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이슈] 기록적 폭염…산업도 ‘히트플레이션’ 비상 걸려

오후에는 건설 및 야외 공사현장 올스톱
농작물 피해, 축산업 수산업도 마찬가지
원자재 공급 부족으로 물가상승하는 ‘heatflation’
전력 수급 불균형 초래...전력가격 상승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은 전력과 고열에 취약
'폭염'은 산업을 위축시키는 새로운 기후재난

한국재난안전뉴스 박종열 기자 |
 

올여름 한반도를 덮친 기록적 폭염은 사람만 고생하는 게 아니다. 경제와 산업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장 생산성 저하, 건설현장 작업 중단, 농축산물 생산 감소, 전력 수급 불안, 물류 차질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고 있다.

 

폭염이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에 보이는 피해를 남기지는 않지만, 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갉아먹는 대표적인 기후 리스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폭염으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분야는 건설업과 제조업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폭염을 ‘기후 재난’으로 규정하고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되면 옥외 작업 중지 권고를 강화했다. 건설 현장과 조선소, 물류센터, 도로 공사 현장 등에서는 작업시간 단축과 휴식시간 확대가 의무화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7월부터 시가 발주한 건설공사 현장에 대해 오후 2시~5시 사이 야외 작업을 원칙적으로 중단하도록 했다. 긴급 안전작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공사가 멈추는 셈이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수도권의 대형 건설현장 관계자들은 “한낮 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해 새벽과 야간 작업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철근 작업, 거푸집 설치, 콘크리트 타설 같은 공정은 고온에서 작업자의 안전 문제가 커져 작업 속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울산과 거제의 대형 조선소들은 선박 외판 용접과 도장 작업이 대부분 야외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작업시간을 조정하고 냉방 쉼터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해 폭염 때 건설노동자와 배달기사 등의 안전을 위해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 노동을 전면 강제 금지했다.

 

문제는 폭염이 생산성 감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서울대 연구진은 2016~2022년 우리나라의 폭염으로 인한 노동생산성 손실 규모가 약 2,651억 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전체 임금의 약 0.18% 수준이다.

 

농업은 폭염 피해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분야다. 벼와 과수는 일정 온도 이상이 지속되면 수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수확량이 감소한다. 사과와 배는 일소(日燒) 피해가 발생해 폐기 처리되고, 채소는 생육이 지연되거나 품질이 떨어진다.

 

1차 산업 분야의 피해는 곧바로 장바구니 물가와 전체 물가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 원자재 수급이 불안정해지면서 농축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는 ‘히트플레이션(Heat+Inflation)’ 현상이다. 이는 식품 가공업체와 외식업계의 원가 부담을 가중시키며 소비자 가계 지출을 위축시킨다.

 

축산업, 수산업도 마찬가지다. 젖소는 우유 생산량이 감소하고, 닭은 산란율이 떨어지며, 돼지는 사료 섭취량이 감소한다. 심한 경우 집단 폐사도 발생한다. 최근 제주의 광어양식장에서 광어가 무더기로 폐사했다.

 

실제로 최근 충남 서산 지역 농민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농작물 피해를 이유로 한국전력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까지 제기했다.

 

 

폭염은 전력 소비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킨다. 에어컨과 냉방기 가동이 늘어나면서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는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최근 동북아시아 전역에 예고된 폭염으로 한국·일본·중국의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수급과 전력 가격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첨단 설비와 정밀 기기를 다루는 IT·제조 산업 역시 폭염의 열기를 피하지 못한다. 대규모 전력을 소모하는 반도체 및 첨단 제조업체는 정전 시 수백억~수천억 원대의 피해를 입을 수 있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AI 시대를 맞아 급증한 데이터센터와 정밀 공장 설비는 열에 매우 취약하다.

 

폭염 속 24시간 가동되는 데이터센터와 첨단 공장은 설비 과열로 정전(블랙아웃) 위기에 노출되고 있다. 구글과 오라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조차 폭염으로 데이터센터 냉각 장치가 고장 나 서비스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폭염은 발전소 효율을 떨어뜨리고 송전선의 전력 손실도 증가시킨다. 강물이 뜨거워지거나 가뭄이 겹쳐 원전 및 발전소의 냉각수 확보에도 차질이 빚어지는 연쇄적 문제가 발생한다. 유럽에서는 최근 폭염으로 전력 가격이 급등하고 전력 인프라 부담이 커지면서 경제적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

 

폭염은 물류산업에도 영향을 준다. 냉장·냉동 차량 운행 비용이 증가하고, 창고 냉방비도 급증한다. 특히 택배기사와 배달 노동자들은 폭염 속에서 작업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배송 지연과 안전사고 위험이 커진다.

 

철도와 도로 역시 고온의 영향을 받는다. 유럽에서는 최근 폭염으로 철도 운행이 지연되고 일부 노선이 감속 운행에 들어갔다. 아스팔트 변형과 철로 팽창도 잇따르고 있다.

 

폭염은 폭염은 산업별 희비를 갈라놓는다. 에어컨, 선풍기, 냉방가전, 음료, 아이스크림, 생수 판매는 급증한다. 반면 야외 관광, 레저, 전통시장, 건설업, 농업 등은 큰 타격을 입는다. 폭염이 장기화되면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의 매출 감소도 나타난다.

 

실제로 유럽중앙은행(ECB)은 폭염이 지역 경제활동을 약 1% 감소시키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폭염을 더 이상 단순한 계절 현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폭염은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는 동시에 산업과 경제를 위축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재난이다.

 

과거에는 태풍과 홍수가 국가 경제를 위협했다면, 이제는 ‘너무 더운 날씨’ 자체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물가를 올리며 기업 수익을 악화시키는 구조적 위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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