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대형 화재가 발생한 건물 내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 현장, 유독가스가 퍼진 공장,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하공간.
재난이 발생하면 구조대원들은 가장 먼저 현장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화재 현장은 항시 위험이 상존한다.
이 때문에 재난안전 분야에서 오래전부터 주목받아온 기술이 있다. 바로 ‘재난 대응 로봇’이다.
재난현장의 로봇은 영화 속에서처럼 사람을 완전히 대신하는 만능 구조대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현장을 살피고, 생존자를 찾고, 위험물질을 탐지하고, 구조대원에게 현장 정보를 전달하는 ‘선발대’ 역할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는 재난 대응 로봇의 성능을 이동성, 장애물 극복, 센서, 통신, 내구성, 자율성, 조작 능력 등으로 세분화해 시험하고 있다. 지상 로봇뿐 아니라 드론과 수중 로봇까지 재난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표준 시험법을 개발하고 있다.
◇붕괴 건물 속으로 먼저 들어가는 ‘로봇 구조대원’
재난로봇이 가장 필요한 곳 가운데 하나가 붕괴 건물이다. 지진이나 폭발, 화재로 건물 붕괴가 발생하면 잔해 아래에 사람이 매몰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구조대원이 무작정 잔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추가 붕괴가 발생할 수 있고, 가스 누출이나 화재, 유독물질이 존재할 수도 있다.
이때 소형 지상 로봇이 먼저 투입된다. 카메라와 열화상 센서, 마이크 등을 장착한 로봇은 좁은 틈을 통과하면서 내부를 촬영한다. 구조대원은 로봇이 보내오는 영상을 통해 사람이 들어가기 전에 내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단순히 카메라로 보는 수준에서 벗어나 생존자의 소리나 움직임, 체온 등을 감지하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가 개발하고 있는 재난 대응 로봇 시험에는 실제 재난현장을 모사해 계단·경사면·자갈·모래·장애물 등을 통과하는 능력과 수색 능력, 통신거리 등을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대형 산업시설이나 화학공장 사고에서도 로봇의 역할은 커질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전에 로봇이 현장의 온도와 가스 농도 등을 측정하고 위험지역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NIST 역시 대형 구조물 화재의 상황 파악, 산업·교통사고 현장의 평가, 화학·생물·방사성 물질이 관련된 위험지역의 대응 등을 재난 로봇의 주요 활용 분야로 제시하고 있다.
◇하늘에서는 드론, 물속에서는 수중로봇
재난현장에서 로봇은 땅 위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드론은 이미 산불과 홍수, 산사태, 실종자 수색 등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높은 곳에서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드론이 화재 지역의 범위를 파악하고 연기와 열 분포를 확인해 소방지휘본부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을 항공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물속에서는 수중로봇이 역할을 맡는다. 침수된 건물이나 선박 사고, 댐과 수중시설 사고 등에서는 사람이 직접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
◇재난로봇의 미래
재난로봇 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로보틱스 챌린지’다.
2013년 열린 대회에서는 로봇이 차량을 운전하고, 계단을 오르고, 장애물을 통과하고, 벽에 구멍을 내는 등 실제 재난현장에서 필요할 수 있는 작업에 도전했다. 목표는 사람이 위험지역에 들어가지 않고도 로봇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후 발전한 기술 가운데 주목할 만한 분야가 지하공간 수색이다. DARPA의 ‘Subterranean Challenge’에서는 로봇이 터널과 동굴, 지하공간을 자율적으로 탐색하면서 지도를 만들고 사람이나 물체, 가스 등을 찾아내는 기술이 개발됐다. 지진으로 무너진 지하공간이나 광산 사고처럼 사람이 들어가기 위험한 곳을 로봇이 먼저 탐색하는 것이 목표였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율적으로 생존자를 찾아내는 기술도 시험되고 있다. DARPA의 2026년 ‘Triage Challenge’에서는 자율 지상로봇과 드론 등을 활용해 위험지역에서 생존자를 탐색하고, 생존자의 상태를 파악하는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로봇이 소방관과 구조대원을 대신할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실의 재난현장은 실험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는 일정한 모양이 아니다. 연기 때문에 카메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고, 통신이 끊길 수도 있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로봇은 멈춘다. 좁은 공간에 갇히거나 장애물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특히 재난현장에서는 통신 문제가 치명적이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지하로 들어가면 전파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DARPA가 재난로봇 기술에서 통신과 잔해 문제를 핵심적인 공통 과제로 지적해온 이유다.
따라서 현재의 재난로봇은 ‘사람을 대신하는 로봇’이라기보다 ‘사람보다 먼저 위험한 곳에 들어가는 로봇’에 가깝다.
◇AI가 결합하면 ‘눈과 귀’에서 ‘판단 보조자’로
여기에 AI가 결합하면 재난로봇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로봇이 촬영한 영상과 열화상 이미지, 소리, 가스 농도, 위치정보 등을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하면 구조대원이 일일이 화면을 확인하지 않아도 위험지역이나 생존자로 추정되는 대상을 표시할 수 있다.
여러 대의 로봇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각각 수집한 정보를 하나의 지도로 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드론이 건물 전체를 촬영해 외부 지도를 만들고, 지상 로봇이 건물 내부를 탐색하며, 소형 로봇이 좁은 틈으로 들어가 매몰자를 찾는 식이다. 각각의 로봇이 수집한 정보가 통합되면 구조대원은 훨씬 정확한 현장 지도를 확보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재난현장은 ‘사람 대 로봇’의 경쟁이 아니라 ‘사람과 로봇의 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재난로봇의 최종 목적은 ‘구조대원의 생존’
재난로봇 기술이 발전하는 이유는 로봇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재난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구조를 기다리는 피해자뿐 아니라 구조하러 들어가는 소방관과 구조대원의 생명도 포함된다.
로봇이 먼저 들어가 현장의 위험을 확인하고, 생존자의 위치를 찾아내고, 유독가스와 온도를 측정하고, 안전한 진입경로를 찾아준다면 구조대원은 훨씬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NIST가 재난 대응 로봇의 목표를 ‘구조대원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능력을 증강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재난현장의 로봇은 아직 인간 구조대원을 대신할 정도로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의 로봇이 단순히 사람이 조종하는 기계였다면, 이제는 주변을 감지하고 지형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일부 상황에서는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