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1995년 7월, 미국 시카고를 강타한 폭염은 기상 재해를 넘어 폭염이 ‘사회적 참사’로 기록된 처음이자 대표적 사건이다.
1995년 7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미국 대도시 시카고는 불과 나흘 만에 도시 전체가 재난에 빠졌다. 낮 기온은 41도까지 치솟았고, 습도는 90%에 육박했다. 체감 온도는 52도를 넘었다.
단 며칠 사이에 73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시신이 너무 많아 영안실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냉동 트럭이 임시 시신 보관소로 동원됐다.
이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폭염 재난(1995 Chicago heat wave) 가운데 하나로 기록됐다.
◇시카고 폭염...독신, 저소득층, 노인이 가장 많이 희생
시카고 폭염에서 가장 특별한 점은 사망자 대다수가 특정 계층의 시민들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폭염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이 사람을 죽였다.”
시카고 폭염을 연구한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열파(Heat Wave)’에서 이 참사를 ‘사회적 부검(Social Autopsy)’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당시 사망자 대부분은 65세 이상 노인이었고 흑인과 저소득층이 밀집한 남부와 서부 지역에 집중됐다. 혼자 사는 노인, 만성질환자, 저소득층이 집중적으로 희생됐다. 범죄율이 높은 우범지대에 거주하던 노인들은 범죄 표적이 될까 두려워 문과 창문을 닫아걸었고, 냉방 장치가 없거나 전기 요금 부담 때문에 에어컨을 켜지 못했다.
혼자 거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망 위험이 2배 이상 높았고,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 사람은 위험이 6배 이상 높았다. 반면 친구나 이웃과 교류가 있는 사람들은 생존 확률이 높았다.
소득 수준이 비슷하더라도 공동체가 활발하고 이웃 간 왕래가 많았던 지역은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연구자들은 이를 ‘사회적 인프라의 힘’이라고 분석했다. 도서관, 공원, 커뮤니티센터, 종교시설 같은 공간들이 재난 시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냉방시설 유무도 생사를 갈랐다. 에어컨이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의 사망 위험은 크게 낮아졌고, 냉방시설이 있는 공공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경우에도 위험이 감소했다. 연구진은 당시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에어컨 접근성만 확보됐어도 살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행정 인프라의 부재도 지적됐다. 당시 시카고시는 폭염을 태풍이나 지진 같은 대형 재난으로 간주하지 못해 비상 대응체계 작동이 늦어졌고, 응급차와 병원 수용 능력이 초과되었다.
◇2003년 유럽 폭염, 7만 명이 숨지다
시카고 폭염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은 2003년 유럽 폭염이다. 8월 초순 약 두 주 동안 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강타한 폭염으로 약 7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프랑스 파리의 기온은 40도를 넘어섰는데, 예년 평균보다 10도 이상 웃도는 기상 이변이 었다. 유럽은 여름 기온이 높지 않아 에어컨 설치율이 낮다.
특히 8월 휴가철과 맞물리며 병원 의료진과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홀로 남겨진 고령층에 피해가 집중됐다. 프랑스에서만 불과 2주 사이에 1만 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해 병원 시신 보관실이 마비되었다.
이 사건 이후 프랑스는 폭염 경보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노인 안부 확인 시스템과 냉방쉼터 제도를 구축했다.
폭염은 13년이 지난 올 여름 다시 유럽을 덮쳤다. 현재까지 독일·영국·프랑스·스페인 등에서 1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시 사망자 대부분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한반도 폭염에 주는 교훈
우리나라도 연일 35도가 넘고 일부는 40도가 넘는 기록적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기상관측 사상 최고 기온 기록도 깨졌다.
폭염 사망자는 자연사가 아니며,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재난이라는 점을 시카고 폭염과 유럽 폭염은 말해주었다.
30년 전 시카고 폭염의 희생자 739명은 단순히 더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가난과 고립, 무관심이 초래한 희생자들이었다.
폭염은 ‘사회적 약자’를 먼저 공격한다. 같은 기온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 차이는 에어컨의 유무, 가족과 이웃의 존재, 사회안전망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시카고와 유럽의 참사가 남긴 교훈을 정리하면 이런 것들이다.
첫째, 폭염은 기상 문제가 아니라 사회복지 문제다. 홀몸노인, 장애인, 만성질환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
둘째, 냉방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권이다. 저소득층, 쪽방촌 주민, 독거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에게 냉방비 지원(에너지 바우처)을 실질적인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셋째, 이웃이 최고의 재난 대응 시스템이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지자체와 통·반장, 자원봉사자들이 홀몸노인을 직접 확인하는 ‘1:1 안부 확인 시스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넷째, 냉방쉼터를 생활권 안으로 확대해야 한다. 도서관, 주민센터, 경로당, 지하철역 등을 폭염 대피소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건설현장, 물류센터, 농업 현장 등 야외 노동자에 대한 작업중지 기준과 휴식권 보장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