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재난안전뉴스 이계홍 기자 |
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었는데 왜 불길이 그렇게 커졌는가?”
스프링클러는 물류센터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가장 중요한 소방시설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형 화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설의 구조와 적재물에 맞게 설치됐는지, 실제 화재 상황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다.
현재 창고시설의 소방시설 기준은 과거보다 상당히 강화됐다. 창고시설의 화재안전성능기준(NFPC 609)은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창고시설에 설치해야 하는 소방시설의 성능 기준을 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적층식 랙(rack, 중층 구조) 등 물류창고의 특성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NFPC 609에 따르면 창고시설에는 원칙적으로 ‘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헤드를 습식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물 분사를 기존의 분당 약 80리터 수준에서 160리터 수준으로 강화하고 방수 지속 시간도 기존 약 20분에서 60분 수준으로 강화한 것이다.
특히 랙식 창고는 천장 스프링클러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랙 높이 3m 이하마다 스프링클러헤드를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인천 쿠팡32물류센터에는 불행하게도 NFPC 609의 강화된 기준에 따른 ‘라지드롭형 스프링클러’와 랙 중간 높이마다 추가하는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이 건물은 건축허가 시점이 2020년 5월이고 2023년에 준공됐다. NFPC 609(창고시설의 화재안전성능기준) 시행일은 2024년 1월부터이고 소급적용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이 점이 물류센터 화재에서 문제다. 대형 물류센터의 약 70% 이상이 2024년 이전 기준으로 지어져 NFPC 609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번 쿠팡 화재는 사실상 “신축 물류센터에는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면서 기존 대형 물류센터에는 왜 소급 적용하지 않는가”라는 제도적 문제를 다시 드러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최근에 지었다하더라고 물류센터가 설계도면대로만 운영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준공 당시에는 3m 높이로 설계된 랙이 운영 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 상품의 종류가 바뀌고, 적재량이 늘어나며, 랙의 위치가 변경될 수도 있다. 스프링클러 헤드 아래에 상품이 지나치게 높게 쌓이거나, 통로에 상품이 임시로 적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때 발생하는 문제는 법적 기준과 실제 운영 상태 사이의 간극이다. 소방시설은 준공 당시에는 기준을 충족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물류센터 내부의 운영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물류센터의 임차인이 바뀌고, 취급 상품이 달라지고, 자동화 설비가 추가되면 화재 위험도 달라진다.
따라서 화재안전은 준공검사 한 번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특히 물류센터의 경우 일정 기간별로 화재위험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과거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는 초기 화재감지와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당시 화재경보가 제대로 대응되지 못하고 방재시스템 초기화가 반복되면서 스프링클러 작동이 지연됐고, 초기 진화 기회를 놓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스프링클러는 ‘설치돼 있느냐’가 아니라 화재 발생 순간 ‘제대로 작동했느냐’가 핵심이다.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물류센터의 규모다. 초대형 물류센터는 건물 자체가 너무 커서 소방대원이 화점에 도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가 건물 깊숙한 곳이거나 고층부라면 외부 소방차가 접근해 직접 방수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소방당국이 이번 인천 쿠팡 물류센터 화재에서 대규모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고 국가소방동원령까지 발령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초대형 시설의 특성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는 물류센터의 화재안전 기준을 단순히 “어떤 소방시설을 몇 개 설치할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물류센터의 전체 위험도를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물 면적과 층수뿐 아니라 ▲적재 높이 ▲랙 구조 ▲메자닌 구조 ▲상품의 가연성 ▲자동화 설비 ▲소방차 진입로 ▲소방용수 확보량 ▲소방대원 진입 가능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법적 기준을 지켰다는 것은 최소한의 안전조건을 충족했다는 의미이지, 모든 화재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물류센터의 화재안전은 이제 “법을 지켰는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불이 났을 때 몇 분 안에 발견하고, 몇 분 안에 초기 진압하며, 소방대원이 몇 분 안에 화점에 접근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