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이 끓는다] ⑤인류 생명을 위협하는 ‘침묵의 살인자’

태풍, 홍수보다 많은 사망자 발생
인간은 체온이 몇 도만 올라가도 사망하는 존재
지구촌의 도시화로 폭염 피해가 더 커져

폭염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정직하게 드러내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2026년 여름, 대한민국은 연일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에 시달리고 있다. 한낮 기온이 보통 38도, 지역에 따라서는 40도를 넘나들고 밤에도 30도 안팎의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하지만 폭염은 단순히 불편하고 불쾌한 날씨가 아니다. 기상학자와 재난 전문가들은 폭염을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라고 부른다.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에 보이는 파괴를 남기지 않지만, 실제로는 가장 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자연재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2003년 8월 초순 불과 약 두 주 동안 닥친 서유럽 폭염은 약 7만 명의 사망자를 냈고 올 여름 폭염으로도 이미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1995년 7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낮 기온이 41도까지 치솟은 미국 시카고에서는 단기간에 739명이 숨졌다. 시신이 너무 많아 냉동 트럭이 임시 시신 보관소로 동원될 정도였다.

 

세계기상기구(WMO)와 국내외 보건 기구 통계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태풍, 홍수, 해일 등 다른 모든 기상 재해로 인한 사망자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태풍은 경로를 예측해 대비하고 대피할 수 있지만, 폭염은 공기 전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보이지 않는 재난이다. 폭염은 지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생물체에 피해를 주며 인간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를 집중 타격한다.

 

더욱 무서운 것은 ‘초과 사망자’다. 정부 응급실 감시체계에 집계되는 공식 온열질환 사망자는 일년에 수십 명 수준이지만, 폭염 기간 심뇌혈관 질환이나 기저질환이 악화해 숨지는 초과 사망자는 해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폭염은 북극곰만의 문제도, 산호초만의 문제도 아니다. 결국 기후변화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 사회다. 인간은 과학기술과 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체온이 몇 도만 올라가도 생명을 위협받는 생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상 체온은 약 36.5도 안팎이다. 우리 몸은 땀을 흘리고 혈관을 확장해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러나 고온다습한 환경이 지속되면 체온 조절 중추가 마비된다.

 

체온이 38~39도 이상으로 오르면 탈수와 어지럼증,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더 심해지면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으로 이어진다. 가장 위험한 상태는 열사병이다.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상승하면서 의식장애와 장기 손상이 발생하는 응급상황이다. 치료가 늦어지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습도가 높을 경우 땀이 증발하지 못해 체온이 더 빠르게 상승한다.

 

지구촌의 ‘도시화’는 폭염의 살상력을 배가시키는 주범이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도시는 낮 동안 막대한 양의 열을 흡수한다. 밤이 되어도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열섬 현상(Urban Heat Island)’이 발생하면서 체감온도는 치솟고 열대야는 일상이 된다.

 

특히 녹지공간이 부족하고 밀집도가 높은 저소득층 주거지역은 도시 열섬의 가장 큰 피해지다.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기 어려운 반지하 가구, 통풍이 되지 않는 좁은 고시원,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돌릴 전기요금조차 부담스러운 쪽방촌 주민들에게 폭염은 거주공간 자체를 찜통으로 만든다. 도시의 양극화가 곧 ‘온도의 양극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난은 모두에게 대체로 평등하지만, 폭염은 특히 취약계층과 고령자에게 더 치명적인 것이다. 고령자는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갈증을 느끼는 기능도 약해진다. 실제로 폭염 사망자의 상당수가 65세 이상 노인이다.

 

폭염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더위를 피할 권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폭염 대책이 복지와 사회정책의 영역으로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은 폭염을 ‘기후 정의’ 문제로도 바라본다. 가장 적은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태풍은 지나가면 흔적이 남는다. 홍수는 물이 빠지면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폭염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위험하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폭염은 태풍과 홍수, 지진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키는 재난이다.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폭염은 더욱 자주, 더 오래,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이제 폭염을 국가 차원의 재난관리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후재난에 맞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종 복지 및 돌봄 제도와 도시 설계, 거주 정책, 노동 정책, 보건의료 체계, 에너지 정책까지 모두 폭염 시대에 대응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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