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8월의 첫날, 한반도의 기온은 또 한 번 전례 없는 영역으로 치솟았다. 1일 오후 경남 양산의 기온이 41.6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기온을 하루 만에 다시 갈아치웠다. 양산은 전날에도 41.4도를 기록해 2018년 8월 강원 홍천에서 측정된 종전 최고기온 41.0도를 넘어섰다. 폭염이 단순히 ‘더운 여름’을 넘어 일상생활과 생명을 위협하는 재난으로 바뀌고 있다는 경고음이다.
특히 이번 폭염은 밖에서 일하는 근로자나 농업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온이 38도 이상으로 오르는 극한폭염 때에는 집 안에서 발생하는 온열질환자 비중도 평소의 약 2배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어컨을 충분히 사용하기 어려운 고령층과 저소득층,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자택마저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행정안전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은 1일 질병관리청과 기상청의 2011∼2025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최고기온이 38도 이상을 기록한 날에는 전체 온열질환자 가운데 자택에서 발생한 환자의 비중이 12.8%에 달했다고 밝혔다. 38도 미만인 날의 6.2%와 비교하면 2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프랑스 초과사망 5,764명…집에 고립된 사람부터 찾았다
극한폭염이 집 안의 취약계층을 먼저 덮친 사례는 해외에서도 잇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올여름 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을 겪었다. 전국 일평균기온이 30도에 달했고 일부 지역의 최고기온은 44.3도까지 올랐다. 72개 광역행정구역에는 가장 높은 단계인 폭염 적색경보가 내려졌다.
프랑스 공중보건청에 따르면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2일까지 폭염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발생한 전체 사망자는 예상치보다 5,764명 많았다. 평년 같은 기간보다 36.2% 증가한 수치다. 폭염이 가장 심했던 6월 25∼27일에 전체 초과사망자의 56%가 집중됐고, 75세 이상이 초과사망자의 약 3분의 2를 차지했다. 다만 ‘초과사망’은 평년보다 늘어난 모든 원인의 사망을 뜻하며, 개별 사망 원인이 모두 폭염으로 확정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망 장소도 병원이나 요양시설에 국한되지 않았다. 프랑스 당국의 잠정 집계에서는 폭염이 절정에 이른 6월 22∼28일 자택 사망자가 전주보다 91% 증가했다. 병원이나 시설보다 냉방과 건강관리를 지원하기 어려운 일반 주택에서 피해가 집중된 것이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폭염 대책의 무게중심을 ‘시설 관리’에서 ‘고립된 사람을 찾아가는 보호’로 옮겼다. 주민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냉방 대피시설을 운영하는 한편, 우체국 집배원과 이웃 등을 활용해 홀로 사는 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폭염이 심해질수록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어려운 사람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판단이다. 고령자는 체온조절 능력과 갈증을 느끼는 기능이 떨어질 수 있고, 거동이 불편하면 집 안이 더워도 냉방시설이나 쉼터로 이동하기 어렵다. 만성질환이나 복용 중인 약물이 체온조절에 영향을 주는 경우 피해 위험은 더 커질 수 있다.
일본 온열질환자 10명 중 4명 ‘집에서 발생’
일본의 상황도 비슷했다. 일본에서는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닷새 연속 40도 이상의 기온이 관측됐다. 폭염 절정기 한 주 동안 온열질환으로 구급 이송된 사람은 1만8,591명에 달했다.
발생 장소 1위는 작업장이나 도로가 아닌 자택이었다. 전체 이송자의 40.9%가 집에서 온열질환 증상을 보였다. 도쿄에서 발생한 온열질환 사망자 35명의 경위를 조사한 결과, 74%인 26명은 집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거나, 설치돼 있어도 작동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는 야간에도 에어컨을 적절히 가동하도록 거듭 당부했다. 전국 1,255개 기초자치단체에는 주민이 폭염을 피할 수 있는 냉방쉼터가 지정됐다.
이는 폭염 피해가 반드시 야외활동 중에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햇볕이 사라진 밤에도 콘크리트 건물과 도로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방출하면서 실내 온도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통풍이 잘되지 않는 소형 주택이나 옥탑방, 반지하, 노후 주택은 밤새 열이 축적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전기요금 부담이나 냉방기기 고장을 이유로 에어컨 사용을 자제하는 고령층은 수면 중 체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도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다. 한낮 외출을 피하는 것만으로는 폭염 피해를 예방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국도 38도 넘으면 자택 환자 비중 ‘두 배’
우리나라의 온열질환은 아직 실외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분석한 2011∼2025년 자료를 보면, 최고기온이 38도 미만인 날 발생한 온열질환자 2만3,169명 가운데 실외 작업장 환자가 7,416명으로 32.0%를 차지했다. 논밭이 3,472명으로 15.0%, 길가가 2,534명으로 10.9%였다.
그러나 기온이 38도 이상으로 오른 날에는 장소별 발생 양상이 달라졌다. 이 기간 발생한 온열질환자 6,119명 가운데 자택 환자는 784명으로 12.8%를 차지했다. 38도 미만인 날의 자택 환자 비중 6.2%보다 6.6%포인트 높고, 비율로는 약 2.1배다.
길가에서 발생한 환자 비중도 10.9%에서 12.4%로 높아졌다. 반면 실외 작업장 환자 비중은 32.0%에서 28.0%로, 논밭은 15.0%에서 11.4%로 낮아졌다. 작업장과 농촌 지역에서 폭염 시 작업 중단이나 시간 조정 등 예방조치가 시행되는 것과 달리, 집 안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연구원은 전국 90여 개 기상청 종관기상관측소 가운데 한 곳 이상에서 하루 최고기온 38도 이상이 관측된 날을 ‘극한폭염일’로 분류했다.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가 운영된 2011∼2025년 총 1,714일 가운데 이러한 날은 61일이었다. 극한폭염일 자체는 전체 기간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때 자택 환자 비중이 뚜렷하게 증가한 것이다.
양산에서 41.6도가 관측된 이날과 같은 폭염이 이어질 경우, 집 안에 머무는 것만으로 안전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주택은 외부의 뜨거운 공기와 태양 복사열을 장시간 흡수하면서 실내 온도가 바깥보다 늦게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에어컨 있어도 안 켜면 위험.. 밤에도 적정 온도 유지해야
행정안전부는 폭염특보가 내려졌을 때에는 낮뿐 아니라 밤에도 냉방기기를 적절히 사용해 실내 온도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어컨이 없거나 고장 났고, 전기요금 부담 등으로 냉방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까운 무더위쉼터의 위치와 운영시간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다만 ‘에어컨을 켜라’는 당부만으로는 취약계층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자 가운데에는 전기요금을 걱정해 에어컨 가동을 꺼리거나, 냉방이 건강에 해롭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선풍기만 사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등으로 상황 판단이 어려운 사람은 무더위쉼터가 가까이 있어도 혼자 찾아가기 어렵다.
폭염 대응이 재난문자 발송과 쉼터 지정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냉방 취약가구를 찾아가는 체계로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지방자치단체와 복지기관, 이·통장, 생활지원사, 집배원 등이 독거노인과 장애인 가구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냉방시설로 이동을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홀로 사는 부모나 고령의 친척에게는 하루 한두 차례라도 전화를 걸어 에어컨을 작동하고 있는지, 어지럼증이나 두통·메스꺼움·심한 피로감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말이 평소보다 느려지거나 의식이 흐려지고, 몸이 매우 뜨거운데도 땀이 나지 않는다면 중증 열사병 가능성이 있는 만큼 즉시 119에 신고해야 한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우리나라는 해외에 비해 주거지 내 온열질환자 발생 비중이 높지 않지만, 폭염이 심해질수록 집 안에서 발생하는 환자도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냉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가까운 무더위쉼터의 위치와 운영시간을 미리 확인해 폭염 시 적극적으로 이용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