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산재·교통사고 ‘따로 대응’ 끝낸다…국민생명안전위 출범

대통령 소속 생명안전정책 최상위 심의기구…정부서울청사서 첫 회의
부처별 대책 ‘국민 안전권’ 기준으로 통합 점검…4개 분과 운영
세월호 참사 이후 12년 만의 제도화…사후 수습에서 예방 중심으로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자살과 산업재해, 교통사고, 자연재난 등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생명안전 정책을 하나의 기준으로 점검하고 조정하는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재난이 발생한 뒤 책임 소재를 따지고 피해를 수습하는 데 머물렀던 국가 안전정책을 국민의 ‘안전하게 살 권리’를 중심으로 재편하는 첫걸음이다.

 

행정안전부는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민생명안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고 29일 밝혔다. 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과 백종우 경희대 교수 겸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이 공동 부위원장을 맡는다. 첫 회의는 대통령을 대신해 두 공동 부위원장이 주재했다. 위원회는 국가 생명안전 정책을 심의하는 최상위 기구로 운영된다.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위원회 출범의 핵심은 그동안 행정 영역에 따라 나뉘어 있던 안전정책을 ‘국민 생명 보호’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는 데 있다. 자살 예방은 보건복지부, 산업재해는 고용노동부, 교통사고는 국토교통부와 경찰청, 자연재난은 행정안전부 등 담당 부처가 서로 달라 정책 간 연계와 조정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앞으로 위원회는 개별 부처가 내놓은 대책을 단순히 취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 사이의 빈틈과 중복을 점검하는 역할을 맡는다. 여러 부처 업무에 걸쳐 있어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거나 기존 제도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안전 사각지대도 발굴한다. 민간 위촉위원이 정책 심의에 참여해 정부 내부의 시각만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문제를 보완하도록 했다.

 

위원회 산하에는 △생명안전 △재난안전 △생활안전 △피해지원 등 4개 분과위원회가 설치된다. 자살과 산업재해 같은 일상적·구조적 위험부터 자연·사회재난, 교통·생활 사고, 참사 피해자 지원과 공동체 회복까지 생명안전의 전 과정을 나눠 심의한다.

 

‘안전’을 행정 목표 아닌 국민의 권리로

이번 출범은 안전을 정부가 제공하는 행정서비스가 아니라 국민이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로 전환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난 6월 2일 공포된 생명안전기본법은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과 노동현장에서 사고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했다.

 

이 법은 대통령 소속 국민생명안전위원회 설치뿐 아니라 5년 단위 생명안전종합계획 수립, 정책과 법령이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에 살피는 안전영향 분석·평가, 중대한 안전사고를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설치 등의 제도적 틀을 담고 있다.

 

다만 법률은 공포와 동시에 전면 시행된 것은 아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의 주요 조항은 오는 12월 3일부터 시행되며, 생명안전종합계획과 안전영향 분석·평가, 국가안전사고조사위원회 관련 일부 조항은 2027년 6월 3일부터 시행된다. 국민생명안전위원회는 법 시행에 앞서 지난 5월 공포된 ‘국민생명안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라 먼저 가동됐다. 법률상 위원회 설치 근거는 생명안전기본법 제9조에 마련돼 있다.

 

안전권 제도화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산재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과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임시 대책과 특별조사기구가 만들어지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설 정책 조정과 독립적 사고조사가 가능한 국가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요구가 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윤호중 장관은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가치를 넘어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해야 할 마땅한 권리가 됐다”며 “국민생명안전위원회는 그 권리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점검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안전정책을 국민 생명 보호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하고, 사후 수습이 아닌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 국가의 기본 책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백종우 공동 부위원장은 “생명안전기본법의 시작은 반복되는 재난의 고통을 누구도 다시 겪지 않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참사 피해자와 유족의 바람이었다”며 “정부와 민간이 소통하고 협력해 막을 수 있는 죽음과 피해를 최소화하는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내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위원회의 성패는 각 부처에 실질적인 정책 조정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보고 있다. 기존 대책을 보고받는 회의체에 머물지 않고 부처 간 책임 공백을 찾아내 개선을 요구하며, 그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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