴급 배수가 이뤄졌다.

 

주택과 도로, 상가가 물에 잠기고 가로수가 쓰러졌다는 신고도 이어졌다. 다행히 당시까지 인명피해는 확인되지 않았다.

 

완도와 목포, 여수, 고흥 등을 오가는 일부 여객선 운항도 통제됐고 무등산과 지리산 전남지역, 내장산 백암 등 국립공원 출입도 제한됐다.

 

행정안전부는 이날 오전 7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호우특보가 확대되자 호우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한 단계 높였다. 산림청 역시 오전 8시 30분 전남광주와 부산, 울산, 경남 등에 대한 산사태 위기경보를 ‘주의’로 상향했다.

 

부산도 오후 들어 빗줄기 굵어져.. 전역 호우주의보

부산도 오후로 접어들면서 긴장이 높아졌다.  기상청은 이날 오후 1시를 기해 부산 서부·중부·동부 전역에 호우주의보를 발효했다. 호우주의보는 3시간 강우량이 60㎜ 이상 또는 12시간 강우량이 110㎜ 이상 예상될 때 내려진다.

 

오전부터 부산과 경남에는 곳에 따라 시간당 20㎜ 안팎의 강한 비가 이어졌다. 오전 5시 30분까지 부산 사상지역에는 22㎜의 비가 내렸고 이후 남쪽에서 강한 비구름이 계속 유입되면서 오후 들어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부산지방기상청은 부산과 경남 중부 남해안에 200㎜ 이상 내리는 곳이 있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강한 바람과 함께 저지대 침수와 하천 범람 등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16일 오후 4시 현재 부산은 본격적인 호우 피해 집계가 진행 중인 단계다. 따라서 이후 접수되는 침수·시설물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왜 ‘가뭄 끝 단비’가 갑자기 ‘물폭탄’ 됐나

이번 비는 당초 예상대로 남쪽에서 막대한 양의 수증기가 공급되면서 강해졌다.

 

우리나라 남쪽의 따뜻한 바다에서 많은 수증기를 머금은 남풍이 유입됐고, 이 공기가 남해안과 지리산, 제주 한라산 같은 높은 지형과 부딪치면서 강한 비구름이 발달했다. 특히 지형을 타고 공기가 강제로 상승하는 지역에서는 짧은 시간 비구름이 폭발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문제는 ‘총강수량’보다 ‘비가 내리는 속도’다. 가뭄을 해소하는 데 가장 좋은 비는 적당한 강도의 비가 오랜 시간 넓은 지역에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당 50~60㎜가 넘는 폭우가 한두 시간 사이에 집중되면 상황이 달려졌다. 메마른 땅은 많은 물을 한꺼번에 흡수하지 못하고 상당량을 지표면으로 흘려보냄에 따라, 빗물이 배수시설과 하천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로와 지하공간이 침수되고 계곡물이 순식간에 불어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비로 경남의 가뭄은 어느 정도 완화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같은 지역에서 돌무더기가 무너지고 전봇대와 가로수가 쓰러지고 지하공간이 물에 잠기는 피해가 동시에 나타났다.


기상청 관계자는 호우 상황과 관련해 “지리산과 남해안 부근은 많은 비가 쏟아져 계곡물이 갑자기 불어날 수 있다”며 “계곡 야영객 안전사고와 산사태 등 수해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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