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한 달 넘게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에 메말랐던 한반도에 모처럼 단비가 내릴 전망이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가뭄 뒤 폭우는 오히려 큰 피해를 나을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15일 기상청과 관계당국에 따르면, 광복절인 15일 남부지방과 제주를 시작으로 내리기 시작한 비는 16일 전국으로 확대돼 광복절 대체공휴일인 17일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농업용 저수지와 댐, 타들어가는 논밭에는 반가운 비일 수 있지만, 가뭄 이후 폭우는 오히려 각종 농작물 피해 등을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에는 사흘간 250㎜가 넘는 물폭탄이 예보됐다. 특히 16일 새벽과 아침에는 일부 지역에서 시간당 30~50㎜, 강한 곳은 70㎜ 이상의 극한호우가 쏟아질 가능성도 있다.
‘물이 없어 걱정’이던 지역에서 불과 하루 만에 ‘물이 너무 많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셈이다.
기상청은 15일 저기압의 영향으로 17일까지 전남과 경상권, 제주도를 중심으로 전국에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하면서 남풍의 유입이 강한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을 중심으로 매우 강하고 많은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예보했다.
40도 폭염 지나가니 이번엔 ‘단비’
이번 비가 유독 반가운 것은 올여름 한반도가 그만큼 말라 있기 때문이다. 7월 이후 40도에 육박하는 극심한 폭염이 장기간 이어진 데다 강수량까지 평년을 밑돌면서 농촌을 중심으로 가뭄 피해가 빠르게 확산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일 집계한 전국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47.8%였다. 평년의 약 70% 수준이다. 당시 전국 56개 지역에서 농업 가뭄이 발생했고, 경남 밀양·거제·함안 등 3곳은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이 40% 아래로 내려가면서 가장 높은 단계인 ‘심각’으로 분류됐다. 최근 6개월 전국 누적 강수량도 평년의 82% 수준에 그쳐 58개 시·군에서 기상가뭄이 나타났다.
폭염이 가뭄 더 악화.. 쩍쩍 벌어진 논밭
비가 적게 내리는 상황에서 낮 기온이 35~40도까지 올라가면 논과 밭, 저수지와 하천의 수분 증발 속도가 빨라진다. 식물 역시 높은 기온에서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비가 적어서 시작된 가뭄을 폭염이 다시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이어진 것이다.
실제 한국농어촌공사 자료를 보면 이달 6일 전국 농업용 저수지 평균 저수율은 49.6%로 평년 66.6%보다 17%포인트 낮았다. 특히 경남은 36.9%에 그쳐 평년 71.0%의 절반 수준이었다. 제주 38.8%, 전북 41.1%, 전남 44.6%, 경북 47.5% 등 남부지방의 저수율이 특히 낮았다.
호남평야 젖게 할 섬진강댐도 17%대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전북 상황도 좋지 않다. 전주기상지청에 따르면 15일 늦은 오후부터 전북 곳곳에 비가 시작돼 17일까지 30~80㎜가량 내릴 것으로 예상됐다. 호남평야 농업용수 공급에 중요한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15일 현재 17.2%까지 떨어졌다. 가뭄 단계도 ‘심각’ 수준에 들어갔다.
벼가 한창 자라는 시기에 농업용수가 부족해지면 논에 충분한 물을 공급하기 어렵다. 밭작물 역시 토양 수분이 줄면서 생육이 늦어지고, 이미 폭염에 지친 채소와 과수는 수분 부족까지 겹쳐 상품성과 수확량이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올여름에는 폭염으로 상추·시금치 같은 엽채류 생산이 타격을 받은 데다 과수에서는 햇볕데임, 축산농가에서는 가축 폐사까지 이어졌다. 여기에 가뭄까지 장기화하면 농축산물 생산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이번 비는 단순히 기온을 낮춰주는 비가 아니라 농업용수를 채우고 농산물 생산 기반을 회복시키는 비라는 의미가 크다.
다만 한두 차례 비만으로 오랜 가뭄이 완전히 끝났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많은 비가 한꺼번에 내리면 토양에 스며들지 못하고 하천으로 흘러가 실제 저수지와 댐의 저수량 회복 효과가 예상보다 작을 수도 있다.
운문댐 24%·김천부항댐 23%.. 대구·경북도 물이 없다
대구지방기상청은 15일부터 17일까지 대구·경북에 50~100㎜, 울릉도·독도에는 30~8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대구와 경북 남부에서는 120㎜ 이상 내리는 곳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16일 오전부터 밤까지 일부 지역에는 시간당 20~30㎜의 강한 비가 집중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구와 경북의 가뭄 상황도 심상치 않다. 국가가뭄정보포털에 따르면 15일 기준 대구에서는 군위군을 제외한 8개 구·군이 가뭄 ‘주의’ 또는 ‘경계’ 단계에 놓였다. 경북에서도 경주와 구미 등 10개 시·군·구가 주의, 영천·경산·청도 등은 경계 수준이었다.
댐 수위도 상당히 내려갔다. 김천부항댐 저수율은 23.4%, 운문댐 24.2%, 군위댐 26.7%에 그쳤다. 영천댐은 32.4%, 안동댐 39.6%, 임하댐도 41.9% 수준이었다. 경북지역 농촌용수 저수율은 44.1%로 평년 65.4%보다 20%포인트 이상 낮았다.
운문댐은 대구지역 생활용수 공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업용 저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뭄이 장기화할 경우 생활·공업용수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대구지방기상청 관계자는 당시 “15일부터 비나 소나기가 내리면서 기온이 내려가겠지만 비나 소나기가 그친 뒤에는 습도가 높은 상태에서 다시 기온이 올라 무덥겠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남해안.. 최고 250㎜ 이상 물폭탄 우려도
가뭄 지역에는 단비지만 남해안과 지리산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기상청은 15~17일 경남 서부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에 100~200㎜, 많은 곳은 250㎜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광주·전남과 부산·울산·경남 중부 남해안, 경남 내륙에는 50~150㎜가 예상됐다. 전남 동부 남해안과 부산·경남 중부 남해안에서는 200㎜ 이상 쏟아지는 곳도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대구·경북과 제주에는 50~100㎜, 제주 산지에는 200㎜ 이상이 예상됐다. 전북과 울릉도·독도는 30~80㎜다.
반면 수증기를 품은 남풍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수도권과 강원 내륙·산지, 충청권은 20~60㎜가량으로 남부지방보다 상대적으로 적을 것으로 전망됐다.
이번 폭우의 핵심은 남쪽에서 들어오는 막대한 수증기다. 제13호 태풍 ‘돌핀’은 앞서 중국 쪽으로 이동하면서 열대저압부로 약화했지만, 이와 관련된 저기압성 순환이 우리나라 남서쪽에서 접근했다. 기상청은 돌핀이 8~9일 당시 수일 내 열대저압부로 약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기에 우리나라 동쪽의 고기압이 버티고 서면서 두 기압계 사이로 남쪽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로 강하게 유입되는 통로가 만들어졌다.
시간당 70㎜.. ‘단비’가 ‘재난비’ 될 수도
특히 우려되는 시간대는 사람들이 잠들어 있거나 활동을 시작하기 전인 16일 새벽과 아침이다. 기상청은 전남 동부 남해안에는 16일 이른 새벽부터 아침 사이, 경남 서부 남해안과 영남권 지리산 부근에는 16일 아침에서 오전 사이 시간당 30~50㎜의 매우 강한 비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시간당 70㎜ 이상의 이른바 ‘극한호우’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시간당 50㎜만 넘어도 도심 배수시설이 감당하지 못하는 지역이 생길 수 있다. 70㎜가 넘으면 단시간에 도로와 지하차도, 저지대가 물에 잠길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기상청도 이번 비와 관련해 계곡과 하천의 물이 갑자기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하천변 접근과 야영을 자제하고, 농경지 침수와 농수로 범람, 산사태, 저지대 침수 등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건조했던 토양 표면은 굳어 물이 잘 스며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폭우의 경우, 지표를 따라 한꺼번에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하천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고 농경지와 도로가 침수될 수 있다"며 가뭄 뒤 폭우 피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