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원자력 발전 멈춘 유럽 폭염.. ‘복합재난 도미노’로 이어진다

다뉴브강 수위 급락에 헝가리 원전 출력 10%대로.. 루마니아도 원자로 정지
라인강 화물선 적재량 평소 20% 수준.. 운임 뛰고 독일 철강·화학산업까지 타격
냉방 수요는 치솟는데 원전·수력발전은 감소.. 폭염이 에너지·물류·식량위기로 확산
자연재난이 사회재난으로 타격.. 사회 구조까지 바꿀 수 있어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유럽을 달구고 있는 기록적인 폭염이 강물까지 말리면서 원자력발전과 수력발전, 화물운송, 농업, 제조업이 차례로 흔들리고 있다. 폭염이 전력 수요를 끌어올리는 바로 그 순간, 가뭄으로 냉각수가 부족해진 원전은 출력을 낮추거나 가동을 멈춰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자연재난으로 사회재난으로 연결되는 복합재난아 갈수록 증가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5일 NBC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의 주요 혈맥인 다뉴브강과 라인강의 수위는 일부 구간에서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강을 냉각수로 사용하는 원전과 화력발전소는 가동에 제약을 받고, 수력발전량도 급감했다.

흘수(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깊은 화물선은 평소의 20% 안팎만 싣고 운항하거나 아예 멈춰 섰다. 원료와 연료 운송이 막히자 철강·화학·정유산업의 생산 차질과 물가 상승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폭염과 가뭄이라는 하나의 자연재난이 물과 에너지, 교통, 산업, 식량을 연쇄적으로 타격하는 ‘재난 도미노’가 현실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뉴브강 말라붙자 헝가리 전력의 절반이 흔들렸다

가장 심각한 곳은 헝가리다. 헝가리 유일의 원자 헝가리 전력의 절반이 흔들렸다. 가력발전소인 팍시 원전은 다뉴브강 물을 냉각수로 사용한다. 4기의 원자로를 합쳐 약 2GW의 설비용량을 갖춘 팍시 원전은 평상시 헝가리 전력 생산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는 국가 전력망의 중추다.

 

그러나 다뉴브강 수위가 기록적으로 낮아지면서 원자로를 식히는 데 필요한 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원자로 4기 가운데 대부분이 가동을 멈추거나 출력을 낮췄고, 5일 현재 발전소 전체 출력은 설비용량의 10%를 조금 웃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강 수위가 회복되지 않으면 이 같은 상황이 수주간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페테르 머저르 헝가리 총리는 “폭염이 오늘과 내일 정점에 이를 것”이라며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전력 사용을 자발적으로 줄여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837개 중대형 전력 사용 업체가 감축에 동참했고, 국영철도는 피크 시간대 화물열차 운행을 중단했다. 부다페스트 주요 건축물의 경관조명도 꺼졌다.

 

기업과 가정이 줄인 전력은 하루 600∼700MW에 달했다. 이는 일반 가정용 에어컨 약 100만 대를 동시에 끈 것과 비슷한 규모다. 헝가리는 부족한 전력을 주변 국가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유럽 전역의 냉방 수요가 치솟는 상황에서 값비싼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다뉴브강의 모래톱이 드러난 현장을 찾은 부다페스트 시민 크리스티나 네메트는 로이터통신에 “슬프고 무서운 일”이라며 “자원을 아껴야 한다는 매우 심각한 경고이자 경종”이라고 말했다. 

 

루마니아 원전도 정지.. 농업용수까지 제한해

다뉴브강 하류에 위치한 루마니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루마니아 체르나보다 원전은 2기의 원자로로 국가 전력 수요의 약 20%를 공급한다. 하지만 다뉴브강 유량이 급감하면서 원자로 1기가 가동을 멈췄고, 나머지 원자로의 운전도 위협받고 있다.

 

지난달 19일 루마니아로 유입된 다뉴브강 유량은 초당 1,700㎥까지 떨어졌다. 7월 평균 유량인 초당 4,700㎥의 36% 수준이다. 1996년 이후 3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루마니아 당국은 원전에 최소한의 냉각수를 공급하기 위해 저수지를 조절하고 일부 지역의 농업용수 사용을 제한했다. 한정된 강물을 놓고 주민 생활과 농업, 발전소, 생태계가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농민들은 물 부족과 함께 운송난이라는 이중고도 겪고 있다. 체자르 게오르게 루마니아 곡물시장 분석업체 아그리칼럼 대표는 “흑해에 가까운 항구만 운영되고 있으며, 바지선이 나머지 항구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곡물 운송이 트럭으로 몰리면 차량 부족과 운송비 상승으로 농민들에겐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르비아에서는 최대 수력발전소인 제르다프 1호의 발전량이 설비용량의 20%까지 급감했다. 다보르 말리코비치 발전소 생산책임자는 다뉴브강의 넓었던 항로가 줄어들면서 모래톱과 자갈밭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인근 코스톨라츠 석탄화력발전소 역시 냉각수 부족으로 출력을 줄였다. 가뭄은 물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수력발전뿐 아니라, 물로 설비를 식혀야 하는 원전과 화력발전까지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물이 부족하거나 너무 뜨거우면 원전도 멈춘다

원전은 핵분열에서 발생한 열로 증기를 만들고, 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한다. 터빈을 지난 증기는 다시 물로 식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강이나 바다의 물이 대량으로 필요하다.

 

폭염과 가뭄이 닥치면 두 가지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 우선 강의 유량과 수위가 낮아져 필요한 냉각수를 충분히 끌어오기 어려워진다. 남은 강물의 온도도 상승해 냉각 효율이 떨어진다.

 

냉각에 사용된 물은 처음 취수했을 때보다 높은 온도로 강에 되돌아간다. 이미 뜨거워진 강에 더 따뜻한 물을 방류하면 수온이 생태계 허용 기준을 넘어 물고기 폐사와 수중 산소 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취수량과 방류수 온도를 법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폭염 때 원전 출력을 낮추거나 원자로를 정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전 설비가 고장 나서가 아니라, 냉각 능력과 하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적·환경적 조치인 것이다.

 

지난 6월 프랑스에서는 가론강의 수온 상승으로 골페슈 원전 2호기가 가동을 멈췄다. 센강과 론강에 위치한 노장쉬르센·뷔제·생알방 원전도 정지하거나 출력을 낮췄다. EDF에 따르면 골페슈 원전은 가론강의 하루 평균 수온이 28도를 넘으면 전력망 상황에 따라 출력 감축 또는 일시 정지 조치를 해야 한다. 

 

에너지 분석업체 케이플러의 알레산드로 아르메니아 분석가는 “기후변화는 극심한 더위도 겨울철 한파나 재생에너지 발전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만큼 에너지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내년 여름에도 비슷한 현상을 예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라인강 화물선은 20%만 싣고 운항

독일,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를 연결하는 라인강에서도 재난 도미노가 이어지고 있다. 라인강은 철광석과 석탄, 원유와 석유제품, 화학제품, 곡물, 자동차 부품 등을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독일 산업지대로 운반하는 핵심 물류 통로다.

 

독일 코블렌츠 인근 카우프 구간의 ‘항행 가능 수심’은 지난달 31일 약 25㎝까지 떨어져 2018년 역대 최저치와 같은 수준을 기록했다.  수위가 낮아지자 일부 화물선은 평상시 적재량의 20%에도 못 미치는 화물만 싣고 운항하고 있다. 한 척에 실을 화물을 여러 척으로 나눠야 해 운송비는 급등했다.

마치 전쟁으로 호르무즈해협을 원유선이 통과하지 못하면서 유가가 급등했던 것과 유사하게, 로테르담에서 독일 카를스루에까지 석유제품을 운반하는 유조선형 바지선 운임은 6월 말 t당 45유로에서 7월 말 150∼155유로로 세 배 이상 올랐다.

 

티센크루프스틸은 뒤스부르크 제철소로 들어오는 원료 공급이 제한되면서 고로 생산량을 일부 줄였다. 자체 바지선 운항도 중단하고 수심이 얕아도 운항할 수 있는 선박을 별도로 빌리고 있다.

 

마르크 샤텐베르크 도이체방크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초기에는 운송비 상승과 물류 경로 조정으로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며 공급망 차질이 회복 조짐을 보이는 독일 산업에 새로운 역풍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라인강 운항이 사실상 중단될 경우 도로 운송으로 대체해야 하지만, 정유제품만 옮기는 데도 하루 약 3,000대의 유조차가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독일경제연구소는 추산했다. 물류 차질이 장기화하면 정유·철강·화학제품의 생산비와 휘발유 가격까지 밀어 올릴 수 있다.

 

전력이 가장 필요한 순간 발전량은 줄어드는 역설

폭염은 전력 체계의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공격한다. 가정과 상점, 공장에서 에어컨 사용이 급증해 전력 수요는 치솟지만, 원전과 화력발전은 냉각수 부족으로 출력을 낮춘다. 수력발전은 강과 저수지의 물이 줄면서 발전량이 감소한다.

 

해가 지면 태양광발전량도 급격히 줄어든다. 전력 수요는 여전히 높은데 원전·수력·태양광 공급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가스발전 등 값비싼 발전원을 추가로 가동해야 한다. 결국 도매 전력가격 상승과 수입 전력 의존, 기업의 생산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농업도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가뭄으로 관개용수가 부족해지고 수확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강을 통한 곡물 운송마저 막히면 식품 가격이 상승한다. 선박 화물을 트럭과 철도로 돌리면 물류비뿐 아니라 탄소배출과 도로 혼잡도 늘어난다.

 

유럽 최대 수력발전 기업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베르분트는 가뭄에 따른 발전량 감소로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정상적인 수문 조건과 비교해 약 3억7,000만 유로 줄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지역 전력회사(A2A)의 레나토 마존치니 최고경영자는 저수지 상황을 두고 “이제는 사실상 비가 오기를 기원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유럽환경청은 가뭄이 유럽에 연평균 약 94억 유로의 손실을 입히고 있으며, 최악의 온난화 시나리오에서는 2100년 연간 피해액이 450억 유로로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뭄은 농업에만 영향을 주는 재난이 아니라 식수와 발전소, 하천 물류, 제조업, 생태계가 공유하는 물을 동시에 고갈시키는 위험이라는 설명이다.

 

‘재난별 대응’ 넘어 물·에너지·물류 함께 관리해야

유럽의 이번 사태는 개별 발전소나 특정 산업의 위기로만 접근해서는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댐과 저수지의 물을 발전용·농업용·생활용으로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원전과 화력발전소가 어느 정도의 고온과 저수위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할 것인지, 하천 운송을 철도·도로와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를 하나의 체계에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폭염, 가뭄, 산불, 저수위, 전력난을 각각 떨어진 재난으로 보는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면서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기후위기 시대의 재난이 한 지역이나 한 분야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폭염은 더 이상 사람을 쓰러뜨리고 산불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사회를 움직이는 물과 전력, 물류망을 동시에 멈춰 세우는 복합재난으로 진화하고 있는 만큼, 우리 관계당국도 이 사태를 예의주시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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