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1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반지하 주택.
바깥 기온은 36도.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공기만 들어온다. 방 한쪽에 오래된 벽걸이 에어컨이 달려 있지만 리모컨은 서랍 속에 그대로 들어 있다.
혼자 사는 75세 김한구 씨는 이틀째 에어컨을 켜지 못했다.
“전기요금이 무서워 에어컨을 못 켜요. 작년에 전기요금이 많이 나와서 올해는 웬만하면 안 틀려고요. 선풍기만 틀고 물을 자주 마셔요.”
같은 시간, 2km 떨어진 신축 아파트에서는 실내 온도가 25도로 유지된다. 자동 냉방 시스템이 하루 종일 가동된다.
여러 주거 형태를 비교한 결과, 주거 환경은 폭염 위험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반지하와 옥탑방은 단열이 취약해 외부 열이 쉽게 유입되고, 밤에도 실내 온도가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단열 성능이 좋은 신축 아파트는 냉방 효율이 높아 적은 전력으로도 실내 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같은 도시, 같은 폭염. 그러나 누군가는 더위를 별반 느끼지 못하고, 누군가는 더위를 견뎌내야만 한다.
한반도 최고 기온이 연일 40도를 넘는 지역이 속출하고 있다. 폭염은 이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생명을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이 돼가고 있다. 폭염은 모두에게 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는 시원한 실내에서 일상을 이어가지만, 누군가는 냉방비를 걱정하며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다. 에어컨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건강과 생존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기후 불평등’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한다.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피해는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더욱 집중되기 때문이다.
에어컨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니게 됐다. 문제는 ‘없는 사람’보다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독거노인과 저소득층 주민들은 하나같이 전기요금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기온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대표적인 폭염 취약계층은 독거노인, 만성질환자, 기초생활수급자, 반지하·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환경 거주자, 건설·배달·환경미화 등 야외 노동자, 영유아와 장애인이다.
이들에게 폭염은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이다. 특히 야외 노동자는 생계를 위해 폭염 속에서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온열질환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기후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폭염 문제를 ‘환경’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폭염 대응은 복지 정책이 아니라 생명권을 보장하는 공공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폭염 대응을 단순한 기후재난 대책이 아닌 ‘기후복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각국은 폭염을 자연재해가 아닌 공공보건 위기로 인식하며 대응 수준을 높이고 있다. 프랑스는 폭염 경보 단계에 따라 노인 안부 확인과 냉방시설 운영을 강화하고, 일부 국가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냉방비 지원과 냉방센터 운영을 확대하고 있다.
에어컨이 있어도 전기요금 부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 계층에게 폭염은 곧 생존권의 문제가 된다. 에너지 이용 능력이 생존 가능성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기후복지 차원으로 △폭염 취약계층 냉방비 지원 확대, △에너지 바우처 지급 대상 확대, △노후주택 단열 개선 사업 확대, △24시간 무더위쉼터 운영, △폭염 시 야외 노동자의 작업 중지 및 휴식권 보장, △독거노인 방문 건강관리 강화, △도시 녹지와 그늘 공간 확충 등을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