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NOW] "40도 폭염에 산불까지 덮쳤다".. 프랑스·스페인 20만명 피란

프랑스 보르도 외곽까지 불길 확산…군 병력 투입·EU에 긴급 지원 요청
스페인 마드리드 서부 산불 잇따라 합쳐져…사상 첫 ‘산불 국가비상사태’
고온·건조·강풍에 방치된 산림이 ‘불쏘시개’…진화 중심 대응서 예방 관리로 바꿔야

 

한국재난안전뉴스 박광춘 기자 |

 

유럽이 또다시 ‘불타는 여름’에 휩싸였다. 프랑스 남서부와 스페인 중부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40도를 넘나드는 폭염과 강풍을 타고 주거지역으로 번지면서 최소 20만 명이 집을 떠났다. 대피·실내대피 명령을 모두 합친 일부 최신 집계로는 영향권에 든 주민과 관광객이 22만 명을 넘어서는 등 사실상 전쟁을 방불케하고 있다. 

 

25일 현지언론과 CNN, 로이터통신 등 외신을 종합하면, 프랑스에서는 대서양 연안 휴양지 레주카프페레에서 시작된 대피 행렬이 보르도 서부 교외까지 확대됐다. 스페인에서는 수도 마드리드 서쪽에서 발생한 여러 산불이 하나로 합쳐진 데 이어 인접한 아빌라주의 대형 산불과도 연결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현지 소방당국은 “정면 진화가 불가능한 수준”이라며 주민 보호를 위한 방어 작전에 집중하고 있다.

 

이번 산불은 단순히 불이 많이 난 수준을 넘어 불길이 스스로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고 방향까지 바꾸는 이른바 ‘대류형 산불’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 위협적이다. 여기에 유럽에 또 한 차례 폭염이 예고되면서 진화 작업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카프페레서 보르도 외곽까지.. 프랑스군도 투입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당국은 보르도 서쪽 르아이앙과 에지네, 메리냑 일대 주민들에게 추가 대피령을 내렸다. 앞서 관광객이 몰린 카프페레반도에서는 육로가 불길에 막힐 가능성이 커지자 주민과 관광객 일부가 선박을 이용해 아르카숑 쪽으로 빠져나왔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프랑스 총리는 지롱드와 랑드 지역에서만 14만1,000명 이상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이후 보르도 주변으로 대피령이 확대되면서 프랑스 남서부의 대피 대상자가 최대 20만 명 안팎으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카프페레 일대를 위협하는 산불은 1만4,000㏊ 이상의 산림을 태우고 주택 100여 채와 야영장을 훼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별도로 랑드주 비스카로스 일대에서도 대형 산불이 발생해 수만 명이 대피했다. 불길은 강풍에 따라 방향을 바꿔 보르도 도심권을 향해 동진하고 있다.

 

르코르뉘 총리는 “우리나라를 덮친 산불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군 병력을 현장에 투입하고 주민들에게 마스크를 배포하는 한편, 보르도 일대 도로 이용을 자제하도록 권고했다. 산불 연기는 북쪽 오트비엔 지역까지 확산해 당국이 주민들에게 문과 창문을 닫고 실내에 머물 것을 당부했다.  폭염으로 인해 아키텐 지역의 7월 평균 최고기온이 32.2도로, 과거 평년값보다 7.3도 높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 민간보호메커니즘 가동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크로아티아와 포르투갈의 소방항공기,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대형 헬기 등 유럽 각국의 진화 장비가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서부 산불 합쳐져.. “진화 능력 넘어섰다”

스페인의 상황도 위태롭다. 마드리드 서부 비야델프라도와 산마르틴데발데이글레시아스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합쳐졌고, 아빌라주 부르고온도의 산불까지 마드리드 방면으로 접근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마드리드와 아빌라 지역 산불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산불을 이유로 국가민간보호체계에 따른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지방정부가 맡던 대응을 내무부가 직접 지휘하고 군 비상부대와 중앙정부 자원을 통합 운용하게 됐다.

 

카를로스 노비요 마드리드주 비상관리 책임자는 “산불이 정점에 도달했으며 현재 소방대의 진화 능력을 넘어섰다”며 “일부 구역에서는 불길을 직접 공격할 수 없어 주민과 시설을 지키는 방어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마드리드주 이사벨 디아스 아유소 주지사도 이번 산불을 '지역 역사상 최악의 화재'로 규정했다. 고온과 끊임없는 강풍, 여러 화선의 결합이 이른바 ‘퍼펙트 스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드리드 서부와 아빌라 일대에서는 2만5,000명가량이 대피하고 약 4만 명이 실내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스페인에서는 올해 들어 이미 10만㏊ 이상이 불탔다. 이는 최근 10년간 스페인의 연평균 산불 피해 면적에 육박하는 규모다. 올해 산불로 13명이 숨져 수십 년 만에 가장 치명적인 산불 시즌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동시다발 화재와 기상 악화, 지방정부의 대응 능력 초과를 국가비상사태 선포 이유로 들었다.

 

비가 많이 왔는데 왜 산불?.. 무성해진 풀이 폭염에 말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을 ‘점화 원인’과 ‘확산 원인’으로 나눠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불 자체는 농기계 작업이나 쓰레기 소각, 담뱃불, 전기설비 이상, 방화 등 사람의 행위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는 유럽 산불의 약 96%가 직간접적인 인간 활동에서 비롯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작은 불씨를 대형 재난으로 키운 배경에는 여전히 기후변화가 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봄철에는 풀과 관목이 빠르게 자랐다. 이후 연이은 폭염과 가뭄이 수분을 빼앗으면서 무성한 식생 전체가 거대한 가연물로 변했다. 여기에 낮은 습도와 강풍까지 겹치자 불티가 수십 ㎞ 거리를 날아가 새로운 불을 만드는 ‘비화’가 반복됐다.

 

특히 프랑스 산불은 고온의 연기 기둥이 강한 상승기류를 만들고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대류형 산불로 발달했다. 이런 불은 일반적인 지상 진화가 어렵고 자체적인 돌풍을 만들거나 갑자기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2026년 6월 서유럽은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했다. 서유럽 평균기온은 20.74도로 1991∼2020년 평균보다 3.05도 높았다. 바르셀로나 파브라 관측소에서는 7월 8일 40.5도가 측정돼 100년이 넘는 관측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존 케네디 세계기상기구 기후정보 책임자는 “1976년의 역사적 폭염 이후 50년 동안 유럽 전체의 기온이 약 2도 올랐다”며 “극한 고온 현상 역시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세계기상기구는 고온과 건조한 토양, 낮은 습도가 프랑스와 이베리아반도의 산불 위험을 동시에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진화 장비만 늘려서는 한계.. 산림 속 ‘연료’부터 줄여야

유럽 산불은 이제 남부 지중해 지역만의 계절 재난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산불 시즌이 길어지고 도시와 산림의 경계가 맞닿은 지역이 늘어나면서 불길이 곧바로 대규모 주거지와 관광지를 위협하고 있다. 유럽환경청은 유럽 전체 면적의 7.4%가 산림과 주거지가 맞닿은 ‘산림·도시 경계지역’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대책의 핵심은 진화보다 예방에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산림 바닥의 마른 풀과 낙엽, 고사목을 제거하고 계획 방화와 가축 방목, 농림업을 활용해 가연물의 양을 줄여야 한다. 수종과 나무 나이를 다양화하고 주거지 주변에는 녹색 방화대와 완충지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휴양지와 산림 인접 마을에는 한 방향뿐인 대피로를 개선하고, 교통약자와 관광객까지 포함한 대피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위성 감시와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한 조기 탐지, 휴대전화 기반 위치별 경보, 국가 간 항공 진화자원 공동 운용도 확대해야 한다.

 

유럽환경청은 “유럽의 산불 대응이 예방과 복구보다는 긴급 진화에 치우쳐 있다”며 방목과 산림농업, 고사목 관리, 계획 방화를 결합한 연료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온 상승 자체를 억제하지 못하면 산림 관리만으로 위험을 상쇄하는 데 한계가 있어 향후 사태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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