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기후위기는 곧 식량위기다.”
국제기구와 농업 전문가들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경고다. 과거 기후변화는 북극의 빙하나 아프리카의 가뭄 문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뜨거워지는 지구는 이제는 가장 현실적인 ‘먹고 사는’ 문제, 즉 우리의 밥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 산불, 홍수가 잇따르면서 주요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있다. 커피와 카카오, 올리브유 가격은 치솟고, 밀과 쌀, 옥수수 등 주요 곡물 수급에도 비상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인류가 직면할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로 ‘기후 식량위기’를 말한다. 기후변화가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떠오르는 것이다.ㄱ
◇농작물이 성장을 멈춘다
식물은 인간처럼 더위를 피해 그늘로 이동할 수 없다. 폭염이 시작되면 농작물은 생존을 위해 잎의 기공을 닫는다.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한 자연스러운 방어다.
그러나 기공이 닫히면 광합성도 감소한다. 광합성은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이다. 결국 폭염이 지속되면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생산량도 감소한다. 특히 벼와 밀, 옥수수 같은 주요 곡물은 개화기와 수정기에 고온을 만나면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다.
벼는 이삭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밀은 알곡 형성이 불량해진다. 옥수수 역시 수정률이 떨어져 생산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폭염은 농작물의 품질도 떨어뜨린다. 과일은 햇볕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표면이 타는 일소(日燒) 피해를 입고, 채소는 생육장애와 변형이 발생할 수 있다.
◇세계 곡창지대가 흔들린다
기후변화의 가장 큰 문제는 특정 국가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주요 곡창지대가 동시에 폭염과 가뭄을 겪는다.
미국 중서부는 세계 최대 옥수수 생산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폭염과 가뭄이 반복되면서 생산량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유럽 역시 기록적인 폭염으로 밀 생산량 감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쌀 생산에 영향을 주는 고온 현상이 빈번해지고 있으며, 남미에서는 가뭄과 산불이 농업 생산성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국제 곡물시장이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한 지역의 생산 감소는 곧 세계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수년간 국제 밀 가격과 옥수수 가격은 기후와 전쟁, 공급망 불안이 겹치며 큰 폭으로 출렁였다.
◇커피 한 잔도 영향을 받는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매일 소비하는 기호식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다.
커피나무는 특정 온도와 강수량 조건에서 가장 잘 자란다. 그러나 평균기온 상승으로 적정 재배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등 주요 커피 생산국에서는 폭염과 가뭄, 병해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도 마찬가지다. 세계 카카오 생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지역은 최근 극심한 폭염과 이상기후를 겪고 있다. 생산량 감소는 곧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적으로 올리브유 가격이 급등했다. 그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 세계 최대 올리브 생산지인 스페인과 지중해 지역이 장기간 폭염과 가뭄을 겪으면서 생산량이 크게 준 것이다.
커피와 초콜릿과 올리브유 가격이 오르는 현상은 단순한 시장 변화가 아니라 기후위기가 소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축산업도 위기...우유와 계란이 줄어든다
식량위기는 곡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은 가축에게도 큰 스트레스를 준다. 소와 돼지는 사람처럼 체온을 효과적으로 조절하기 어렵다. 기온이 높아지면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고 성장 속도도 떨어진다.
젖소는 우유 생산량이 감소하고 번식률도 낮아질 수 있다. 닭 역시 산란율이 감소하며 심한 경우 집단 폐사가 발생한다. 축산업 피해는 곧 육류와 우유, 계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위기가 식탁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우리나라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한국은 식량 자급률이 높지 않은 국가다. 특히 밀과 옥수수, 대두 등 주요 곡물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따라서 세계 식량시장의 불안은 곧 국내 물가와 식량안보 문제로 연결된다.
국내 농업 역시 폭염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과 재배지가 북상하고, 일부 과수는 고온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여름철 고온이 길어지면서 채소 가격이 급등하는 현상도 반복되고 있다. 기후변화가 농업 생산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식량안보는 국가안보다
과거에는 군사력과 에너지가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로 여겨졌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에는 식량도 국가안보의 중요한 축이 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기후변화에 강한 품종 개발과 스마트농업 확대, 물 관리 기술 향상에 투자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기후 예측과 정밀농업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기후 적응형 농업 체계를 구축하고 농업용수 확보와 품종 개량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의 끝은 ‘먹고 사는’ 문제
과학자들은 앞으로 폭염과 가뭄, 홍수 같은 극한기후가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곧 식량 생산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는 북극의 빙하를 녹이고 바다를 뜨겁게 만든다. 그 영향이 마지막으로 드러나는 곳은 우리의 식탁이다. 인류가 먹는 쌀과 밀, 옥수수 같은 주식부터 커피와 초콜릿, 과일과 채소, 육류와 우유에 이르기까지 모든 식품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기후위기는 단지 날씨의 변화가 아니다. 인류가 무엇을 먹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식량을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생존의 문제다. 그 종점은 결국 우리의 밥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