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점심때 철근을 잡으면 장갑 위로도 뜨거움이 느껴집니다. 손이 데일 정도예요. 그래도 공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쓰러질 것 같아도 참고 합니다. 쉬면 그날 일당이 줄어드니까요.”
경기도 수원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의 말이다. 연일 38~40도 안팎의 폭염이 이어지는데도 건설현장, 물류센터, 택배, 도로공사, 농어업 현장에서는 수많은 노동자가 불볕 야외에서 일하며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받고 있다.
폭염으로 발생하는 온열질환은 단순한 탈진이 아니다.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상승하면 뇌 기능이 손상되는 열사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열사병은 응급치료가 늦어질 경우 사망 위험도 높다. 산업안전 전문가들은 “추락사고와 마찬가지로 폭염도 산업재해”라고 강조한다.
더위로 집중력이 떨어지면 실수와 사고가 늘어난다. 실제로 폭염 기간에는 건설현장 추락사고, 장비 충돌, 교통사고 발생률도 증가한다.
문제는 폭염이 ‘사회적 재난’ 수준으로 인식이 되고 있어도 노동현장의 기준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과연 사람은 몇 도까지 일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국가는 폭염에서 일하는 야외 근로자를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
◇해외에서는 폭염에 작업 멈춘다
해외선진국들은 폭염을 단순한 기후위기 문제가 아니라 산업안전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폭염 예방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는 별도의 폭염보호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일정 온도를 넘으면 사업주는 그늘과 냉수, 휴식시간을 제공해야 하며, 노동자가 열사병 증상을 보이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주는 더욱 적극적이다. 건설현장에서는 체감온도와 작업강도를 종합 평가해 작업을 제한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기온이 35~40도를 넘으면 콘크리트 타설이나 옥외 중장비 작업을 중단한다.
독일은 작업장 온도가 35도를 초과하면 일반적인 근무환경으로 볼 수 없다고 규정한다. 사용자는 냉방장치, 휴게공간, 근무시간 조정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하며, 개선이 어렵다면 작업중단까지 검토한다. 프랑스는 폭염 경보가 발령되면 건설업 등 야외작업장의 근무시간 조정과 휴식 의무를 강화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가 작업을 거부하거나 중단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으며, 사용자는 위험이 제거되기 전까지 노동자에게 복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급박한 위험이 있을 경우 사업주에게 작업을 중지시킬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에게도 위험 상황에서 작업을 중단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이 실제 현장에서 ‘급박한 위험’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노동자들은 “작업을 멈추면 눈치가 보인다”고 말한다. 하청 노동자나 일용직 노동자는 공사기간 지연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건설업과 농업, 택배·배달업 종사자들은 폭염 속에서도 일을 해야만 수입이 발생하는 구조다.
산업안전보건규칙에 따르면 사업주는 폭염 시 그늘과 휴식공간, 냉수 등을 제공해야 한다. 정부도 최근 “2시간 작업 후 20분 이상 휴식” 권고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 제도는 휴식과 작업중지의 권한이 모호하고, 작업중단 시 임금보전 규정이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폭염 기본권, 왜 필요한가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전문가들은 폭염 속에서 안전하게 쉴 권리, 즉 ‘폭염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폭염 기본권’은 단순히 쉬게 해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생명권과 건강권을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라는 의미다.
폭염 기본권은 △위험 온도에서 일하지 않을 권리, △충분한 휴식과 냉방공간을 보장받을 권리, △깨끗한 식수와 전해질을 공급받을 권리, △폭염으로 작업을 중단해도 임금과 소득을 보장받을 권리. △위험을 이유로 작업을 거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 등이포함돼야 한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이런 권리를 이미 제도화했다.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필요하다. 폭염을 산업재해 위험요인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급박한 위험’이라는 추상적 표현 말고, 폭염 특보나 체감온도 기준을 법률에 명시하면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체감온도 35도 이상에서는 의무 휴식, 38도 이상에서는 작업 제한, 40도 이상에서는 야외작업 중단 등 단계별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작업중지에 따른 임금보전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노동자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멈췄는데 임금이 삭감된다면 누구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학계에서는 사회보험과 재난안전기금을 활용한 소득보전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또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까지 보호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배달라이더, 택배기사, 방문서비스 노동자 등은 폭염의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법적 보호는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과거에는 더위를 참고 일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기후위기 시대의 폭염은 개인의 체력이나 의지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폭염은 이미 재난이다.
전문가들은 “폭염 속에서 안전하게 쉴 권리는 복지가 아니라 생존권”이라며 “폭염 기본권을 법으로 보장할 때가 왔다”고 강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