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화재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나 건물에서 불이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계단보다 훨씬 빨리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평소라면 당연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화재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방당국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위험은 정전과 고립이다.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의 전원이 차단되거나 전기설비가 손상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가 운행 중 갑자기 멈추면 승객은 층과 층 사이에 갇히게 된다. 좁고 밀폐된 공간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연기가 유입된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엘리베이터가 화재가 발생한 층에 멈출 가능성이다. 화재가 난 층의 복도에는 이미 뜨거운 연기와 유독가스가 퍼져 있을 수 있다.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승객이 순식간에 위험한 공간에 노출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승강로를 통해 연기가 위층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건물 내부의 수직 공간은 연기가 이동하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재가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해 대피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다고 해서 “화재가 나면 무조건 계단으로 뛰어가라”는 뜻은 아니다. 여기에도 중요한 조건이 있다. 계단이 안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집과 다른 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복도와 계단에 짙은 연기가 가득하다면, 무리하게 계단으로 뛰어드는 것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화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불길만이 아니다. 연기 속에는 일산화탄소를 비롯한 유독성 가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고온의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호흡기에 심각한 손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계단실은 위아래로 연결돼 있어 연기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고층 건물에서 무작정 계단을 내려가다가 연기 속에 갇히는 상황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엘리베이터 앞에 이미 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은 간단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말고 안전한 피난계단을 확인한다.
계단이 여러 개 있는 건물이라면 연기가 적은 쪽의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대피할 때는 방화문을 함부로 열어놓지 말고 닫아야 한다. 방화문은 화재와 연기가 다른 공간으로 퍼지는 것을 늦추는 중요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화재가 발생한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이미 도착해 있다고 해서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타는 것이다.
하지만 화재 상황에서는 몇 초 전과 몇 초 후의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기 공급이 끊기거나 화재감지 설비가 작동하면서 엘리베이터 운행 상태가 바뀔 수도 있다. 또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엘리베이터로 몰리면 대피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엘리베이터는 화재 때 무조건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현대 건축물의 엘리베이터에는 화재 발생 시 일반 승객용 운행을 제한하거나 지정된 층으로 이동시키는 등 화재 대응을 위한 기능이 설치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소방시설과 건물 시스템이 화재 상황에 대응하도록 설계돼 있다는 의미이지, 일반인이 화재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대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의 전기·통신·제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고층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에 의존하지 않고 평소부터 비상계단의 위치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화재 때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원칙의 핵심은 ‘엘리베이터라는 시설 자체가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다. 화재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기와 연기, 화재층 정지, 고립 등의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억해야 할 원칙은 간단하다.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 대신 안전한 계단으로 대피한다. 다만 계단에 짙은 연기가 가득하다면 무조건 진입하지 않는다. 안전한 다른 대피로가 있는지 확인하고, 피난이 어렵다면 무리하게 연기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119에 구조를 요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