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한반도가 사흘째 거대한 용광로로 변했다. 경남 양산의 낮 최고기온이 2일 42.5도까지 치솟아 국내 기상관측 사상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1904년 근대적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122년 만에 경험한 적 없는 더위다.
2일 기상청과 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양산은 지난달 31일 41.4도, 이달 1일 41.6도에 이어 2일 42.5도를 기록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국내 최고기온 기록이 새로 쓰인 셈이다. 기상청 관측 자료에도 양산의 2일 최고기온은 42.5도, 종전 기록은 전날 측정된 41.6도로 나타났다.
이제 ‘폭염’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공식 기온이 40도를 훌쩍 넘고 햇볕을 직접 받는 도로와 운동장, 건물 옥상과 차량 내부는 50∼60도를 오르내린다. 부산 사직야구장 관중석에서는 열화상카메라로 측정한 표면 온도가 64.5도까지 올라갔다. 사람의 체온조절 능력과 일상적인 도시 기능이 동시에 한계에 내몰리는 ‘용광로 폭염’이 현실이 됐다.
122년 기상관측 역사, 사흘 연속 새로 썼다
이번 기록은 2018년 8월 1일 강원 홍천에서 관측된 종전 전국 최고기온 41.0도를 불과 사흘 사이 세 차례나 넘어선 것이다.
지난달 31일 양산의 기온이 41.4도를 기록하면서 8년간 유지됐던 홍천의 기록을 처음 갈아치웠다. 이튿날인 1일에는 41.6도까지 올라 다시 0.2도 높아졌고, 2일에는 전날보다 무려 0.9도 높은 42.5도를 찍었다.
경남 김해도 2일 40.7도까지 올랐다. 전날 기록한 40.6도를 다시 넘어선 수치다. 부산과 울산, 대구·경북 등 영남권 곳곳에서도 40도 안팎의 극한 고온이 이어졌다.
이번 폭염은 강한 햇볕과 뜨거운 남서풍, 산을 넘어오며 기온이 더 높아지는 푄 현상, 도시와 산업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공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됐다. 구름이 적은 상태에서 지표면이 빠르게 달궈지고, 산맥을 넘어 내려오는 공기가 압축되면서 기온을 추가로 끌어올린 것이다.
밤이 돼도 더위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낮 동안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흡수한 열이 밤새 방출되는 데다 습도까지 높아 체감온도를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폭염 재난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했다.
기상청은 최근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가 같은 기간 기준 역대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낮의 폭염과 밤의 열대야가 끊이지 않으면서 몸이 회복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누적 열 스트레스’가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프로야구도 멈춰 세운 폭염.. 밀집 관중석은 64.5도
기록적인 더위는 야외 스포츠 경기마저 중단시켰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일 오후 6시 경남 창원NC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KIA 타이거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를 취소했다. 창원 지역에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가운데 경기 시작 시각에도 38도 이상의 기온이 계속될 것으로 예보되자 선수단과 관중의 안전을 우선한 결정이었다.
같은 시간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예정됐던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 경기는 오후 6시에서 6시30분으로 30분 늦춰졌다. 부산은 경기 개시 이후 기온이 다소 낮아질 것으로 예상돼 전면 취소 대신 지연 개최를 선택했다.
문제는 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공기 온도보다 경기장 안에서 선수와 관중이 실제로 접하는 열기가 훨씬 강하다는 점이다.
2일 오후 2시쯤 열화상카메라로 사직야구장 관중석을 측정한 결과 일부 좌석의 표면 온도는 최고 64.5도에 달했다. 그늘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와 콘크리트 바닥이 강한 햇볕을 수 시간 동안 흡수하면서 공식 기온보다 20도 이상 높아진 것이다.
선수들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롯데 포수 손성빈은 지난달 31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 도중 미열과 두통, 구토 증상을 보여 2회에 교체됐다. 포수는 두꺼운 보호장비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쪼그려 앉은 자세로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폭염 속에서 체온이 더욱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
경기장에서는 감독관과 관계자들이 열화상카메라를 이용해 그라운드와 관중석 온도를 수시로 점검했다. KBO는 폭염특보가 내려진 경우 경기 전에는 경기운영위원이, 경기 개시 후에는 심판이 지역 기상 상황과 현장 여건을 확인해 취소 또는 중단 여부를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 야구 경기는 비나 태풍, 미세먼지 때문에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 폭염도 경기 운영을 좌우하는 핵심 재난 요인이 됐다. 경기 시간을 저녁으로 늦추는 것만으로는 40도를 넘는 폭염과 장시간 축적된 복사열을 피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정부, 폭염 비상대응 2단계.. “38도 이상이면 옥외작업 멈춰야”
정부도 대응 수위를 끌어올렸다. 행정안전부는 폭염 상황이 악화되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비상대응 단계를 2단계로 높이고 관계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취약계층 보호와 야외작업 안전조치를 강화하도록 했다.
폭염 비상 2단계는 전국 40% 이상의 지역에서 일 최고기온 35도 이상이 사흘 이상 지속되거나, 전국 10∼40% 지역에서 38도 이상의 최고기온이 사흘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가동된다. 정부는 올해 폭염중대경보를 도입하고, 극한폭염 시 무더위쉼터 확대 운영과 취약계층 예찰, 현장근로자 보호조치를 시행하도록 했다.
정부는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인 지역에서는 재난 복구와 구조·구급 등 긴급작업을 제외한 옥외작업을 중단하도록 권고했다. 밀폐된 지하 공간이나 환기가 어려운 작업장도 열이 축적될 위험이 큰 만큼 작업을 멈추거나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폭염 속 작업현장에서는 물·그늘·휴식·보냉장구·응급조치 등 기본수칙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시원한 물을 충분히 제공하고, 작업 장소 가까이에 그늘이나 냉방공간을 확보하며, 체감온도에 따라 규칙적으로 휴식해야 한다. 혼자 작업하지 않도록 하고 동료의 상태를 서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폭염 대응과 관련해 “인명피해 최소화를 목표로 가용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며 독거노인과 쪽방촌 주민, 야외근로자 등 폭염 취약계층에 대한 예찰과 보호를 강화해 달라고 관계기관에 주문했다.
집 안도 안전지대 아니다.. 38도 넘으면 자택 환자 비중 2배
폭염 때는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냉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집은 오히려 열이 축적되는 위험 공간이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질병관리청과 기상청의 2011∼2025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고기온이 38도 미만인 날에는 전체 온열질환자의 6.2%가 자택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한 곳이라도 38도 이상을 기록한 극한폭염일에는 자택 발생 비중이 12.8%로 약 두 배 높아졌다.
극한폭염일에 발생한 전체 온열질환자 6,119명 가운데 784명이 집 안에서 쓰러졌다. 에어컨이 없거나 전기요금을 걱정해 가동하지 않는 고령층, 거동이 불편해 무더위쉼터를 이용하기 어려운 주민이 특히 위험하다.
윤 장관은 “폭염이 심해질수록 집 안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자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냉방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밤낮으로 실내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하고, 냉방이 여의치 않다면 가까운 무더위쉼터의 위치와 운영시간을 미리 확인해 적극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물 자주 마시고 낮 시간대 외출 줄여야
폭염특보가 내려졌을 때는 갈증을 느끼기 전부터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술이나 카페인이 많이 든 음료는 이뇨작용을 촉진해 탈수를 악화시킬 수 있어 피하는 편이 좋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사이에는 야외활동과 농사일, 운동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검은색이나 몸에 달라붙는 옷보다 밝고 헐렁한 옷을 입고, 외출할 때는 양산이나 챙이 넓은 모자로 햇볕을 가리는 것이 도움이 된다.
집에서는 에어컨과 선풍기를 적절히 사용하되 에어컨 실외기 주변의 먼지와 가연물을 치우고 통풍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냉방기기를 문어발식 멀티탭에 연결하거나 노후 콘센트에 꽂아 장시간 사용하는 것은 전기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홀로 사는 부모나 고령의 친척에게는 하루 한두 차례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의식이 흐려지고, 두통·구토·극심한 피로감이 나타나면 즉시 시원한 장소로 옮긴 뒤 119에 신고해야 한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다.
차량 안에 어린이나 노인, 반려동물을 잠시라도 혼자 두는 것도 금물이다. 외부 기온이 35∼40도일 때 밀폐된 차량 내부는 짧은 시간에 50∼60도 이상으로 치솟을 수 있다.
박기수 한성대(사회안전학과) 교수는 "폭염은 견딜 문제가 아니라, 피해야 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사회 기능과 생명을 위협하는 상시 재난이 된 만큼, 대응 체계도 전반적으로 시민 안전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