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한반도서 동쪽은 물폭탄.. 서쪽은 폭염에 '푹푹'

강릉 시간당 81.4㎜ 물폭탄.. 도로 잠기고 백담사 피서객 7명 고립
태백산맥 넘어가니 35~37도 불볕더위.. 입추 지났지만 폭염특보 여전
기상청이 예고했던 ‘지역별 강수 편차’ 현실로.. 호우·폭염 동시 대응 비상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입추가 지났지만 한반도의 여름은 오히려 더 극단적인 모습으로 치닫고 있다. 강원도 동해안 등은 갑작스러운 폭우로 축대가 무너지는 등 피해가 입는가 하면, 수도권 등이 지속적인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다. 

 

8일 기상청과 소방청 등 관계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현재 강원과 경북 동해안에서는 시간당 80㎜가 넘는 장대비가 쏟아져 도로가 물에 잠기고 피서객들이 불어난 계곡에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태백산맥을 넘어 서울과 경기, 충청·전라 등으로 이동하면 상황은 정반대다. 전날 일부 지역 기온이 40도를 넘어섰던 기록적인 폭염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이날도 곳곳의 기온이 35~37도까지 치솟았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직선거리로 170㎞ 남짓. 좁은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한쪽에서는 물난리, 다른 쪽에서는 찜통더위와 싸우는 ‘기상 양극화’가 현실이 된 것이다.

 

강릉엔 시간당 81.4㎜.. 도로가 순식간에 물바다

이날 아침부터 강원 동해안에는 말 그대로 물폭탄이 쏟아졌다. 기상청은 오전 9시 5분 강릉평지에 내려져 있던 호우주의보를 호우경보로 격상했다. 강릉 용강동에서는 시간당 최대 81.4㎜의 비가 관측됐다.

 

오전 9시 12분을 기준으로 직전 한 시간 동안 용강동에 70.1㎜, 사천면 방동리에 45㎜의 비가 쏟아졌다.기상청은 오전 9시 14분 강릉 중앙동 인근에 시간당 50㎜ 이상의 강한 비가 내리자 침수 가능성이 높다며 긴급재난문자까지 발송했다.

 

짧은 시간 비가 집중되면서 도시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강릉 사천면과 교동, 중앙동, 지변동 일대 도로에서는 한때 차량 바퀴가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올랐다. 오전 9시 45분께 원대로에서는 주택 담벼락이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빗길 교통사고도 이어졌다. 오전 10시 10분께 강릉 성산면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대관령 7터널 부근에서 여러 차량이 추돌해 3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강릉시는 오전 9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근무를 2단계로 격상했다. 김중남 강릉시장은 중앙시장 지하와 인근 상가를 직접 찾아 배수 상황과 침수 우려지역을 점검했다.

 

동해시 역시 오전 9시 20분 호우경보가 내려지자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비상 2단계로 높이고, 침수 위험이 큰 굴다리와 하천변 등의 통제에 들어갔다.

 

휴가 왔다가 계곡에 고립.. 피서객 7명 긴급 구조

피서 절정기를 맞은 계곡에서는 아찔한 사고도 벌어졌다. 이날 오전 8시 58분께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 인근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던 피서객 7명이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에 고립됐다.

 

강원소방은 인력 30명과 장비 9대를 투입했다. 구조대원들은 계곡 양쪽에 수평 로프를 설치하고 보트를 이용해 구조에 나섰다. 오전 10시 31분 3명을 먼저 구조했고, 약 10분 뒤 나머지 4명까지 모두 안전하게 구조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짧은 시간 강한 비가 내릴 경우 계곡과 하천의 수위가 순식간에 높아질 수 있다며 위험지역 접근을 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후 1시까지 강원 산지 누적강수량은 강릉 도마 87.5㎜, 고성 미시령터널 84.5㎜, 미시령 81㎜, 강릉 연곡면 67㎜를 기록했다. 해안에서도 양양 하조대 73.5㎜, 강릉 여찬 71.5㎜, 동해 천곡 64㎜, 북강릉 62.5㎜ 등이 관측됐다.

 

기상청은 강원 동해안과 산지에 50~100㎜, 많은 곳에는 150㎜ 이상의 비가 내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북 동해안도 비슷했다. 울진·영덕·포항·경주 등에 시간당 20~30㎜의 강한 비가 내렸다. 오후 1시 기준 울진 소곡에는 78㎜가 내렸고 포항 죽장도 31.5㎜를 기록했다. 울진과 영덕, 포항 등에는 호우특보가 내려졌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고통받던 동해안 입장에서는 반가운 ‘단비’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가 너무 짧은 시간에 집중되면서 이번에는 침수와 고립이라는 또 다른 재난으로 바꾼 것이다.

 

태백산맥 하나 넘었더니 폭염.. 전북 37도, 보령 36.6도 

동해안에서 불과 수십~수백㎞ 떨어진 내륙과 서쪽 지역의 풍경은 전혀 달랐다. 강원 동해안에는 호우경보가 내려졌지만 강원 내륙에는 여전히 35도 안팎의 무더위가 이어지며 폭염특보가 유지됐다.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에도 폭염경보가 이어졌다. 8일에는 최근 며칠간 이어진 ‘40도급 극한 폭염’보다 기온이 다소 내려갔지만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35도 안팎의 무더위가 계속됐다.

 

특히 전날인 입추 7일에는 서울 노원구를 비롯해 경기 하남, 전남 광양 등 자동기상관측지점에서 기온이 40도를 넘어서는 등 극한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렸다. 기상청은 7일 오후 6시 서울 등에 내려졌던 폭염중대경보를 폭염경보로 한 단계 낮췄지만 더위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8일에도 충북 월악산 일대는 37도를 웃돌았고, 충남 보령 대천해수욕장의 낮 12시 30분 기온은 36.6도까지 올랐다. 전북도 낮 최고기온이 37도 안팎에 이르렀다.

 

서울 뚝섬한강공원 수영장과 인천 송도 달빛공원, 경기 광명동굴 등에는 폭염을 피해 나온 시민들이 몰렸다. 광명동굴 관계자는 “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광명동굴을 찾고 있다”며 주차장에도 대기가 생길 정도라고 전했다. 

 

전주한옥마을은 정반대였다. 불볕더위 탓에 야외 관광객의 발길은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영화관과 쇼핑몰, 실내 어린이시설에는 시민들이 몰렸다. 같은 날 강릉 해수욕장의 파라솔은 거센 비바람 탓에 접혀 있었지만, 서쪽 지역의 해수욕장과 계곡에서는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폭염을 피한 셈이다.

 

‘가을 문턱’ 입추 지났지만 늦더위 더 위험

 

절기상 가을의 시작인 입추는 전날인 7일이었다. 하지만 달력과 실제 계절의 간극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입추 이후까지 폭염이 이어지는 경우가 늘면서 이른바 ‘늦더위 온열질환’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폭염이 오래 지속될수록 시민들의 고통도 늘고 있다. 낮 동안 축적된 열이 밤에도 식지 않으면서 열대야가 이어지고, 수면 부족과 탈수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뿐 아니라 야외 근로자와 농업인, 배달노동자 등 장시간 외부에서 일하는 사람의 위험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소방청은 이에 전국 구급차 1,668대와 구급대원 1만4,412명을 폭염 대응에 투입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출동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구급차 출동 공백이 발생하면 펌뷸런스 1,402대를 교차 출동시키는 체계도 가동한다.

 

전국 의용소방대원 9만1,492명도 ‘폭염 안전지킴이’로 투입돼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 논·밭과 야외 작업장을 순찰하고 독거노인 안전 확인과 얼음물 지원 등에 나선다.

 

김승룡 소방청장은 올여름 대책을 마련하면서 기후위기에 따른 이상기후에 대해서는 “매 순간 최고 수준의 신속하고 철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방청은 집중호우와 폭염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재난 초기부터 가용 소방력을 최대한 투입하는 ‘최고수위 총력대응’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왜 동쪽엔 물폭탄, 서쪽엔 폭염인가

좁은 한반도에서 이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날씨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은 여름철 대기 흐름과 한반도의 지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동쪽에서 습한 공기가 유입될 경우 태백산맥에 부딪힌 공기가 강제로 상승하면서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에 비구름이 집중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반면 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내려가는 공기는 수증기를 상당 부분 잃은 뒤 하강하면서 다시 기온이 높아진다. 여기에 강한 일사와 고기압이 더해지면 수도권과 충청·호남 등 서쪽 지역의 폭염이 강화될 수 있다.

 

때문에 태백산맥은 때때로 한반도의 날씨를 전혀 다른 두 세계로 갈라놓는 경계선 역할을 하면서 이처럼 극단 기후를 몰고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엘니뇨 영향 등으로 국지적인 기습 폭염과 지역별 강수량 편차가 커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평균’으로 설명 안 되는 시대.. 폭염과 홍수 함께 대비해야

더 큰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의 여름을 단순히 ‘덥다’거나 ‘비가 많이 온다’는 평균값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더라도 어떤 지역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반면, 불과 수십㎞ 떨어진 다른 지역에는 한두 시간 만에 한 달치에 가까운 비가 퍼부을 수 있다.

 

전국 평균기온 역시 마찬가지다. 한쪽에서는 폭우로 기온이 20도대로 떨어지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40도에 육박할 수 있다. 같은 날, 어느 소방서는 침수된 도로에서 배수 작업을 하고 계곡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는 동안 다른 지역의 소방서는 온열질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한 것이다.


좁은 한반도지만 날씨만큼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기후위기가 깊어질수록 앞으로의 여름은 폭염과 호우, 가뭄과 침수가 서로 다른 지역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극과 극의 재난’에 대비해야 하는 계절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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