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한반도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넘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39도 안팎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기록적인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강과 호수에는 녹조가 번지고, 농촌에서는 농업용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축사에서는 가축 폐사가 이어지고, 건설현장과 전통시장에서는 작업과 영업이 위축되는 등 피해가 산업과 일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6일 기상청 및 관련 당국에 따르면, 이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수도권과 충청, 호남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기온 39도 또는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의 극단적인 더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기상청은 올해 폭염특보 가운데 가장 높은 단계인 ‘폭염중대경보’를 신설했으며,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도 처음으로 이를 발효했다. 폭염중대경보는 최고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이어진 상황에서 최고기온 39도 또는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의 극심한 더위가 예상될 때 내려진다.
이번 폭염은 단순히 ‘기온이 높은 여름’의 범위를 이미 벗어나고 있다. 고온이 장기간 지속되는 동안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토양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하고, 하천과 저수지의 수위가 낮아지는 복합재난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 부족이 농업 생산을 위협하고, 뜨거워진 호수에서는 조류가 증식하며, 냉방 수요 증가는 전력망에 부담을 주는 ‘재난의 연쇄 부작용’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수도권 식수원 소양호까지 녹색으로.. 폭염이 키운 녹조
강원 인제군 소양호 상류에서는 최근 녹조가 발생해 관계기관이 확산 방지에 나섰다. 원주지방환경청과 한국수자원공사 등은 인제대교 일대에서 녹조 제거선을 조기에 가동하고, 녹조가 하류로 확산하지 않도록 차단·수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소영 원주지방환경청장은 5일 현장을 찾아 “녹조 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제거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며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작업 여건도 매우 어려운 만큼 현장 인력의 건강과 안전관리에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녹조는 남조류를 비롯한 식물성 플랑크톤이 물속의 질소와 인 같은 영양물질을 먹고 급격히 번식하면서 물빛이 녹색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수온이 높고 햇빛이 강하며, 물의 흐름이 느릴수록 발생하기 쉽다. 장기간의 폭염과 가뭄으로 호수의 물이 정체되고 수온이 올라가면 조류가 번식하기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녹조가 단순히 물 색깔과 냄새를 나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남조류는 마이크로시스틴과 같은 독성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녹조가 대량 번식한 뒤 죽어 분해되는 과정에서는 물속 산소가 급격히 소비돼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거나 수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다. 취수원에 녹조가 확산하면 정수처리 과정에서 활성탄 투입과 고도처리 비용이 늘어나고, 조류에서 발생하는 냄새물질을 제거하기 위한 추가 공정도 필요해진다.
소양호는 한강 수계와 연결된 수도권의 주요 상수원이라는 점에서 긴장감이 더 크다. 소양호에서는 2023년 이후 여름철마다 대규모 녹조가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염물질 유입과 고수온, 강한 햇빛, 물이 장시간 머무르는 소양호 상류의 지형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고 있다. 남조류 증식은 악취와 상수원 오염뿐 아니라 용존산소 부족, 어류 폐사, 어족자원 감소 등 생태·경제적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소양호에서는 앞서 올해 봄에도 붕어가 집단 폐사했다. 정부 조사에서는 호수 바닥에 쌓인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산소가 부족해진 것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됐다. 녹조와 당시 폐사의 직접적 인과관계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고온과 유기물 분해, 산소 부족이 겹칠 경우 호수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광주·전남 저수율 빠르게 하락.. 농업용수부터 상수원까지 긴장
광주·전남 지역에서도 가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직 광범위한 제한급수나 대규모 농작물 피해가 현실화한 단계는 아니지만,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은 가운데 폭염이 이어지면서 농업용 저수지의 저수율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따르면 지역 농업용 저수지뿐 아니라 광주의 주요 상수원인 동복댐 등의 저수율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8∼9월 강수량이 평년보다 적고 기온은 평년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어, 폭염이 더 이어질 경우 농업용수와 생활용수 부족이 동시에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방정부는 저수율을 점검하는 한편 절수 홍보와 대체 수원 확보, 농업용수 공급 대책 마련에 나섰다.
농업용수가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논과 밭의 생육이 타격을 받는다. 벼는 이삭이 패고 낟알이 여무는 시기에 충분한 물이 공급되지 않으면 쌀알이 제대로 차지 않거나 수확량이 감소할 수 있다. 밭작물과 채소도 수분 부족과 고온이 겹치면 잎이 마르고 생육이 멈추는 ‘고사 피해’를 발생시키게 된다.
과수 피해도 우려된다. 강한 햇볕과 고온에 장시간 노출된 사과·배·포도 등은 과실 표면이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는 ‘햇볕데임’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상품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심하면 과실 내부까지 손상돼 출하 자체가 어려워져 고스란히 농가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장기간 고온이 지속되면 과수 햇볕데임과 가축 폐사 등으로 농축산물 생산량이 감소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세 살수장치와 차광도포제, 송풍팬을 지원하고, 물 부족 지역에는 살수차와 스프링클러를 활용한 긴급 급수를 추진키로 했다.
가뭄이 길어질 경우 피해는 농업용수에 그치지 않는다. 댐과 저수지의 물은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로도 사용된다. 상수원 저수율이 계속 떨어지면 지방정부는 단계별로 절수 권고, 수압 조절, 비상 급수원 가동 등의 조치를 검토해야 하는 도미노 악영향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업용수 부족도 지역 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철강, 화학, 식품 제조업 등은 세척·냉각·생산 공정에서 많은 물을 사용한다. 공급이 제한되면 기업들은 자체 저수조와 재이용수를 확대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생산 일정 조정까지 불가피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축사 안은 40도 훌쩍.. 가축 폐사와 농가 손실 확대
폭염은 축산농가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 닭과 오리, 돼지 등은 사람보다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져 고온에 취약하다. 특히 닭은 땀샘이 없어 입을 벌려 호흡하는 방식으로 열을 배출하는데, 축사 안 온도와 습도가 함께 올라가면 체온을 낮추지 못해 집단 폐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돼지도 땀샘이 발달하지 않아 체온 조절이 어렵다. 더위에 노출되면 사료 섭취량이 감소하고 성장 속도와 번식률이 떨어진다. 젖소는 산유량이 줄고, 한우도 증체량 감소와 면역력 저하를 겪을 수 있다. 폐사하지 않더라도 생산성이 떨어져,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의 경제적 손실이 누적되는 구조이다.
최근 전국 축산농가에서는 닭과 오리 등의 폐사가 잇따르고 있다. 양식장에서도 수온 상승과 산소 부족에 따른 어류 폐사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소방차와 가축방역 차량 등을 활용한 급수, 축사 차광막과 송풍팬, 영양제 공급 등을 지방정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고수온 피해는 바다와 내수면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수온이 상승하면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량이 줄어들고, 양식어류의 호흡과 면역 기능이 약화한다. 적조나 세균성 질병까지 겹칠 경우 집단 폐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어민의 직접 손실뿐 아니라 수산물 공급 감소와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고,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이다.
공사장은 멈추고 시장은 한산.. 노동·소비 현장도 ‘열 쇼크’
극심한 더위는 산업현장의 작업시간도 줄이고 있다.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되면서 건설현장에서는 한낮 작업을 중단하거나 근무시간을 새벽과 오전으로 앞당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 일부 공사현장에서는 근로자의 온열질환을 막기 위해 오후 작업을 멈췄고, 전통시장에서는 낮 시간대 방문객이 급감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행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따라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옥외 작업장에서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시간을 제공해야 한다. 최고체감온도 38도 이상의 극심한 더위가 예상되는 폭염중대경보 단계에서는 긴급 작업을 제외한 옥외 작업 중지가 강하게 권고된다. 근로자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지만, 건설업계 입장에서 보면, 결국 공사기간 연장과 인건비·장비 임차료 증가로 이어지고, 아파트 원가 부담 증가요인이기도 하다.
제조업도 폭염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공장 내부의 온도가 상승하면 근로자의 집중력과 작업 속도가 떨어지고, 산업재해 위험이 높아진다. 생산설비와 전기장치의 과열은 고장과 화재 위험을 키우며, 정밀 제조공정에서는 온도 변화가 제품 불량률을 높일 수 있다.
물류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미 택배기사들은 땀으로 뒤범벅이된 몸으로 이동하기도 벅찰 정도다. 물류센터 내부와 배송차량 적재함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면 신선식품의 품질 관리 비용이 증가한다. 냉장·냉동 설비 가동시간이 늘면서 전력 사용량과 운송비 부담도 함께 커지게 된다.
냉방 전력수요 급증.. 전기료와 전력망 부담 동시 확대
폭염이 길어질수록 냉방용 전력 사용도 급증한다. 가정과 사무실, 상점, 공장이 동시에 냉방기기를 가동하면서 전력수요가 특정 시간대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지난 4일 오후 7시 전력수요가 1,186.3MW까지 올라 여름과 겨울을 통틀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당시 전력 예비율은 36.6%로 수급은 안정적이었지만, 폭염이 장기화하면 전국 전력망의 부담과 발전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전력수요가 늘어나면 기업과 자영업자의 냉방비 부담도 커진다. 식당과 카페, 편의점 등은 냉방기와 냉장·냉동고를 동시에 가동해야 하고, 농축산업에서는 축사 환풍기와 양식장 산소공급 장치의 가동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정전이 발생할 경우 피해는 더욱 커진다. 축사의 환풍기와 냉방시설이 멈추면 짧은 시간에도 내부 온도가 급상승할 수 있고, 냉장·냉동 창고에서는 상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병원과 요양시설, 데이터센터 등 전력 의존도가 높은 시설에서는 비상발전기와 전력 이중화 시스템 점검이 필수적이다. 특히, 기후재난 장기화와 데이터센터 전략 수요 증가 등은 앞으로 피해 확산을 더욱 커지게 하는 요인이다.
농산물 생산 감소가 물가 상승으로.. ‘히트플레이션’ 우려
농작물 생육 부진과 가축 폐사가 누적되면 피해는 결국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 폭염과 가뭄으로 채소와 과일의 수확량이 줄면 산지 출하량이 감소하고, 유통과정의 냉장비용까지 올라 소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특히 여름배추와 무, 상추, 시금치 등 잎채소는 고온에 취약하다. 축산물도 가축 폐사와 증체량 감소, 사료 섭취 저하가 겹치면 닭고기와 돼지고기, 달걀 등의 수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
이처럼 폭염이 식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현상은 ‘히트플레이션’(heatflation)으로 불리는데,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 외식업체는 원재료비와 냉방비 부담을 동시에 떠안게 되고, 결국 메뉴 가격 인상이나 영업시간 단축을 고민하게 된다. 폭염이 농촌의 생산 피해를 넘어 도시 소비자의 장바구니와 자영업자의 경영난으로 옮겨붙는 셈이다.
비가 내려도 끝나지 않는 피해.. “폭염을 복합재난으로 봐야”
전문가들은 이번 폭염 피해를 단순한 기상재난이 아니라 물·식량·에너지·노동·보건이 연결된 복합재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토양과 수면의 증발량이 증가하고, 가뭄이 심해진다. 수량이 줄고 물의 흐름이 느려지면 녹조가 번식하기 쉬워진다. 농업용수가 부족해지면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고, 축산농가에서는 냉방과 급수를 위한 에너지 비용이 늘어난다. 전력수요가 급증하면 전력망과 발전시설 부담이 커지고, 이는 다시 산업 생산비와 생활비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다.
한 번 비가 내린다고 문제가 모두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리면 메마른 토양이 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해 대부분 하천으로 흘러가거나 산사태와 침수를 일으킬 수 있다. 가뭄 뒤 집중호우가 오면 농경지의 비료와 가축분뇨 등 오염물질이 하천과 호수로 한꺼번에 유입돼 오히려 녹조를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이 이야기한 대로 폭염은 사회적 재난인 만큼, 이제 폭염은 여름철 잠시 견뎌야 하는 불편이 아니라 국가의 물과 식량, 에너지와 산업 기반을 동시에 흔드는 상시적 재난으로 다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