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부어라 마셔라’로 상징되던 음주 문화가 빠르게 저물고 있다.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술잔을 내려놓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음주율은 1939년 조사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도 최근 10년간 주류 출고량이 17% 넘게 감소했다. 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취하기 위해 마시던 시대에서 맛과 분위기만 선택적으로 즐기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6일 미국 NBC뉴스 등에 따르면, 최근 NBC에서 특집으로 조명한 ‘더 데스 오브 드링킹(The Death of Drinking·음주의 죽음)’은 이 같은 변화를 압축한 표현이다. 미국인이 술을 완전히 끊고 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술을 친목과 휴식의 필수품처럼 여기던 오랜 사회문화가 힘을 잃고 있다는 진단이다.
미국인 음주율 62%→58%→54%.. 올해도 감소 전망
미국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술을 마신다고 답한 미국 성인은 2023년 62%에서 2024년 58%, 2025년 54%로 3년 연속 감소했다. 갤럽이 미국인의 음주 습관을 처음 조사한 193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1970년대 후반에는 이 비율이 68~71%에 달했다. 특히 18~34세 청년층 음주율은 2023년 59%에서 50%까지 내려갔다.
술을 마시는 사람도 양과 횟수를 줄이고 있다. 음주자 가운데 최근 24시간 이내 술을 마셨다는 응답은 역대 최저인 24%에 그쳤다. 반대로 일주일 넘게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비율은 40%로 2000년 이후 가장 높았다. 최근 일주일 평균 음주량도 2.8잔으로, 관련 조사가 시작된 199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년 전 3.8잔보다 한 잔 줄어든 것이다.
변화의 중심에는 술의 건강 위해성에 대한 인식 전환이 있다. 미국인의 53%는 하루 한두 잔의 ‘적당한 음주’도 건강에 해롭다고 답했다. 2001~2011년에는 같은 응답이 25% 안팎에 머물렀지만 2018년 28%, 2023년 39%, 2024년 45%를 거쳐 처음 과반을 넘어섰다. 적당량의 와인이 심혈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과거의 통념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마리사 실베리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정신의학과 부교수는 “수십 년 동안 축적된 신경과학과 공중보건 연구가 마침내 실제 행동과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알코올이 우리 몸의 생리 기능에 부담을 준다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며 “생리적으로 유익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증거도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다.
“취하지 않아도 즐겁다”… '소버 큐리어스' 확산
음주를 완전히 금지하기보다 자신의 음주 습관을 의식적으로 점검하고 줄이는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문화도 변화를 이끌고 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를 뜻하는 ‘소버’와 ‘궁금해하는’을 의미하는 ‘큐리어스’를 합친 말이다.
시장조사업체 서카나가 미국 성인 1,131명을 조사한 결과, 2025년 술을 줄이려고 한다는 응답은 49%에 달했다. 2023년보다 44% 증가한 수치다. 젊은 MZ세대에서는 65%가 음주량을 줄이겠다고 답했고, 39%는 1년 내내 술을 마시지 않는 생활을 계획했다.
이들이 술을 줄이는 이유도 달라졌다. 신체 건강뿐 아니라 정신건강 개선, 체중 감량과 수면의 질, 생활비 절감 등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미국인 5명 중 1명은 술값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고, 3명 중 1명 이상은 술을 일상 소비가 아닌 ‘특별한 날의 사치품’으로 여겼다.
스마트워치 등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도 영향을 미쳤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심박수가 올라가고 수면의 질이 낮아지는 모습이 수치로 드러나면서, 숙취뿐 아니라 알코올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소비자가 직접 확인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도 10년 새 주류 출고량 17.3% 감소
한국의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24년 국내 주류 출고량은 315만1,000㎘로, 2014년 380만8,000㎘보다 17.3% 감소했다. 이 기간 소주 출고량도 95만8,000㎘에서 82만㎘로 14.4% 줄었다. 경기 침체나 코로나19 유행과 같은 일시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조적 감소세다.
질병관리청의 2025년 지역사회건강조사에서도 최근 한 달 동안 한 번 이상 술을 마신 사람의 비율인 월간음주율은 57.1%로 전년보다 1.2%포인트 낮아졌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마시는 고위험음주율도 12.0%로 0.6%포인트 감소했다.
대신 비·무알코올 시장은 빠르게 커지고 있다. 이마트의 지난해 비·무알코올 맥주 매출은 전년보다 21% 증가했다. 오비맥주의 올해 1분기 관련 제품 매출은 27.7%, 하이트진로음료의 ‘하이트제로 0.00’ 매출은 지난해 21.8% 늘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술자리 자체의 폐지가 아니라, 취하지 않고도 맛과 분위기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선택지라는 뜻이다.
물론, 이를 곧바로 트렌드의 시작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전체 음주율이 낮아져도 상습적인 폭음과 알코올 의존이 같은 속도로 감소한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자그프리트 차트왈 하버드대 의대 부교수는 “폭음과 고위험 음주가 실제로 줄어드는지도 확인해야 한다”며 “간질환은 오랜 기간의 과음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최근의 소비 감소가 질병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판단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술을 강요하고 취할 때까지 마시던 문화가 서서시 수그러드는 모양새는 분명하다. 건배는 하되 취하지 않고, 술을 마시지 않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미국과 한국의 주류 소비 감소는 그런 변화가 이미 시작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