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시각] 잇단 물류센터 화재, 구조적 관점서 접근하라

덕평 이어 인천도 장기 진화.. 대형 물류센터 화재 반복
촘촘한 적재 구조가 스프링클러·소방 진입 가로막아
기업 책임 넘어 물류센터 맞춤형 소방 기준 정비해야

 

한국재난안전뉴스 | 

비가 왔지만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18일 오전 6시54분쯤 인천 서해구 석남동 쿠팡 인천32물류센터에서 시작된 불은 20일 오후 8시쯤에야 61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혔다. 완전 진화까지는 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2021년 경기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도 완전 진화까지 132시간, 약 엿새가 걸렸다. 지난해 11월 충남 천안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도 60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대형 물류센터 화재는 이제 단순히 “불이 크게 났다”는 차원을 넘어, 왜 한 번 불이 나면 이렇게 오래 타는지 구조적으로 따져봐야 할 문제가 됐다.

 

물류센터는 사람이 생활하는 일반 주택이나 사무용 빌딩과 다르다. 주택과 사무실은 사람이 머무는 공간을 중심으로 방과 복도, 계단, 공용공간이 나뉜다. 화재가 나면 천장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고, 소방대가 진입해 화점을 찾아 진압하는 방식이 비교적 명확하다. 물론 모든 건물 화재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쓰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이동하고 대피하고, 소방대가 접근할 수 있는 구조를 전제로 한다.

 

물류센터는 출발점이 완전히 차별화된다. 물류센터의 핵심은 공간 효율이다. 더 많은 상품을, 더 빠르게, 더 촘촘하게 보관하고 분류하고 출고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상품은 랙과 선반, 박스와 포장재 사이에 층층이 쌓인다. 통로는 물류 동선에 맞춰 최적화되고, 보관공간은 최대한 높고 깊게 활용된다. 평상시에는 이것이 경쟁력이다. 그러나 불이 나는 순간, 이 효율성은 진화의 난관이자 아킬레스 건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물이 닿지 않는 불.. 효율 적재성 높을수록

문제는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느냐, 작동하지 않느냐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물이 실제 불이 붙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느냐”다. 천장에서 물이 뿌려져도 물류센터 내부에 물건이 칸칸이 쌓여 있으면, 위쪽 박스와 포장재가 물길을 막을 수 있다. 불은 랙 안쪽, 박스 사이, 포장재 밑, 적재물 깊은 곳에서 계속 살아남는다. 겉으로 물을 뿌려도 아래 칸이나 안쪽 더미까지 물이 스며들지 않으면 불씨가 남게 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불길보다 연기가 먼저 현장을 장악한다. 연기가 빠지지 않으면 시야가 확보되지 않고, 화점도 찾기 어렵다. 내부 온도가 올라가면 진입 자체가 위험해진다. 결국 소방대는 내부 공격보다 외부 방수, 건물 냉각, 연소 확대 방지, 붕괴 위험 감시를 병행할 수밖에 없다. 인천 화재에서도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되고 특수장비가 투입됐지만, 건물 규모와 내부 적재물, 짙은 연기, 구조물 안전 문제가 진화를 어렵게 만든 요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특정 기업을 향한 단순 비난이 경계돼야 한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이니, 이익만 추구한다느니 이런 포퓰리즘적 비판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물론 화재 원인, 방재설비 작동 여부, 초기 대응, 안전관리 책임은 철저히 조사돼야 한다. 법을 어겼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설령 현행 기준을 모두 지킨 물류센터라 하더라도, 그 기준 자체가 오늘의 초대형·초고밀도 물류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불법’만이 아니라 ‘기준의 낡음’일 수 있기 때문이다.

 

효율을 위한 구조가 진화를 어렵게 한다

물류센터는 현대 소비생활의 기반이다. 새벽배송, 당일배송, 반품 처리, 대량 재고 관리는 모두 거대한 풀필먼트센터를 통해 가능해졌다. 싫든 좋든 이제는 우리의 일상이다. 소비자는 더 빠른 배송을 원하고, 기업은 더 촘촘한 보관과 자동화, 효율적인 동선을 추구한다.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류 효율을 극대화한 구조가 화재 때 어떤 위험을 만드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충분하지 않았다.

 

기존 소방 기준은 일정한 건축물 분류와 면적, 층수, 용도, 설비 설치 여부를 중심으로 작동해 왔다. 하지만 물류센터의 실제 위험은 단순한 면적보다 ‘어떻게 쌓여 있는가’에 더 크게 좌우된다. 적재 높이, 랙 간격, 포장재 성질, 물품 종류, 자동화 설비, 배터리나 전기설비, 연기 배출 구조, 소방대 진입 동선, 내부 구획 방식이 모두 화재 위험을 바꾼다. 같은 면적의 건물이라도 내부가 비어 있는 창고와 상품이 빽빽하게 적재된 풀필먼트센터의 화재 양상은 전혀 다르다.

 

따라서 물류센터 안전은 스프링클러 작동여부가 아니라 '스프링클러 물이 실제 적재물 내부 화점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소방차 접근도가 아니라 '소방대가 연기와 열, 붕괴 위험 속에서도 화점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법 준수가 아니라, '그 법이 지금의 물류센터 위험을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에 문제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책임과 제도 책임을 함께 봐야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여론은 흔히 기업 책임을 먼저 묻는다. 당연한 일이다. 사업주는 노동자와 이용자, 인근 주민의 안전을 지킬 1차 책임이 있다. 화재 예방 설비, 위험물 관리, 피난 훈련, 초기 대응, 협력업체 안전관리, 소방시설 유지관리 모두 기업의 책임이다. “법을 지켰다”는 말만으로 안전 책임이 끝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기업만 비난하거나 불매운동 등으로 끝내서도 안 된다. 쿠팡이든, 다른 유통기업이든, 물류기업이든 앞으로도 대형 물류센터는 계속 지어질 것이다. 소비생활과 산업구조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와 관련 부처는 물류센터의 특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안전 기준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초고밀도 적재 구조에 맞는 스프링클러 기준, 랙 내부 방수 방식, 연기 배출과 배연 설비, 방화구획, 소방대 진입로, 무인 방수 장비 운용 공간, 대용량 수원 확보, 자동화 설비 정지 기준, 장시간 화재 때 구조물 안전진단 절차 등이 종합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물류센터를 일반 창고의 연장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고위험 시설 유형으로 분류돼야 한다.

 

덕평과 인천이 던진 질문.. 화재 진압 현실성과 관용성에 초점 둬야

덕평 화재 이후 우리는 물류센터 화재의 위험성을 이미 경험했다. 그럼에도 인천 화재는 다시 비슷한 질문을 결국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왜 이렇게 오래 타는가. 왜 물을 퍼부어도 불씨가 남는가. 왜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돼도 진화가 쉽지 않은가.

 

답은 현장 대원들의 노력 부족이 아니다. 오히려 소방대원들은 붕괴 위험과 짙은 연기, 고열 속에서 한계를 밀어붙이며 대응했다. 문제는 그들이 마주한 공간 자체가 진화에 불리하게 설계돼 있었다는 점이다.

 

물류센터는 불이 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이 났을 때 빨리 꺼질 수 있는 구조를 처음부터 만드는 일이다. 화재 예방과 화재 진압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잘 설계된 건물은 불이 번지는 속도를 늦추고, 소방대가 접근할 시간을 벌어주며,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줄인다. 반대로 효율만 앞세운 공간은 불이 난 뒤 소방법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인천 쿠팡물류센터 화재를 특정 기업의 불운한 사고로만 봐서는 안 된다. 덕평과 인천은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앞으로 또다른 물류센터가 지어질 것이다. 초대형 물류센터 시대의 안전 기준은 과연 충분한가. 스프링클러와 소화전, 경보설비만으로 고밀도 적재공간의 화재를 통제할 수 있는가. 소방대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라면, 그 건물은 정말 안전한 건물인가. 이런 질문이 내일의 화재를 막기 때문이다. 

 

답은 분명하다. 물류센터 화재는 구조적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 기업은 법 준수를 넘어 선제적 안전설계에 나서야 하고, 정부는 법과 기준을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 빠른 배송의 시대라면, 안전 기준도 그만큼 빨라져야 한다. 물류센터는 해당 기업의 자산이기도 하지만, 빠른 현대사회에서 우리 시민들이 하루하루 쓰는 필수용품이기도 하다.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와 기업이 발빠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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