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세계, 산불과의 전쟁中.. 왜 빈번해지고 대형화할까

프랑스·스페인서 28만여 명 대피·실내대피.. 캐나다 연기 미국 동부까지 뒤덮어
기후변화로 숲의 수분 줄고 산불 계절 길어.. 농산촌 공동화로 ‘화재연료’도 축적
진화 일변도 벗어나 계획방화·방목·혼합림 조성 등 예방 중심 관리 서둘러야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지구촌이 산불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도시 외곽까지 접근하면서 수십만 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캐나다에서 발생한 산불 연기는 국경을 넘어 미국 오대호와 동부 해안의 하늘을 뒤덮었다. 한때 산불과 거리가 멀다고 여겨졌던 북유럽과 북극권에서도 대형 산불 위험이 커지고 있다.

 

산불은 원래 자연 생태계의 일부이고, 인생의 탄생과 죽음처럼 환경 순환의 일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산불은 발생 시기와 장소, 규모가 과거와 달라졌다. 불이 잘 나지 않던 계절에도 산불이 발생하고, 여러 개의 불길이 합쳐져 소방력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대형 산불’로 번지는 일이 잦아졌다.

 

수백㎞ 떨어진 도시까지 연기가 퍼지면서 산불은 더 이상 산림만 태우는 재난이 아니라 수십만명의 이재민을 발생시키는 것은 물론, 주민 건강과 교통, 관광, 산업을 동시에 위협하는 복합재난이 된 것이다. 흡사 왠만한 전쟁보다 더 인간에게 더 큰 장기 재난으로 다가오고 있다.

 

왜 이렇게 산불이 빈번해지고 대형화하는 걸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 산림 내부의 연료 축적이 겹쳐 있다고 분석한다. 불씨 하나만 놓고 보면 사람의 부주의가 여전히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그 작은 불씨를 통제 불가능한 재난으로 키우는 조건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는 것이다.

 

유럽 산불 발생 20년 평균의 두 배.. 캐나다 연기가 뉴욕까지 내려와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중부에서는 25일 현재 대형 산불이 강풍을 타고 주거지역을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 지롱드·랑드 지역에서는 약 19만7,000명이 대피했다. 스페인에서도 약 8만8,000명이 대피하거나 실내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았다. 프랑스군은 병력과 대형수송기까지 투입했고, 스페인은 산불로는 처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우리나라를 덮친 산불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로랑 뉘녜스 내무장관도 “길고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산불은 짧은 시간에 여러 화선이 합쳐지고, 강한 상승기류가 자체적인 돌풍을 만들어내는 대류형 산불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2일까지 EU에서 산불로 탄 면적은 25만4,388㏊에 달한다. 같은 기간 확인된 산불은 1,254건으로, 최근 20년 평균 569건의 두 배가 넘는다. 피해 면적 역시 2006~2025년 같은 시점의 평균을 웃돈다. 

 

북미도 예외가 아니다. 캐나다에서는 6월 말부터 노스웨스트 준주와 온타리오, 매니토바, 퀘벡 등지에서 산불이 급증했다. 특히 온타리오에서는 산불이 약 500㎞에 걸친 전선을 따라 번지면서 올해 산불 탄소배출량이 관측 이래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연기는 토론토를 거쳐 뉴욕과 뉴저지, 필라델피아까지 확산돼 한때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기온 오르자 숲이 거대한 ‘마른 장작’으로

대형 산불을 만드는 첫 번째 요인은 기후변화다. 기온이 오르면 토양과 식물에서 증발하는 수분이 늘어난다. 비가 오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 살아 있는 나무와 풀의 수분 함량까지 떨어지고, 낙엽·솔잎·잔가지·고사목은 불씨가 닿는 즉시 타오를 정도로 마른다.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올해 6월 서유럽 평균기온은 20.74도로, 1991~2020년 평균보다 3.05도 높았다. 관측 사상 가장 더운 6월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파브라 관측소에서는 지난 8일 40.5도가 측정돼 100년이 넘는 관측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폭염과 가뭄, 낮은 습도에 강풍까지 겹치면 불길이 번질 수 있는 속도와 범위는 급격히 커진다.

 

비가 많이 온 해에도 대형 산불은 발생할 수 있다. 봄철 비가 충분히 내리면 풀과 관목이 빠르게 자란다. 이후 여름 폭염과 가뭄이 찾아오면 무성하게 자란 식생이 한꺼번에 말라 거대한 가연물로 바뀐다. 스페인 산불도 많은 봄비로 식생이 늘어난 뒤 연속된 폭염이 이를 바싹 말린 것이 급속한 확산의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아울러, 기후변화는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기간도 늘린다. 과거에는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가 유럽의 전통적인 산불철이었지만, 최근에는 봄과 늦가을에도 대형 산불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 산하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는 폭염과 가뭄이 동시에 발생하는 복합 극한현상이 증가했고, 지구 평균기온이 더 오를수록 산불에 유리한 고온·건조·강풍 조건도 더욱 빈번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만 예외 아니다.. 유럽 농산촌도 공동화로 산림 불쏘시개 쌓여

기후변화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유럽 산불의 또 다른 배경에는 농산촌 공동화와 전통적인 산림 이용의 감소가 있다. 과거 산촌 주민들은 잔가지와 죽은 나무를 땔감으로 가져갔다. 낙엽은 퇴비나 축사 깔개로 이용했고, 염소와 양은 숲 주변의 풀과 관목을 뜯었다. 농경지와 목초지는 숲과 숲 사이에서 불길을 끊어주는 자연 방화선 역할도 했다.

 

그러나 주민이 도시로 떠나고 농경지와 목초지가 방치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풀이 허리 높이까지 자라고 관목과 어린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산림 바닥에는 마른 낙엽과 잔가지, 고사목이 쌓였다. 과거에는 농지와 목초지로 나뉘어 있던 공간이 하나의 연속된 가연지대로 이어지면서 불길이 멈추지 않고 먼 거리까지 번질 수 있는 길이 만들어졌다.

 

실제로 유럽환경청은 남유럽에서 농촌 토지의 방치가 산불 위험을 키운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불에 취약한 침엽수 단일림과 조림지가 확대된 것도 문제다. 다양한 수종과 연령의 나무가 섞인 숲보다 같은 나무가 빽빽하게 심어진 숲은 병충해와 가뭄에 취약하고, 나무가 집단으로 말라 죽으면 대규모 가연물 지대로 변할 수 있다.

 

다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낙엽이 쌓이면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않는다”는 설명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적당한 낙엽층은 빗방울의 충격을 줄이고 토양 침식을 막으며 수분을 보존한다. 문제는 낙엽이 물의 흡수를 방해해서가 아니라, 낙엽과 잔가지가 과도하게 축적된 상태에서 폭염과 가뭄으로 바싹 말라 산불 연료가 된다는 데 있다.

 

작은 불 막다가 큰불 불러.. 산불 진압의 역설

과거의 산불 진압 정책이 역설적으로 연료 축적을 가져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불에 적응한 일부 생태계에서는 낮은 강도의 불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지면의 마른 풀과 잔가지를 태웠다. 하지만 모든 불을 초기에 진압하는 정책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작은 불이 사라지고 가연물은 계속 쌓였다.

 

이런 상태에서 극심한 폭염과 가뭄이 닥치면 수십 년간 축적된 연료가 한꺼번에 타면서 소방대가 접근하기 어려운 초대형 산불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산불 진압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다만 모든 지역에서 진화가 산불을 키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불에 민감한 습지나 이탄지, 산불에 적응하지 못한 생태계에서는 작은 불도 치명적일 수 있다.

 

유엔환경계획은 기후변화와 토지 이용 변화가 이어질 경우 극한 산불 발생이 2030년까지 최대 14%, 2050년까지 30%, 세기 말에는 50%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산불이 산림과 이탄지를 태워 막대한 탄소를 배출하고, 그 탄소가 다시 기후변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도 우려되는 것이다.

 

불에는 불.. 큰불 막기 위해 작은 불 놓는다

영국 스완지대 산불과학 교수인 스테판 H. 되르는 산불 위험이 낮은 시기에, 불에 생태적으로 적응한 지역을 선별해 낮은 강도의 불을 놓는 ‘계획방화’ 또는 ‘처방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산림 바닥의 마른 풀과 잔가지, 관목을 미리 태워 대형 산불이 이용할 연료를 줄이자는 것이다.

 

계획방화는 아무 때나 숲에 불을 놓는 방식이 아니다. 전문가가 기온과 습도, 풍속, 지형, 식생의 수분 함량을 계산하고 방화선과 진화 인력을 배치한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시행한다. 이후 산불이 발생하더라도 불길의 강도와 확산 속도를 낮춰 소방대가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계획방화가 만능 해법은 아니다. 바람이 갑자기 강해지면 불길이 통제구역을 벗어날 수 있고, 연기가 주민 건강과 교통에 피해를 줄 수도 있다. 희귀생물 서식지와 이탄층에서는 생태계 훼손이나 대규모 탄소 배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역별 생태 특성과 기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불 놓기는 또 다른 산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계획방화와 함께 기계적인 솎아베기, 고사목과 잔가지 제거, 가축 방목, 농림업 복원, 방화대 조성 등을 함께 추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햇다. 침엽수 단일림을 활엽수와 다양한 수종이 섞인 혼합림으로 전환하고, 산림과 주거지가 맞닿는 지역에는 불에 강한 완충지대를 확보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언급됐다.

 

진화 예산을 예방·대피·복구로 돌려야

산불 정책의 중심도 ‘발생 후 진화’에서 ‘발생 전 위험 관리’로 옮겨가야 한다. 유엔환경계획은 전체 산불 예산의 3분의 2를 계획과 예방, 대비, 복구에 사용하고 나머지 3분의 1을 긴급 대응에 배분하는 ‘파이어 레디 공식’을 제안했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의 산불 대응 예산이 잘못된 곳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사회와 함께 위험을 줄이고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하는 등 더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성과 드론,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발화 지점을 조기에 발견하고, 산림 인접 마을에는 복수의 대피로와 주민별 대피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고령자와 장애인, 관광객처럼 지역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경보를 받고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국가별로 보유한 산불진화 항공기와 전문인력을 공동 운용하는 국제 협력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국 대형 산불은 불씨 하나가 만든 단순 사고가 아니다. 기후변화가 숲을 더 빠르고 오래 마르게 하고, 농산촌 공동화와 획일적인 산림 관리가 연료를 쌓이게 했으며, 도시가 산림 가까이 확장되면서 인명·재산 피해가 커진 결과다.

 

소방항공기와 진화 인력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불이 나기 전에 숲속 연료를 줄이고, 불에 강한 산림과 마을을 만들며, 지구의 온도 상승을 억제하는 장기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산불은 이제 숲을 ‘얼마나 많이 심을 것인가’를 넘어, 뜨거워진 기후 속에서 숲을 어떻게 건강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것인가에 인류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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